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이 술 먹고 계산하라고 하청에 전화"

[잠입취재] 화력발전소 접대장소 영흥도 D룸살롱에 가다

등록 2011.09.27 20:38수정 2011.09.2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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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에 건설된 화력발전소 1호기부터 4호기. 4개의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데 수조원이 투입됐다. ⓒ 최지용


"우리 가게는 발전소(한국남동발전) 안 좋아해요. 무슨 발전소가 우릴 먹여 살려요. 거기 하청이 다 먹여 살리는 거지, 발전소가 절대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에요. 걔들은 그냥 잘난 척하는 거고 하청이 다 내는 거예요. 우리도 하청을 보고 장사하는 거지."

인천 영흥도 화력발전소 건설현장 인근 D룸살롱의 여종업원 A(여, 33)씨는 무척이나 솔직했다. 그는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 '한국남동발전' 직원들이 협력업체들로부터 광범위한 향응접대를 받은 장소인 이곳에서 잠시 문을 닫은 2년여를 제외하고 9년 가까이 일해 왔다.

지난 20일 밤, A씨는 D룸살롱을 잠입 취재한 <오마이뉴스> 기자들에게 섬에서 이뤄지는 접대 관행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발전소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술을 먹어도 하청업체에 전화해 계산을 시킬 정도"로 접대 술자리가 만연해 있었다.

수조 원 예산이 투입된 공공사업의 발주처 직원들이 협력업체들에게 억대의 향응접대를 받은 것이다.(관련기사 :  화력발전소 건설현장 영흥도는 '접대천국') 이는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24개월(2006년~2008년)치 D룸살롱 매출장부에 기록된 내용으로, 발전소 공사가 시작된 시점(1999년)부터 현재까지 이같은 접대가 이뤄졌다면 접대 액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요새같은 룸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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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동발전 직원들이 협력업체들에게 향응접대를 받은 인천 영흥도의 D룸살롱.(붉은 원) 큰 길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5층 건물 옥상에서 촬영한 사진.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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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D룸살롱으로 연결되는 길. 외길이고 가로등도 설치되지 않은 비포장 도로다. 큰 길가에서 이 길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기 쉽지 않다. ⓒ 최지용


서울 시내에서 차로 달려 2시간여. 오이도와 시화방조제를 건너 대부도를 가로지르면 영흥도를 육지와 연결하는 영흥대교를 만난다. 1997년 한국남동발전이 화력발전소를 지으면서 함께 놓았다. 지난 2001년 준공된 이 다리가 있기 전까지 영흥도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대형 수산물직판장이 있는 걸 제외하고는 어느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다. 도로를 따라 논밭이 있고 듬성듬성 집들이 보였다. 화력발전소 공사현장은 섬 중앙에 산을 끼고 돌아 반대편 서쪽 바다에 자리했다.

멀리 커다란 굴뚝 세 개가 보였다. 그 중 하나가 나머지 두 개보다 조금 굵은 모양새다. 상대적으로 폭이 좁은 굴뚝은 화력발전소 1호기와 2호기, 굵은 하나는 3호기와 4호기가 동시에 쓰는 굴뚝이다. 발전소 주변에는 철조망이 처져 있고 정문 앞 경비도 삼엄했다.

바로 옆에는 테마공원인 '에너지 파크'가 조성돼 있다. 6만5000제곱미터 면적에 10개 테마로 이뤄진 이 공원 역시 발전소가 들어오면서 지역개발 차원으로 세워진 공간이다.

문제의 D룸살롱은 그 곳에서 1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발전소 인근의 도로 위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룸살롱까지 가기 위해서는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비포장도로를 30여 미터 지나야 했다. 물론 '들어가는 입구' 같은 표시는 전혀 없었다.

언뜻 봐서는 그곳에 룸살롱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A씨 등 여종업원들 역시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어디 이상한 곳에 끌려가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밖으로부터 철저히 숨겨진 요새같은 위치였다.

"접대 때문에 힘들어 하는 하청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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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흥도 '룸살롱'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D룸살롱. 이곳의 연간 매출액은 5억2000여만 원에 이른다. ⓒ 최지용


오후 9시쯤, 손님으로 가장해 D룸살롱을 방문했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단층짜리 건물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꽤 넓은 로비에 4개 방문이 보였다. 이곳에는 A부터 F까지 이름이 매겨진 총 6개의 방이 있다.

A씨와 함께 B(27)씨가 들어왔다. B씨는 룸살롱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하고 A씨를 따라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고 한다. A씨는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매출장부에 2006년부터 꾸준하게 이름이 등장한다.

A씨는 과거의 D룸살롱이 어떻게 생겼고, 어느 정도 장사가 됐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1999년 12월 22일에 오픈을 했어요. 여기 사장님이 일전에 충북 금산에서 룸을 했었는데  그걸로 돈을 벌어서 여기 만들었어요. 예전에 다리가 있기도 전에 발전소가 들어온다고 듣고 여기 사장님이 배로 자제를 날라서 건물을 지었죠.

(주인은) 괜찮게 벌었어요. 예전에는 손님도 많았고 사람들도 많았고 그때는 예약하고 왔어요. 처음에 왔을 때는 주변에 건물도 없고 뒤에 주차장에 차 세워두면 지나가다 (밖에서) 안 보이니까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어요."

개업한 날부터 손님이 있었다. A씨는 "첫날 문 열자마자 두 테이블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이 룸살롱은 호황을 누린다. 3~4호기가 완공되는 2009년 전까지는 말이다. 공사가 끝나가면서 룸살롱의 매출도 줄기 시작했다. 특히 발전소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A씨가 계속 말을 이었다.

"하청들이 (접대 받은 한국남동발전) 감독들을 인터넷이나 본사에 찌르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래서) 2008년도부터 (손님이) 줄었어요. 특히 발전소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사건이 많이 터졌어요.

하청은 1~2호기, 3~4호기가 공사를 할 때 한 번에 7000명이 넘게 들어와요. 대기업 원청 회사가 들어오면 그 밑으로 하청이 쫙 들어와요. 그리고 몇 번에 걸쳐 200만 원, 300만 원씩 접대를 해요. 여기서(발전소) 감독들이 잘 안 해주면 하청이 망하잖아요. 사실 여기 하청들이 단가가 크게 들어온 게 아니라서 접대도 부담이에요. (접대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 많았어요."

"월급이 250만 원인데 제 돈 주고 우리 가게 못 온다"

<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인천 영흥도 화력발전소 인근 D룸사롱의 매출장부.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24개월 치 매출이 기록돼 있다. A4용지 한 장에 하루가 기록됐으며 이 가운데 400여 장에 한국전력의 자회사 한국남동발전을 비롯한 발전소 건설 공사 관련 업체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한전 및 남동발전이 기록된 장부는 색지로 표시를 했다. ⓒ 오마이뉴스



현대 아무개 과장과 한전(한국남동발전) 감독관이 함께 한 술자리 장부 기록. 양주(W.D)를 세 병 마셨고 세 명의 접대 여성이 2차를 나갔다. 술값과 2차 비용으로 174만 원이 나왔다. ⓒ 오마이뉴스


접대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을까?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룸살롱 매출장부에는 남동발전 직원과 협력업체 사람이 함께 와서 술을 마신 기록(19건)보다 한국남동발전 직원들만 온 기록(82건)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그런 술자리는 한국남동발전 직원들끼리 와서 마시고 자기들이 계산을 했을까? 그게 아니라는 게 A씨의 증언이다.

"발전소는 자기들이 술을 먹고도 하청에게 술값을 넘겨요. 절대 그 사람들(발전소) 월급 가지고 우리 가게 못 와요. 밑(하청)에서 와서 돈을 내주니까 먹고 마시고 노는 거지. 삼성, 현대, SK 같은 대기업도 아니고 그 밑에, 또 그 밑에서 돈을 내요. 자기 돈 가지고는 한 번도 안 와요.

(한국남동발전 직원) 월급이 250만 원이에요. 그런데 그것들이 오겠어요? 그런데 막상 와서는 막 먹어요. 그리고 하청한테 전화해요. 정말 재수 없어요. 왜 자기들이 먹고 밑에다 그러냐고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B씨도 말을 거든다. 그녀는 "2차도 그렇게 계산한다"며 "오래 있지 않아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자기들끼리 와서 마시고 나가면서 (하청에) 전화해서 계산하게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여기 아가씨들도 그런 사정을 아니까 그런 분들에게 잘 해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청업체를 비롯한 협력업체들이 한국남동발전 직원들을 접대하는 것에 깊은 혐오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청의 비애를 많이 보죠. (한국남동발전) 감독들을 보면 나이가 어려요. 40세도 안 된 감독들인데, 하청업체 현장 소장들은 60세 가까운 사람들이에요. (접대 장면을 보면서) 제일 싫었던 게 어린 감독들이 소장들에게 '야!', '너!' 그러는 거예요.

나이 어린 사람들이 그러는 게 너무 얄미워요.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예의가 조금 있었는데 몇 번 (접대) 받아보니까 감독인 사람들이 거기 물들어 버린 거야. 자기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니까."

"5~6호기 공사 본격적으로 되면 아가씨들 더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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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흥도에 위치한 한국남동발전 관사 전경. ⓒ 최지용


사건 제보자와 전직 여종업원이 증언했던 일명 '도시락'도 실제로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시락'은 손님이 룸살롱을 방문하지 않고 여성 접대부가 술과 안주를 가지고 한국남동발전 영흥사택이나 인근 모텔로 가는 일을 말한다. 밖에 나가서 먹기 때문에 '도시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통 '도시락'을 나가면 2차 개념인 성매매까지 포함된다.

"도시락은 저도 정말 신기하게 생각했어요. 근데 어디가도 다 있어요. 이런 건설사 있고 공사하는 곳 가면 거의 다 있는 거 같아요. 한번에 50만 원도 있고 60만 원도 있어요. 우리는 그거 정말 싫어해요. 처음 보는 사람이고 무섭고 위험해서."

B씨도 '도시락'을 나가 봤지만 "다시는 가기 싫다"고 말한다. 그녀는 "밖에서 아무한테도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낯선 사람과 있어야 한다는 게 무섭다"라며 "많지는 않고 가끔 그런 일이 있기는 한데 되도록 안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B씨와 '2차'로 불리는 성매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2차는 얼마나 자주 있나요?
"손님들 오면 거의 2차 나가죠. 근데 요즘에는 손님 자체가 워낙 줄어서..."

- 많이 나가면 힘들지 않나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면 나가야죠."

- 여기 손님들은 상대하기 괜찮나요?
"오히려 이런데 손님들이 괜찮아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어도 뭐 막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이상한 손님은 시내에 더 많죠."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다른 방에 손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A씨에게 "오늘은 손님이 없는 것 같다"고 하자 "10시가 좀 넘어야 손님이 들어온다, 어제는 10시에 여기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다 방에 들어갔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아가씨가 13명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반도 없긴 하다"고 덧붙였다.

계산을 위해 들어온 룸살롱 실장은 "여기 5~6호기 공사가 이제 시작했으니까 본격적으로 되면 다음 주에 아가씨들도 더 들어오고 술도 여러 종류로 들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밖으로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다 돼 있었다. 큰 도로까지 또 다시 가로등도 없는 어둡고 음침한 비포장 길을 빠져 나왔다. 그때까지도 룸살롱으로 들어오는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남동발전 #영흥도 #한국전력 #한전 #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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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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