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고 애도 없는 네가 나가"...그렇게 잘렸습니다

[학교 비정규직①] 학교 급식실의 그림자 노동자를 아십니까

등록 2012.03.15 20:59수정 2012.03.1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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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비정규직으로 돌아간다. 교무실, 급식실, 과학실, 도서실, 돌봄교실, 방과후 교실 등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 이들은 이름이 없다. 공무원도 교사도 교직원도 아니다. 그저 학교 비정규직인 이들은 고용불안, 근속에 따른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심화, 임금과 복리후생의 차별, 임의적 근무일수, 경력 불인정 등 모든 부분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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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농성하는 급식조리 종사원들. ⓒ 노동세상


부대찌개를 끓이는 김지영(38·가명)씨의 손은 날랬다. 쉽게 쉬지도 않았다. 식사 후엔 부엌을 말끔히 청소했다. 미리 손질해 둔 대추로 어느새 대추차까지 끓였다. "요리는 원래 좋아하는데 청소는 직업병 같아요"란다. 김씨는 서울 강서구 ㄱ중학교 급식조리 종사원이었다. 조리사 자격증도 있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잘렸다.

"원래 1년 계약인데 6개월만 하자는 거예요. 왜냐고 물었더니 행정상 이유도 있고 좀 특수한 상황이라고, 그래도 항상 필요한 인력이니까 재계약이 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계약했죠."

ㄱ중학교의 인원은 1470명, 조리원은 총 10명이었다. 중학교의 경우 학생 160명당 조리 종사원 1명을 둔다는 교과부의 인력배치 기준에 따라서다. 2시간 반 동안 1470명의 밥, 국, 김치, 반찬 두 가지를 만들어 각 학급으로 날라야 한다. 감자가 익는 시간을 재촉할 순 없었다. 사람이 빨라져야 했다. 당연히 조리실은 전쟁터가 됐다. 서로 손이 안 맞으면 느려진다. 말 한마디 나누기는커녕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일쑤였다.

메뉴가 카레나 짜장이면 한숨이 나왔다. 여러 가지 채소를 썰어 볶아내고 소스도 끓여내야 하는 만큼 손이 많이 간다. 끈적한 소스는 설거지도 힘들다. 튀김을 만드는 날은 모두 긴장한다. 모두들 뜨거운 기름에 데인 경험이 한 번씩은 있다.

음식하는 동안엔 물도 못 먹어

점심을 빨리 먹고 배선원들과 함께 각 반으로 음식을 날랐다. 아이들은 고기를 좋아한다. "내 돈 내고 먹는데 왜 고기반찬을 적게 먹으라 하느냐"며 따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급식의 의미를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음식 귀한 줄 모르고, 나눠 먹는 법보단 돈 냈으니 소비자라는 권리만 주장하는 게 좀 안타깝죠. 그래도 '다른 애들도 먹어야지. 부족하면 또 가져다 먹으라'고 타이르면 수긍해요. 애들은 착해요."(김지영 조리원)

오히려 어려운 건 교사 쪽이다. 반찬투정을 하거나 바닥에 흘린 음식을 치우라고 시키는 경우도 있다. 교사를 맡은 조는 일을 30분씩 더 한다. 배식을 돕고 부족한 음식을 채워 주고 나면 빈 그릇들을 세척실로 가져와 씻고 조리실을 청소한다.


조리하는 동안엔 화장실은커녕 물 마실 시간도 없었다. 결국 김씨는 변비에 걸렸다. 30개가 넘는 무거운 밥솥과 반찬통, 식판들을 나르는 어깨와 팔다리도 나을 틈이 없다. 아파도 조리실 사정을 생각하면 쉴 수가 없다. 며칠 속병을 앓다 병원에 간 한 언니도 기어이 다음날 출근을 했다. 김씨는 '너 때문에 내가 더 힘들어 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고 일지에 적었다. '서로를 돕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는 아닐까'라고도 덧붙였다.

그렇게 일한 월급은 고작 80만 원. 학교 비정규직의 임금은 연봉제를 따른다. 250일 근무일수를 책정하고 하루 일당을 곱한 후 12개월분으로 나눠서 준다. 호봉도 추가수당도 없다. 10년째 일한 조리사 월급이 87만 원이었다. 오래 일할수록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가 더 커진다.

6평 남짓한 휴게실에 꽉 차 있는 '언니들'

쉴 공간은 6평 남짓한 좁은 탈의실 겸 휴게실뿐. 10명이 다리를 펴고 앉기도 힘들었다. 작년 여름부터 고장 난 채인 보일러는 좁은 방바닥의 반절도 데워주지 못했다. 급식을 실시하지 않는 시험기간에도 조리원들은 출근해 하루 종일 휴게실에서 쪼그려 떨다 퇴근해야 했다. 연차를 써서 유럽 여행을 가는 영양사를 다들 부러워했다.

조리원 모두 자녀를 키우는 40~50대 '언니들'이었다. 김씨는 배즙 따위를 싸 가서 언니들과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곤 했다. 매일 다른 음식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이 되면서 급식실의 분위기는 미묘해졌다. 교장과 행정실장, 영양사가 조리원들을 모아놓고 "학생 수가 70명 정도 줄어서 조리원을 8명으로 줄여야 하니, 알아서 나가 달라"며 "아니면 근무평가를 통해 내보내겠다"고 했단다. 10명 중 무기계약직 전환대상자는 6명이었다. 나머지 4명은 계약을 해지하고, 2명을 신규 채용하겠다 했다.

김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학생 수가 준다고 해도 조리원 1인이 맡아야 할 학생 수는 170여 명이었다. 병원조차 마음대로 못 갈 정도로 부족한 인원을 더 줄이겠다니 이상했다. 업무에 익숙한 기존 직원과 재계약하지 않고 굳이 신규채용을 하겠다는 것도 그랬다. 학교는 관례라고 답했다. 김씨의 생각은 다르다.

"학교가 고용 책임을 지는 데 부담을 많이 느끼고, 사람들을 쉽게 쓰고 자를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학교가 앞으로 신규채용자는 3개월에 한 번씩 근무평가를 하고 능력이 떨어지면 내보내겠다고 했거든요. 3개월은 수습 기간이니까 부당해고에 안 걸리잖아요."

내년엔 학교 식당을 신설할 계획이라는 말도 의심의 근거다. 식당을 이용하면 반별 배식을 돕는 업무가 줄어든다. 조리원 수를 줄일 근거가 될 수 있다.

신입이 나가는 게 관례라니...

지난 1월 20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린 제주도 학교비정규직 결의대회에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을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제공


곧 조리원들은 근무평가를 받았다. 평가는 업무능력보다는 조리원들의 관계를 갈랐다. 조리원들은 자신과 동료의 이름이 적힌 A4 용지 한 장에 동료의 점수를 A-B-C 등급으로 나눠 매겼다. 분위기는 날카로워졌다. 조리원 몇몇은 영양사에게 '같이 일하기 불편한 사람'을 미리 건의했다. 김씨에게는 "신입이 나가는 게 관례" "그래도 가장 젊고 애도 없는 네가 나가라"고 했다. 결국 김씨는 계약해지를 당했다.

예상은 했다. 살면서 처음 겪는 해고도 아니었다. 그래도 고스란히 상처가 됐다.

"2월 28일까지는 출근을 해야 하거든요. 온종일 일도 없이 휴게실에 부대껴 있어야 하잖아요. 해고된 사람들 앞에서 재계약 된 언니들이 기대에 차서 막 내년 얘기를 하는데, 솔직히 마음이 좀 그랬어요. 한 번은 계약해지 된 언니한테 '니가 니 근무평가를 잘못해서 해고된 거'라고 그러는 거예요. 사람들의 그런 태도가 힘들었죠. 한편으로는 '여기서도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구나'라는 느낌이… 내 존재가 좀 서글퍼지더라고요."

김씨는 다시 이력서를 들고 들어갈 학교를 찾고 있다. 다음 2월에는 '강퇴'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노동세상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노동세상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동세상 #비정규직 #학교비정규직 #급식조리원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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