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2억 폭탄'에 진보진영은 '공황 상태'

[진단] 시민사회 '즉각 사퇴' ...교육운동진영·유시민 '1심 판결까지 유보'

등록 2011.08.29 16:50수정 2011.08.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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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돈을 줬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233회 제1차 본회의에 곽노현 교육감이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지난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돈을 줬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233회 제1차 본회의에 곽노현 교육감이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곽노현 서울교육감은 누가 보더라도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 더 이상 자신의 직분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큰 사건에 휘말렸다. 사법처리와 관계없이 자신의 거취를 표명해야 한다. 선거에 출마한 두 후보가 금전거래를 했다면 그 자체로 포괄적 대가성이 성립되지 않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말이다. 곽 교육감은 좌고우면 하지 말고 스스로 용퇴하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장직 사퇴 이후, 잇따라 터져 나온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후보단일화 매직(賣職) 의혹사건은 진보진영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지난 26일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의 검찰수사 결과가 보도됐을 때만 해도 여론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따른 보복수사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곽 교육감이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박 교수에게 "선의로 2억 원을 건넸다"고 밝히면서 여론은 급반전됐다. 진보적 시민사회는 그야말로 '공황 상태'에 빠져들게 됐다.

 

29일 오전 내내 진보적 시민사회 인사들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위기였다.

 

"곽 교육감 행위는 잘못이 분명"  

 

이 가운데 진보진영에서 가장 먼저 곽 교육감의 거취에 대해 언급한 것은 진보정당들이다. 박은지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라며 "곽 교육감의 행위는 잘못임이 분명하다"고 못 박았다.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건넨 2억 원은 '선의'로 준 돈이라고 강변하지만 이미 이것은 상당한 거액이고 지원 시기 등을 볼 때 포괄적 대가성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박 부대변인은 이어 "곽 교육감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교육감 사퇴 등 거취 문제를 포함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며 "그것만이 진보교육감의 당선을 위해 힘을 모았던 진보개혁진영, 그리고 곽 교육감의 교육혁신 정책을 지지했던 서울시민에 대한 보답"이라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박명기 전 서울시 교육감 후보에게 2억원을 건넸다고 시인한 이후, 검찰이 대가성 여부를 확인했다고 밝혀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며 "곽 교육감은 모든 진실을 밝히고, 대가성이 사실이라면 책임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노현 서울교육감 선거캠프에 결합했던 한 진보인사는 "본인은 굉장히 억울할 수 있겠지만 조만간 용퇴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진실은 법정에서 가릴 일이고, 서울의 교육을 책임지는 수장이 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은 그 자체로 좋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곽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는 발언인 셈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이미 곽 교육감이 2억 원을 박 교수에게 건넸다고 시인한 마당에 검찰수사의 의도를 문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시민사회에서 곽 교육감을 공동추천한 책임도 면키 어렵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진보진영 내부는 곽 교육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법률공방과 관계없이 여론전에서도 곽 교육감이 계속 직무를 유지하는 것은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

 

실제 곽 교육감이 이번 사건으로 '후보자 매수 및 이해유도죄'에 해당돼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공직선거법 232조에 따라 '후보자가 되지 않게 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재산상의 이익이나 공직을 제공(의사표시 및 약속 포함)'한 혐의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3000만원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과 달리,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에는 곽 교육감이 전달한 2억원의 '대가성' 유무가 확정되는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자신의 직무를 유지하면서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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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돈을 줬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233회 제1차 본회의에 곽 교육감이 참석한 뒤 시의회를 나서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 유성호

지난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돈을 줬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2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233회 제1차 본회의에 곽 교육감이 참석한 뒤 시의회를 나서기 위해 차량에 오르고 있다. ⓒ 유성호

 

1심 판결서 '2억' 대가성 인정되면 그때 거취 결정해야

 

배옥병 학교급식네트워크 대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된 이후 갑자기 불거진 곽 교육감의 2억 전달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곽 교육감이 보수 교육감들처럼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도 끝까지 부인하는 것과는 다른 행태를 보인 점에 주목한다"며 "대가성 여부가 밝혀질 때까지는 이를 지켜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동훈찬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도 "검찰과 법원이 '2억 원'에 대한 대가성이 있다고 입증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여론몰이에 올라타 진보진영마저 함께 공세를 취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동 소장은 지난해 서울교육감 선거 상황을 전달하면서 당시 후보단일화 과정이 매수를 통해 이뤄져야 할 정도로 곽 교육감과 박 교수 측이 팽팽히 겨루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진보적 서울교육감 경선 직전 뛰쳐나가 홀로 후보등록을 하고 선거운동을 한 후보였고, 만일 박 교수에게 돈까지 주면서 후보사퇴를 종용할 것이었다면 뭐 하러 통장을 통해 계좌입금을 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이 사건에서 검찰의 역할은 곽 교육감이 건넨 돈의 출처와 성격을 분명히 밝혀내는 것"이라며 "돈의 성격에 논란이 있는 만큼 10월 보궐선거 일정에 맞춰 용단을 내리라는 식으로 곽 교육감의 거취를 촉구할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동 소장은 "일단 곽 교육감의 '돈 문제'와 진보교육의 진로는 별개로 구분해야 한다"며 "이 건으로 한꺼번에 진보교육을 매도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따라서 그동안 추진했던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학생체벌금지, 교육계 부패척결 등 진보적 교육의제는 이번 사건과 관계없이 계속 추진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이날 오후 국민참여당 인터넷방송 '유시민의 따뜻한 라디오'에 출연해 "헌법에 명기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법원의 판결이 있을 때까지 곽노현 교육감은 무죄"라며 "사퇴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유시민 대표도 수긍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백만 참여당 대변인에 따르면, "곽노현 교육감 본인은 2억원의 성격에 대해 대가성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대가성을 입증할 때까지 또 법원이 대가성을 인정할 때까지는 피의자 인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유 대표의 발언을 전했다. 

 

이처럼 곽 교육감의 거취를 둘러싸고 진보진영 내부의 설왕설래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곽 교육감이 벌여놓은 진보적 교육의제들이 이번 사건과 결부돼 무더기로 소멸될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이번 사건과 진보적 교육의제를 구분지어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노현 사건 관계없이 무상급식 등 진보교육 실시돼야

 

배옥병 대표도 "곽노현 교육감 사건과 관계없이 초등학교 5, 6학년에 대한 친환경 무상급식은 2학기부터 안정적으로 실시돼야 한다"며 "안전하고 질 좋은 무상급식에 대한 로드맵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국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검찰은 물론 보수언론은 진보인사가 공적 사안에서 사소한 실수를 하나해도 죽이려고 달려든다"며 "하물며 2억 수수는 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곽 교육감 사건을 보면서 향후 진보인사들이 이러한 적대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며 "곽 교육감이 준 2억 원의 '대가성' 여부는 검찰이 입증해야 할 사안인데 관건은 액수, 인과관계, 지급전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재판과정 동안 곽 교육감 자신은 물론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를 것을 생각하니 난감하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곽노현 #친환경 무상급식 #대가성 #학생체벌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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