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에어플란트'처럼

편견의 벽을 허물자

등록 2011.12.20 16:42수정 2011.12.20 16:4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에어플란트 노록수
에어플란트노록수이명화

우리는 '식물'이라 하면 당연히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생각한다. 뿌리 없는 나무를 어디 상상이나 해봤으랴. 그런데 어느 선교사님이 계시는 선교지에는 뿌리 없는 식물이 있단다. 소위 '공기식물'이라 불리는 에어플란트가 바로 그것이다. 남아메리카가 고향인 이 꽃은 대략 50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에어플란트는 아무 나무 위에 걸쳐 놓으면 공기 중의 수분을 먹고 자라 꽃을 피운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의 고정관념을 왕창 깨뜨리는 생명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 고정관념, 편견, 독선은 너무도 완고해 철옹성과도 같은 것들도 있다. 편견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사실상의 근거 없이 지니고 있는 완고한 의견 혹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 종교에 대한 편견, 혈액형, 성에 대한 편견 등 편견의 종류도 다양하다.

우린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며 살아갈까. 생각의 게으름, 만남의 게으름, 혹은 굳어진 사고 때문에 더이상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지도 못한 채 주워들은 정보로 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진 않을까. 나의 생각과 다른 것을 두고 '다름'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고 매도해버리진 않았는지. 그래서 철옹성처럼 높고 두꺼운 편견의 벽을 세우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우를 범하진 않는지.

우리는 종종 상대방을 겪어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흘린 정보들, 특히 험담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결국, 색안경을 끼고 상대방을 각색하게 된다. 내가 본 상대방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 정보로 각색된 상대방을 본다는 이야기다.

정보 없이 상대방을 만났을 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은 첫인상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전 정보를 듣고 바라보는 그 사람을 만났다면, 나의 판단이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고 왜곡하게 된다. 결국, 그 사람과의 좋은 만남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주입된 사전정보로 인해 상대방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 배움의 기회, 만남의 기회, 사랑의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아는 A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B라는 사람이 왔다. 우린 함께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고, 곧 B는 돌아갔다. A는 나와 가까운 사이였지만 B는 겨우 몇 번 만나봤을 뿐이었다. 나는 A에게 B의 좋은 인상에 대해 말해줬다. 그때 A는 마치 내가 모르는 단점이 많지만 다 말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거야, 네가 좋으니까 좋은 거야."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곧 그 말뜻을 알았다. 나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내 느낌 그대로를 말한 것이었고, 그저 내가 좋게 보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B에 대한 좋지 않은 정보들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받은 좋은 느낌을 그대로 흡수한 것이다. 만약 내가 B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마음을 곱게 쓰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부터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만남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일이 얼마나 많을지 문득 생각해 본다. 편견의 벽은 완강하게 버티고 있을수록 더 높아지고 견고해진다.

문득 어느 책에서 읽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그네 한 사람이 어떤 마을에 도착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다. 마을 어귀에는 나이 든 할아버지 한 분이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나그네가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하며 물었다. "할아버지, 이 동네는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이네요. 이곳에 사시는 분들도 다 그렇게 평화로운 분들이겠죠?" 그러자 할아버지가 물었다. "전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어땠소?" "그 마을 사람들은 정말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거칠고 거짓말쟁이인데다 작은 이해관계로 싸워대는 이들이죠. 그들이 싫어서 전 그 마을을 떠나왔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이 마을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해가 바뀌고 다른 나그네 한 사람이 마을로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마을 어귀 아름드리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나그네 역시 앞에 왔던 사람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그네의 대답이 달랐다. "아, 전에 있던 마을 사람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친절하고 다정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입니다. 아마 당신이 이 마을을 떠날 때는 참으로 좋은 기억을 갖게 될 겁니다."

편견을 가진 사람 있다면, 지금 만나보시길...

에어플란트 뿌리없는 공기식물...
에어플란트뿌리없는 공기식물...이명화

천 번 만 번 글벗으로 만나는 것보다 어쩌면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오랫동안 글벗으로만 알고 지냈을 뿐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던 사람이 있다. 나는 그에 대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연히(?) 지나가다가 만나게 됐고, 그 후로 몇 번 더 만났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편견이 길을 막고, 만남을 방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만남은 십 년 글벗으로 만났던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줬다.

그 후 나는 깨달았다.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가서 만나는 것'이 오히려 편견의 벽을 허무는 기회요, 배움의 기회요, 좋은 만남의 기회라는 것을.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래서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박완서의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는 일생동안 레드 콤플렉스에 짓눌려 살았던 작가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 젊은이들은 빨강색을 역동적이고, 정열적이며, 아름다운 기쁨의 색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경험한 작가에게 빨강색은 '의식의 한 올을 가시처럼 찌르고 잡아당기는 이상한 빛깔'이었다. 작가는 또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에서도 사람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고정관념이 돼 그 사람의 본질을 보는 데 얼마나 큰 방해가 되는지 언급하기도 했다.

편견, 혹은 고정관념은 하나의 감옥과도 같다. 스스로를 가두고 꼼짝 못하게 하는 감옥이다. 이 감옥은 발전과 성장,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원초적으로 봉쇄해버리고 고정해버린다. 경직된 사고와 생각으로 상대방을 재단하고, 도장 찍고, 그 색깔 안에 가두게 된다. 서로에게 다가서지도, 마음 열지도 못하게 만든다. 그것은 배움의 기회, 깨달음의 기회, 보석 같은 만남과 소통의 기회를 잃게 한다.

고정관념, 편견의 벽을 날마다 허물고 관계의 장으로 한 걸음씩 나가보자. 편견 없이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갔고, 사람들이 꺼리는 세리의 친구가 돼 준 예수처럼 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지금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만남은 '신비'다.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물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사심 없이 다가간다면 만남 속에 숨겨진 신비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편견에 사로잡힐 때, 뿌리 없는 공기식물 '에어플란트'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좁은 소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 신비, 놀랍지 않은가.
#편견 고정관념 #에어플란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3. 3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4. 4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5. 5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