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7세는 정말 감옥에서 죽었을까

[리뷰] 루이스 베이어드 역사소설 <검은 계단>

등록 2011.06.01 17:07수정 2011.06.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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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검은 계단> 겉표지

<검은 계단> 겉표지 ⓒ 비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는 비운의 인물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나 능력과는 관계없이 시대의 희생양이 되거나, 몇 가지 우연들이 겹치면서 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비운의 인물들을 꼽다보면 프랑스의 루이 17세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785년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사이에서 루이 샤를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루이 샤를은 루이 16세의 차남이었지만, 장남인 조제프가 사망하면서 루이 샤를이 왕세자로 책봉된다.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은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자 프랑스의 왕당파는 루이 샤를을 새로운 왕인 루이 17세로 선포한다.

하지만 정작 루이 17세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는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바퀴벌레와 빈대가 들끓고 악취가 진동하는 감옥 안에서 죄인 취급을 받다가 그 안에서 사망했다. 고작 10살 나이에.

프랑스 혁명과 함께 무너진 왕정

여기까지는 역사에 기록된 내용이다. 한편으로는 루이 17세의 운명이 워낙 극적이어서인지, 아니면 세상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죽은 것이 불쌍해서인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들이 마치 음모론처럼 만들어졌다. 루이 17세가 감옥에서 죽지 않고 탈출해서 스위스로 떠났다고도 하고 독살되었다고도 한다.

루이 17세를 둘러싼 이런 이야기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들에게 작품을 위한 좋은 소재가 된다. 루이스 베이어드의 <검은 계단>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작가는 루이 17세가 죽었다고 알려진 때로부터 23년 뒤 그를 다시 프랑스 한 복판으로 불러낸다.


작품의 무대는 1818년 파리. 혁명의 폭풍이 지나간 후 프랑스는 다시 왕정으로 복귀했고, 유럽을 충격과 열광으로 휘젓고 다녔던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상태다. 프랑스의 왕위는 루이 16세의 동생이자 루이 17세의 삼촌인 루이 18세가 차지했다.

주인공인 26세 엑토르 카르팡티에는 파리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날 경찰청의 비밀수사관 비도크가 엑토르의 집을 찾아온다. 근처에서 르블랑이라는 사람이 살해당했는데, 그 사람의 몸속에서 엑토르 카르팡티에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쪽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엑토르는 르블랑이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주장하고, 비도크도 그의 말을 믿는 눈치다. 비도크는 엑토르에게 '우리가 이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자'라고 제안한다. 엑토르는 사건 한 가운데로 휘말려 들어가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루이 17세의 이름이 새겨진 장신구가 단서로 등장한다. 거리에서 살해당한 사람과 오래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루이 17세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저자가 묘사하는 19세기 파리의 풍경

실제로 루이 17세가 죽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내가 바로 루이 17세다'라고 주장하면서 나타났던 사람들이 3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중에는 재단사 아들, 시계제조공 아들 그리고 구둣방 아들도 있었다. 심지어 그런 주장을 하다가 영국으로 강제추방된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인생이 꼬여버린 경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루이 17세가 감옥에서 탈출해 살아남았다면 이후 프랑스에서 자신의 진짜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을 것같다. 당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루이 17세는 오직 제거해야할 대상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의문일지 모르지만, 루이 17세가 죽은 지 20년 후에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면 일반 시민들은 그를 반겼을까. 프랑스 국민들은 그 격동기를 잊으려고 했다. 1789년부터 1815년 사이 바스티유 감옥에서부터 워털루 전투 사이의 모든 일을 잊고 왕정복고를 시작하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 소년의 망령이 나타난 것이다. 그 어느 누구보다 잊고 싶어했던 소년의 망령이. 결국 망각이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혁명광장을 온통 피로 물들였건 시기의 기억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개인이건 집단이건, 과거를 전부 털어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 이성은 옮김 / 비채 펴냄


덧붙이는 글 <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 이성은 옮김 / 비채 펴냄

검은 계단

루이스 베이어드 지음, 이성은 옮김,
비채, 2011


#검은 계단 #루이 1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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