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플란트노록수
이명화
우리는 '식물'이라 하면 당연히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생각한다. 뿌리 없는 나무를 어디 상상이나 해봤으랴. 그런데 어느 선교사님이 계시는 선교지에는 뿌리 없는 식물이 있단다. 소위 '공기식물'이라 불리는 에어플란트가 바로 그것이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 이 꽃은 대략 50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에어플란트는 아무 나무 위에 걸쳐 놓으면 공기 중의 수분을 먹고 자라 꽃을 피운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의 고정관념을 왕창 깨뜨리는 생명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 고정관념, 편견, 독선은 너무도 완고해 철옹성과도 같은 것들도 있다.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사실상의 근거 없이 지니고 있는 완고한 의견 혹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 종교에 대한 편견, 혈액형, 성에 대한 편견 등 편견의 종류도 다양하다.
우린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갈까. 생각의 게으름, 만남의 게으름, 혹은 굳어진 사고 때문에 더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지도 못한 채 주워들은 정보로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진 않을까. 나의 생각과 다른 것을 두고 '다름'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고 매도해버리진 않았는지. 그래서 철옹성처럼 높고 두꺼운 편견의 벽을 세우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우를 범하진 않는지.
우리는 종종 상대방을 겪어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흘린 정보들, 특히 험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결국, 색안경을 끼고 상대방을 각색하게 된다. 내가 본 상대방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 정보로 각색된 상대방을 본다는 이야기다.
정보 없이 상대방을 만났을 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은 첫인상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전 정보를 듣고 바라보는 그 사람을 만났다면, 나의 판단이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고 왜곡하게 된다. 결국, 그 사람과의 좋은 만남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주입된 사전정보로 인해 상대방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 배움의 기회, 만남의 기회, 사랑의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아는 A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B라는 사람이 왔다. 우린 함께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고, 곧 B는 돌아갔다. A는 나와 가까운 사이였지만 B는 겨우 몇 번 만나봤을 뿐이었다. 나는 A에게 B의 좋은 인상에 대해 말해줬다. 그때 A는 마치 내가 모르는 단점이 많지만 다 말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거야, 네가 좋으니까 좋은 거야."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그 말뜻을 알았다. 나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내 느낌 그대로를 말한 것이었고, 그저 내가 좋게 보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B에 대한 좋지 않은 정보들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받은 좋은 느낌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다. 만약 내가 B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마음을 곱게 쓰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만남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일이 얼마나 많을지 문득 생각해 본다. 편견의 벽은 완강하게 버티고 있을수록 더 높아지고 견고해진다.
문득 어느 책에서 읽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그네 한 사람이 어떤 마을에 도착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다. 마을 어귀에는 나이 든 할아버지 한 분이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나그네가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하며 물었다. "할아버지, 이 동네는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이네요. 이곳에 사시는 분들도 다 그렇게 평화로운 분들이겠죠?" 그러자 할아버지가 물었다. "전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어땠소?" "그 마을 사람들은 정말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거칠고 거짓말쟁이인데다 작은 이해관계로 싸워대는 이들이죠. 그들이 싫어서 전 그 마을을 떠나왔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이 마을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해가 바뀌고 다른 나그네 한 사람이 마을로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마을 어귀 아름드리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나그네 역시 앞에 왔던 사람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그네의 대답이 달랐다. "아, 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친절하고 다정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입니다. 아마 당신이 이 마을을 떠날 때는 참으로 좋은 기억을 갖게 될 겁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 있다면, 지금 만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