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타도한 한국, 그 속에 답이 있다"

[깨어나자 2012 : 석학을 만나다 1-②] 놈 촘스키 MIT 교수

등록 2012.03.14 21:53수정 2012.03.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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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이 올바를 때, 역사의 흐름은 퇴보하지 않는다. 미래를 약속하는 언어들이 출렁이는 2012년, 온 지구를 가로질러 30여개국에 선거가 있다. 변화의 시기, 한 생각은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자 <오마이뉴스>는 세계의 지성들을 만난다. 그들의 통찰력을 빌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내면의 지혜를 깨우려 한다. 한 생명이 밝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깨어나자 2012' 인터뷰 시리즈는 그 노력의 하나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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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구럼비를 죽이지 말라'(Don't Kill Kangjung Kurumbi)는 의미로 팻말을 들고 있는 놈 촘스키 교수 ⓒ 안희경

'강정 구럼비를 죽이지 말라'(Don't Kill Kangjung Kurumbi)는 의미로 팻말을 들고 있는 놈 촘스키 교수 ⓒ 안희경

2012년 3월 9일 미국 보스턴. 양지바른 모퉁이에 손가락만 한 수선화가 뾰족이 올라오고 있다. 놈 촘스키 교수 연구실로 가는 길, 진분홍 꽃을 샀다. 봄을 전하고 싶었다.

 

놈 촘스키 선생과의 첫 연결은 1년 전이다. 내가 보낸 이메일에 '바쁜 일정이라 약속을 장담하기 어렵다' 친히 답을 해왔고, 그 후 여러 번 연락이 오갔다. 그러던 지난여름 85크레인 위 뜨거운 철판에 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경찰이 진압하려 했을 때, 다시 선생께 편지를 썼다. 하룻밤을 새워 쓴 편지, 하지만 답장은 보낸 지 20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이미 다른 이에게 지지 발언을 보냈다며 연락해줘서 고맙다고. 다행히 연대사를 받은 분과 연결되어 언론에 공개할 수 있었다.

 

이번 인터뷰 길에 김진숙 지도위원의 편지를 전했다. 내용을 말하기도 전, 선생은 다급히 물었다. 그녀는 지금 어떠하냐고. 무사히 내려왔고 많은 이들이 모였었다며 사진집을 펼쳐 보이니 활짝 웃었다. 궁금하였다고 했다. 그 정다움 그대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한국인에 대한 깊은 믿음을 읽었다.

 

- 올해 한국에는 큰 선거가 모두 치러집니다. 선거 정국에서 의견은 이익에 따라 나뉘고, 현안도 선거용 전략으로 흡수되어 재생산됩니다.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처럼 후보 선정부터 고도의 마케팅으로 여론몰이에 집중하죠. 선거 비용도 증가하구요. 오바마 대통령 재선 비용이 10억 달러(한화 약 1조1000억 원)라고 하더군요. 오늘날의 선거는 자본 없이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다수의 의견이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다수를 대변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소수가 다수의 표를 구매하고 책임은 다수가 지는 덫이 되는 것은 아닌지요.

"민주주의는 권한을 갖고 있는 다수 대중의 뜻을 그들의 대변인이 실현하는 시스템 속에 자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은 없습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 18세기에는 현대 민주주의의 모델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입헌제가 자리 잡고 나서 다수는 통치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1780년대 입헌제로 돌아가 보면 제일 먼저 대부분의 대중이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음을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단적인 예가 토착 인디언들이 배제되어 있는 거죠.

 

헌법에 있는 5번째 수정조항은 '그 누구도 정당한 법절차에 따르지 않고 권리를 빼앗길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누구'의 범위가 어떻게 될까요? 인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토착 원주민은 어떤 권리도 없었기에 축출됐고 몰살당했어요. 노예도, 여성도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었고, 남편이나 아버지의 소유였습니다. 이런 일은 지난 세기까지 이어졌으며, 가난한 사람들 역시 권리에서 제외됐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안정되면서 매우 제한적인 권리를 갖고 참여하게 되었죠.

 

시스템은 권력이 부자의 손안에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미국 헌법을 만든 핵심인물인 제임스 매디슨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힘은 재산권을 존중하는 사람들, 즉 부자의 손안에 있을 것이며, 다수에 대항해 그 풍요, 부유함을 보호할 것이다.' 참으로 노골적이죠. 이것은 입헌제에서 왜 최고의 권력이 투표가 아닌 상원의원 손에 있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미국 헌법 제정 회의(1787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개최)에서 논의된 사안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오갔죠. '만약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갖는다면 그 속에서 대중의 다수는 그들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이 다수가 될 수 밖에 없고, 그들은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는데 표를 쓸 것이다. 농지를 다시 구획하는 토지개혁 등을 통하여.' 그때는 대부분 농경 사회였습니다. 헌법제정자들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고 다수가 누리는 권력을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죠."

 

"1980년대 한국인들은 잘 조직되었고, 함께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놈 촘스키 교수에게 전달한 희망버스 투쟁 사진집 <사람을 보라>.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대사 감사 편지도 함께 전달받은 촘스키 교수는 무엇보다 김 위원의 안부를 염려했다. ⓒ 안희경

놈 촘스키 교수에게 전달한 희망버스 투쟁 사진집 <사람을 보라>.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대사 감사 편지도 함께 전달받은 촘스키 교수는 무엇보다 김 위원의 안부를 염려했다. ⓒ 안희경

- 근대 민주주의가 갖는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고 모든 제도의 출발이 기득권의 효율적 통치 수단으로 나왔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회는 본능적으로 안정을 바랍니다. 갈등을 잠재우는 적당한 타협을 찾아갑니다.

"이건 참으로 흥미로운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18세기 미 헌법 창안자들이 했던 그런 질문이 정치 과학사의 초창기부터 나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정치그룹이 나눈 고민도 같습니다. 그는 여자도 아니고 노예도 안 되며 자유를 갖고 있는 남자들과만 토론했습니다. 미국의 근대 민주주의와 아주 비슷하죠. 그는 아테네에서 '다수가 지배하는 일이 생긴다면?'이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도 이렇게 말할 거에요. '다수들은 부자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힘을 사용하겠지. 그리고 그것은 옳지 않아.' 시간을 뛰어넘어 아리스토텔레스와 매디슨은 같은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둘은 정 반대의 답을 끌어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은 불평등을 감소하는 것입니다. 그는 복지국가를 이루는 법이 답이라는데 도달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본질적으로 중간 계급으로 만들어야,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매디슨의 해법은 다릅니다. 민주주의를 규제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죠. 그렇게 미국의 민주주의는 대중을 갈라놓고 파편화시킴으로써 권력이 부자의 손에 집중되도록 해왔던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미국의 정치 역사를 관통해 보면, 늘 이 제한의 범위가 싸움의 이슈였습니다."

 

- 매디슨은 미국의 4대 대통령을 지냈죠. '헌법의 아버지'라고 불렸고, 공화당을 조직한 인물인데요. 선거 때면 세금을 주요 이슈로 부자의 단결을 도모하는 미국 보수의 정치 패턴, 외면당하는 국민의료보험, 대중교통뿐 아니라 현재 중산층의 몰락을 유발하는 배경을 여기까지 올라가는구나 느껴집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시절이 도래하면서 부자의 손안으로 권력이 흡입되듯 모아지는 극단적인 퇴행까지 겪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수년 동안 부자는 더 많은 자유를 얻었고 세금혜택 자본이 그들에게로 집중되는데, 이는 명백한 역사 후퇴입니다. 회귀죠. 이것이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이에요. 매우 반민주적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는 한국인들이 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부분보다 훨씬 잘요.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답은 그리 먼 데 있지 않다는 것. 1980년대 그때 한국인들은 잘 조직되었고, 함께 모였고, 열심히 싸웠어요. 매우 용감하게, 매우 효율적으로 미국의 지지를 받던 잔혹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무너뜨렸죠. 이 땅에 대단한 민주적 혁명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바람을 불러일으켰죠. 그때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고, 오직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었고, 해냈습니다. 기회는 그때보다 지금 훨씬 많아요. 한국에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만 이는 전에 있었던 암울한 독재는 아니지요. 수없이 많은 할 일들이 있으며, 그대들은 오직 그대만의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그 속에 답이 있습니다."

 

변질했다 치부하고, 권력이 되었다 멀어지려던 우리의 과거를 선생은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었다. 놈 촘스키 선생을 통해 만난 우리의 80년대, 하나의 피륙을 짜내던 숭고한 헌신이었다. 우리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연대의 마음에 기회를 주어야겠다.

 

놈 촘스키 교수(왼쪽)와 안희경 작가 ⓒ 안희경

놈 촘스키 교수(왼쪽)와 안희경 작가 ⓒ 안희경

[인터뷰이(interviewee)]

 

놈 촘스키(Noam Chomsky, 1928년 12월 7일생) 교수는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인지과학자, 역사학자, 사회운동가로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이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언어학과 교수로 50년 넘게 재직하고 있다. 촘스키는 '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컴퓨터 공학, 수학, 심리학에까지 영향력을 미쳐왔다. 더불어 미국의 대외정책, 현대 자본주의에 관한 논평으로 대중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여론을 이끌었다. 100여 권이 넘는 전문 분야 서적 및 시론서가 있다.

 

 [인터뷰어(interviewer)]

 

안희경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불교방송 PD로 활동할 당시, 1998년과 2000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 이주후 여러 매체에 미국의 시사 문화와 명상 트랜드를 다양하게 소개해왔다. 또한, 세계의 석학 및 현대미술 거장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술을 뒷받침하는 근원적 삶의 자세를 드러내 진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환경을 지키는 책 <우리가 머무는 세상> 등을 번역했다.

#노암 촘스키 #민주주의 #강정마을 #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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