방귀 뀌고 열 내는 꽃들... 그 말 못할 사정

[서평]<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

등록 2011.03.27 14:30수정 2011.03.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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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아름답다' '예쁘다' '향기가 좋다' '벌이나 나비' 등이다. 대부분의 꽃들에게선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그러나 모든 꽃이 향기로운 것은 아니다. 결코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풍기는 꽃들도 있고, 언뜻 별다른 냄새가 나지 않는 꽃들도 많다.

 

꽃의 지름만 무려 1m로 세계에서 가장 큰 꽃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의 '자이언트플레시아'에선 재미있게도 고기가 썩을 때 나는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앉은부채'와 앉은부채의 사촌뻘인 '애기앉은부채'에서도 고기가 썩을 때 나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이런 앉은부채를 미국에선 '스컹크 캐비지'라고 부른단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넓은 잎을 가진 이 식물을 위험하다 싶으면 고약한 냄새를 내뿜는 스컹크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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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일에 찍은 눈 속 앉은부채. 얼룩무늬가 있는 것이 꽃을 감싸고 있는 불염포이다. ⓒ 그린키

2010년 3월 1일에 찍은 눈 속 앉은부채. 얼룩무늬가 있는 것이 꽃을 감싸고 있는 불염포이다. ⓒ 그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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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3일에 화악산에서 찍은 쥐오줌풀. 멀리 보이는 풍경은 강원도와 그 주변 산들. ⓒ 김현자

2010년 6월 23일에 화악산에서 찍은 쥐오줌풀. 멀리 보이는 풍경은 강원도와 그 주변 산들. ⓒ 김현자

산속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나리난초'에선 생선 비린내와 생선 썩는 냄새가 난다. 들이나 산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루오줌'과 '쥐오줌풀'과 북한산 등에서 흔하게 자라는 누리장나무는 이름 자체부터 어떤 냄새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실제 노루오줌과 쥐오줌풀 뿌리에서는 오줌에서 나는 지린내가, 누리장나무 잎에서는 누린내가 난다.

 

이들뿐이랴. '돌마타리' 씨앗에선 방귀를 뀐 것과 같은 지독한 구린내가 난다. 그리고 '누린내풀' 잎에선 고약한 누린내가 나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누린내풀 잎을 만진 손을 세심하게 씻어도 사라지지 않고 거의 하루 종일 코를 움켜쥐게 할 정도라나. 그렇다면 이들 식물들은 왜 이처럼 고약한 냄새들을 풍기는 걸까?

 

앉은부채는 너무 이른 봄에 꽃을 피우고 눅눅한 나무숲에서 자라는지라 꽃가루를 옮겨주는 벌과 나비를 만나기 어렵다. 애기앉은부채는 벌과 나비가 비교적 많은 여름에 꽃을 피우나 강원도 높은 산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벌과 나비를 만나기가 또한 어렵다. 때문에 파리 등과 같은 곤충들이 좋아하는 고기나 생선 썩는 냄새를 풍겨 그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나리난초가 생선 비린내나 생선 썩는 냄새를 내는 이유는 이들 냄새를 좋아하는 파리를 꼬드기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노루오줌과 쥐오줌풀의 뿌리에서 오줌 지린내가 나는 이유는 식물의 뿌리를 캐먹는 멧돼지 같은 동물들에게 뿌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생존전략 때문.

 

"앉은부채가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꽃을 피우며 하는 신기한 행동이 하나 더 있어요. 그건 꽃에서 열을 내는 거예요. 식물이 열을 내다니 신기하지요. 이렇게 열을 내는 까닭은 꽃에서 나는 냄새를 더욱 멀리까지 보내기 위해서래요. 그리고 불염포(꽃을 감싸고 있는 앉은부채의 한 조직)에 꽃이 싸여 있으니 그 안쪽은 바깥보다 따뜻할 거예요. 꽃 안으로 들어온 곤충은 따뜻한 곳에서 좀 더 오래 머물다 가겠지요. 그동안 몸에 더 많은 꽃가루를 묻히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고요.…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다가 아니었어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적을 피하기 위해 꽃을 감싸는 불염포에는 얼룩무늬를 만들어 두었답니다. 눈에 잘 띄지 않겠지요. 그리고 이런 것보다 더 확실한 준비를 해두었는데 그것은 몸에 독을 만들어 두는 거예요. 일찍 잎을 내고 자라는데 동물들의 먹이가 되면 헛일이니까요."

-<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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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 겉그림 ⓒ 우리교육

<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 겉그림 ⓒ 우리교육

<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우리교육 펴냄)는 이처럼 생존전략으로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내는 식물들 이야기를 비롯하여 독성을 지닌 식물들, 바위틈과 같은 척박한 곳에서만 자라는 바위솔 등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자라는 식물들의 생태적 특성과 다양한 생존전략, 식물 관련 상식 등을 50여 컷의 세밀화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저자 김영철은 어린 시절 자연을 접하며 자란 영향으로 식물학자가 되고 싶어 생물학을 전공, 2000년부터 '우리꽃세상(http://www.floraparadise.com/)'을 통해 우리 꽃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2005년 3월부터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자생 식물들을 키우고 연구해오고 있으며, 현재 강원도 일원의 멸종위기식물과 희귀식물들을 조사하고 증식 연구를 하고 있다.

 

앉은부채나 나리난초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식물들과 반대로 좋은 향기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내는, 자신의 영역을 다른 잡초들이나 개미에게 빼앗기지 않고자 어린 싹 일 때부터 강한 향을 내는 꽃향유와 산국, 강한 살균력 때문에 뿌리를 말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의 상자에도 넣었다는 창포의 생태적 특성과 생존전략 등이 소개된다.

 

"우린(하늘매발톱) 날씨가 추워져야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고. 그러니까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겨울이 꼭 필요해! …우리나라는 추운 겨울이 있는 곳이라고. 혹시라도 잘못 알고 가을에 꽃을 피우기라도 하면 씨앗도 만들지 못하고, 또 우리도 죽을지 모르거든. 그래서 겨울이 지나면서 꽃이 피도록 하는 거라고.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 몸에서는 꽃을 만들어도 된다는 신호로 어떤 물질을 만들어. 이 물질 때문에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서 꽃을 피우게 되는 거리고. 그런데 이 물질은 봄에 꽃을 피우고 나면 없어져. 그러니까 이 물질이 다시 생길 때까지는 꽃을 피우지 않는 거야. 물론 이 물질은 겨울이 되어야만 다시 생기고."

-<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에서

 

저자의 우리 풀꽃에 대한 남다른 이력 때문인지 책에는 이처럼 식물들에게 시련의 계절로 더 많이 인식되어 있는 겨울을 이겨내야만 꽃을 피우는 우리나라 꽃들 이야기를 비롯하여 '광릉요강꽃'이나 '동강할미꽃'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진짜 이유 등 여타의 책들에서 다루지 않았던 풀꽃 이야기들이 많다.

 

덧붙이면, 매발톱꽃은 원래 높은 산의 풀밭이나 바위 많은 곳에서 드물게 자라 7~8월에 꽃이 피는 야생화인데, 언제부턴가 화원에서 쉽게 돈을 지불하고 구입할 수 있는 꽃이 되었다. 그리하여 요즘에는 공원이나 가정집의 정원 등에서 4월말~5월부터 한여름까지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야생화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우리 생활 속에 있다.

 

상품성 때문인지 꽃 색깔도 점점 다양해지는 것 같다. 파란색을 비롯하여 노랑과 흰색, 분홍색, 자주색과 이들이 섞인 꽃 등 다양한 색의 매발톱꽃들이 있는데, '하늘매발톱'이란 이름은 하늘색에 가까운 파란색 꽃이 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니 파란색이 아닌 색의 꽃을 피우는 매발톱은 하늘매발톱(꽃)이 아닌 그냥 매발톱(꽃)으로 불러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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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난초. 책에는 이와 같은 우리 풀꽃 세밀화 50여컷이 들어 있는데, 풀꽃이 있는 강원도 산간 등지를 1년 넘도록 다니며 사진으로 찍고 세밀화로 그린 것들이란다. ⓒ 우리교육

나리난초. 책에는 이와 같은 우리 풀꽃 세밀화 50여컷이 들어 있는데, 풀꽃이 있는 강원도 산간 등지를 1년 넘도록 다니며 사진으로 찍고 세밀화로 그린 것들이란다. ⓒ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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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에 찍은 광릉요강꽃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식물은 대략 4천여종, 그중 500종쯤이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것들로 이들이 우리 땅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영영 멸종하는 것이다. ⓒ 그린키

3월 26일에 찍은 광릉요강꽃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식물은 대략 4천여종, 그중 500종쯤이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것들로 이들이 우리 땅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영영 멸종하는 것이다. ⓒ 그린키

간행물윤리위원회 2010 청소년저작및출판지원도서 선정작인 이 책은 좀 특이하게 구성되었다. 대부분의 식물관련 책들이 일방적인 설명이나 감상 위주인 것과 달리 이 책은 화자인 내가(저자 혹은 독자) 만난 풀꽃들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꽃이 '나는 이런 꽃이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고 답하는 형식. 우리 풀꽃들이 훨씬 살갑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용 전체 풀꽃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삶과 연관시켜 들려주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풀꽃 아저씨처럼 1960년대에 태어나 1970년대에 자란 아이들은 무엇들을 좋아했고 무엇을 하면서 놀았는지, 자연이 곧 놀이터였던 당시 아이들에게 풀이나 나무 등은 어떤 존재였는지를 들려주는 '풀꽃 삼촌의 어린 시절 이야기'란 6꼭지의 글들은 60~70년대 우리의 생활상을 담고 있는 귀한 이야기들. 아마도 이 글들을 읽는 어른 독자들 중에는 나처럼 어린 시절을 그립도록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풀꽃도 사람처럼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이야기처럼 잘 나타낸 이 책은, 보면 볼수록 새롭고 재미를 더해 줍니다. 냉이가 여름잠을 자고, 애기앉은부채가 파리를 유혹하고, 박새 잎 한 장 뜯어 뒷간에 던져두면 구더기가 금방 없어지고, 아이들만 눈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산구절초도 아이들만큼이나 하얀 눈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나 김영철 선생처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들 것입니다. '어떤 식물이 있는지, 혹시 내가 처음 보는 식물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살피'다가 우리 꽃의 아름다움을 온 누리에 알리는 '전도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추천글(농부 시인 서정홍)에서

 

'자연을 접하며 자란 계기로 식물학자가 되어 우리 풀꽃 알리기와 보호 및 증식에 앞장서고 있는 저자의 우리 풀꽃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이 책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식물들을 제대로 접할 기회를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우리 풀꽃에 대한 관심과 흥미의 계기가 되어 식물들에 관심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의 바람으로 읽은 <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풀꽃 아저씨가 들려주는 우리 풀꽃 이야기>|저자:김영철| 그림:이승원 박동호|우리교육 출판사|2011-02-28 |13,000원 
#우리 풀꽃 #우리꽃세상 #앉은부채 #나리난초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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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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