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애국심을 진보의 언어로 가져와야 한다"

[깨어나자 2012 : 석학을 만나다 3-②] 조지 레이코프 UC 버클리대 교수

등록 2012.05.09 09:54수정 2012.05.0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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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이 올바를 때, 역사의 흐름은 퇴보하지 않는다. 미래를 약속하는 언어들이 출렁이는 2012년, 온 지구를 가로질러 30여 개국에 선거가 있다. 변화의 시기, 한 생각은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자 <오마이뉴스>는 세계의 지성들을 만난다. 그들의 통찰력을 빌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내면의 지혜를 깨우려 한다. 한 생명이 밝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깨어나자 2012' 인터뷰 시리즈는 그 노력의 하나다. [편집자말]

'프레임(frame)' 이론의 권위자인 조지 레이코프 UC 버클리대 교수. ⓒ 안희경


인터뷰 1부에서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보수들의 리더십 프레임으로 '가부장적 아버지'상을 제시했다. 이는 남성적이며 마초적인 권위로 대중의 의식 속에 있는 보수적 프레임을 작동시킨다.

레이코프 교수가 진보에게 조언하는 프레임은 '민주적인 아버지'상이다. 귀 기울이며 서로를 보살피고 공공의 이익을 염두에 두는 너그러운 지도자. 현재 진행 중인 진보 진영의 갈등 속에서 마초적 힘의 대립이 읽혀진다

레이코프 교수의 이론으로 접근하면 대중의 보수적 프레임이 활성화되어 진보의 도덕적 가치가 위축될 것이다. 레이코프 교수라면 어떤 조언을 할까? 공공을 포용하는 도덕적 가치를 세워내고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진정성어린 쇄신의 의지를 실천하라고 말하지 않을까? 인터뷰 2부에서는 이론적 배경을 떠나 대중과의 결속을 이끌어 내는 공감의 힘을 살펴 본다.

버클리대 교정에서 활짝 웃고 있는 조지 레이코프 교수. ⓒ 안희경

- 앞서 이야기한 보수적 언어와 연관되어 당혹스런 일이 한국에서는 지난 총선 때 나타났습니다. 한국은 레드 컴플렉스가 심해서 실제로 광고시장에 빨간색 사용 규제가 있어왔을 정도입니다. 말보로 담배가 한국에 들어올 때 그 빨간색 광고가 어려워 애를 먹었으니까요. 경직된 보수에 의해 '레드, 빨갱이'라는 공격을 받지 않으려고 진보 세력은 노랑, 주황, 보라 등으로 대처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세력이 빨간색 점퍼를 입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태양이 한국에서 상징하는 바가 있나요? 이는 동트는 태양의 개념입니다. 한국을 태양이 떠오르는 땅으로 존재하게끔 희망을 주었다고 봅니다. 이는 민족주의 색이에요. 예전에는 공산주의 색으로 분류되었지만, (보수 세력) 이 사람들과 공산당은 연결될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색은 강력한 민족주의자, 국수주의자의 색이 된 겁니다. 아주 영리합니다."

- 보수 세력에게 있어 가장 큰 무기도 안보입니다. 자유와 애국심은 그들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진보의 반항 세력이라는 이미지는 국가 통치 세력으로 연결짓는데 장애가 있습니다.
"애국심을 우리의 언어로 가져와야 합니다. 오바마가 출마했을 때, '당신에게 애국심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오바마는 '애국심은 시민들이 서로 각자를 염려하는 곳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연두교서도 군대 이야기로 시작했어요. '군대에서는 그대가 민주당이건 공화당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항상 속해 있는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을 보호합니다. 군인은 공통의 목적을 위해 함께하는 한 팀입니다. 결코 그 누구도 낙오되도록 놔둘 수 없는 한 팀. 이것이 애국심입니다. 함께 일하고 서로를 보살피는 애국심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는 군대를 견인해 냈고 그것을 진보적인 도덕 시스템의 모델로 집어 넣었습니다."

안보와 외교, 진보의 언어로 시대적 가치를 높이자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모습. ⓒ 안희경


-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사람들, 특히 흑인 사회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는데, 그들은 오바마를 찍으면서 동시에 주민투표에 나왔던 동성애 결혼 반대에도 표를 던졌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의견과는 반대로 보수적인 선택을 했죠.

"흑인들의 문화가 남성중심적이라서 그렇습니다."

- 이와 연결지어, 미국에 와서 배운 단어 중 하나가 '레드 넥(red neck)'입니다. 변치 않는 보수 백인들을 가르키는 말인데요. 중부와 남부의 백인 농부들의 경우 계급적 기반은 부자가 아님에도 늘 보수의 지지세력입니다. 이렇듯 대중의 표심이 삶의 기반과는 다른 심리적 경향을 갖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구요.
"'보수주의 포퓰리즘 현상'이 미국에 있습니다. 1964년 골든워터가 존슨에 대항할 때는 그 누구도 보수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민주당 존슨이 대통령이 되었죠. 그 때 가난한 사람들은 좋은 노동조합을 갖고 있었고, 리버럴을 선호했어요. 그 다음 보수적인 닉슨이 대통령으로 나섰을 때 그는 근로대중의 표를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닉슨에게 표를 줬어요. 보수는 사람들 속에 있는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관을 알아차린 겁니다.

1964년과 1967년 사이에 세 가지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습니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대학생들이 주도했고 군대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다녀온 근로대중은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봤어요. 닉슨이 학생들은 공산주의자이고, 애국자가 아니라고 말했죠. 그리고 여성운동, 남자들은 가부장적이었기에 가족의 가치로 법과 질서를 제시한 닉슨에게 공감했습니다. 세번째가 흑인들이 참정권을 갖게 된 인권운동입니다. 백인 남자들은 흑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워 했던 인종주의자였어요.

이 성향을 파악한 결과, 닉슨은 가난하고 엄한 아버지들을 도덕적 가치로 묶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닉슨은 자유주의자들을 공격하는 리버럴 엘리트 개념을 발명했어요. '고등 교육을 받은 이들이 당신들을 얕잡아 본다'라는 개념이죠. 반면에 민주당은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모릅니다. 저는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릅니다만,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해도 놀랍진 않을 거에요."

- 네, 비슷합니다. 그 상황에서 진보는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정책을 길고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수적이거나 자유적이거나 한 가지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모두를 약간씩 갖고 있어요. 그 의미는 같은 뇌 속에 두 개의 도덕적 시스템이 있으며, 정치인들은 그 도덕적 시스템 중 하나가 활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자유주의적인 활동을 가동하려면 고유 언어를 사용하는 거죠. 저들의 언어가 미디어를 장악했기에, 우리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자유주의자와 좌파는 가치로 연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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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경


- 한국에는 제3의 정당이 있습니다. 국민은 자유주의자의 우경화를 막아내는 역할을 기대합니다. 서로의 지분이 안착된 양당제인 미국과 달리 운동세력의 입지도 선명합니다. 제3의 정당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요?

"그와 비슷한 일이 캐나다에서 일어납니다. 자유주의 정당이 있고, 중도 좌파가 있죠. 결과적으로 보수당이 의회를 끌고 나갑니다. 그 둘은 같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좌파는 노조와 함께 일하니까 서로를 미워합니다. 하지만 둘은 중복되는 지점이 많습니다. 그 부분에서 합쳐야 해요. 정책에 기반한 연합이 아니라 도덕적 시스템에 기반한 연합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항상 정책을 가지고 싸워요.

서로의 긍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동의하는 그 지점에서 하나의 긍정적인 언어를 창조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각자의 위치를 인정하며 타협안을 만드는 거죠. 현안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력이 비교적 큰 자유주의당이나 좌파당 모두 가부장적인 마초성을 같고 있어요. 둘 다 남성이 집권하고 위치를 고수하려고 하는데, 이는 손실만을 가져옵니다. 지지기반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만듭니다."

- 곧 대통령 선거 시기가 다가옵니다. 후보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선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힘은 후보의 자격이라고 봅니다. 대중을 사로잡는 후보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로널드 레이건이 한 겁니다. 그는 배우였어요. 그런 척 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여론조사를 했을 때, 레이건의 정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레이건에게 표를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나서서 인터뷰를 하고, 설문조사를 하며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레이건은 자기 세력의 가치에 대해서만 말했어요. 두번째로 사람들과 매우 잘 소통했고 연결되었습니다. 세번째는 말한 것을 꼭 지켜낼 만한 진정성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만약에 정치인이 신념에 차서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겠다고 말하고 그에 동감한다면, 비록 그 사람과 의견이 달라도 믿고 표를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길겁니다. 레이건이 그런 공감을 이끌어 낸 거죠."

- 자유주의 성향의 사람들도, 진정성을 느끼면 비록 입장이 다른 후보라도 내면에 있는 보수의 프레임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거군요. 이와 반대로 진정성을 갖춘 진보라도 보수적인 유권자의 진보적 프레임을 활성화시킬 수 있겠네요. 진정성이 드러나는 삶과 더불어 이를 가치 프레임으로 만드는 전략이 주요하다고 보입니다.
"부시도 그걸 이뤄냈습니다."

- (부시는) 카우보이이자 보수 올드 세력의 꼭두각시 이미지 아니었나요?
"단순한 카우보이가 아닙니다. 조지 부시는 카우보이로 키워지지 않았습니다. 부시는 미 동북부에서 키워졌고 예일을 다녔어요. 그가 남부 텍사스로 이사 가서 처음 의회에 출마했는데, 그 때는 예일 엑센트로 말했고, 잘못 발음되는 단어 하나 없이 고전적 그리스 수사형식으로 논쟁했습니다. 당시 비디오 테입을 보았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떨어졌어요. '레드 넥'인 남부 사람들을 놓친 겁니다. 그 다음 '레드 넥'처럼 말하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엉터리 발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카우보이인 척 하는 겁니다."

"안보, 애국, 성장을 진보의 언어로 만들어야 한다"

ⓒ 안희경


- 카우보이의 거친 힘을 드러내며 친구로 다가갔군요. 이민 세력이 아닌 보수 미국인들과 함께 같은 생활적 추억을 나누는 공감이라고 봅니다. 가치에 어울리는 화술과 제스츄어 미디어 선거에서 더 깊게 대중 속에 들어가는 열쇠가 되겠습니다.

끝으로 특수한 질문입니다.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한 가지 관문이 선거철마다 나오는 북한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대응입니다. 이번에도 핵 발표를 했구요. 야권은 보수의 '안보 애국심 프레임'에 옭아듭니다.
"흥미로운 질문이에요. 이에 대해 제가 전문가처럼 굴진 않겠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진보가 더욱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북한은 독재다. 독재 정권과 북한 주민에 대해서 우리는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형제인 북한 동포들에게는 정부의 경제 지원을 촉구하겠지만, 북한 정부의 공격적 자세에는 단호히 대항한다. 북한 정부는 양쪽 국민을 다치게 하지 마라. 동포를 위해 개방하라'고. 비판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우파와 달리 우리는 교역을 말하며 보호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위축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강합니다. 서로를 돌보기 때문에 자유로울뿐 아니라 단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모두의 자유가 허락한 힘입니다."

- '민주적 아버지'라는 거군요. 보수의 권위적 엄한 아버지와 비견되는 부드럽고도 든든한 아버지상 말이에요.
"이것이 우리의 애국심입니다. 안보, 애국, 성장, 모두 우리의 언어로 다시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자, 이제 깃발을 듭시다!"

최근 레이코프 교수가 발표한 글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을 정의한 부분이 있다. '보수가 대통령이 되면 보수의 언어가 중심이 되어 모든 선거에 작용할 것이다.' 보수의 언어가 자주 노출되게 되면, 작은 동네 교육위원회 선거에도 우리의 자리는 위축될 것이라는 경고다.

필자는 이 지적에서 오히려 희망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총선 이후 그래도 진보의 언어가 소통될 적지 않은 의석이 있고,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 공간도 남아있다. 한 공간에서 진보의 가치가 담긴 언어와 정책이 살아 있을 때 대중의 진보적 프레임을 작동하게 만든다. 진보가 편안해지면 보수는 힘을 잃는다.

만약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스스로 진보라고 여긴다면, 그 발 딛고 있는 공간에서 진정성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그의 언어가 사용되어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적 가치가 온 나라를 보살피는 키 프레임이 되기까지 어쩌면 그 주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미미한 물줄기가 모여 장강의 흐름을 이루듯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조지 레이코프(1941년~)는 UC 버클리 인지과학과 언어학 교수로 1972년부터 후학을 지도해 왔다. MIT를 졸업하고 인디아나대학에서 언어학 박사를 받았고, 하버드대에서도 강의했다. 정치적 활동으로는 2008년까지 오바마에게 정책 조언을 했으며, 좌파 싱크탱크인 로크리지연구소를 창립해 2010년까지 운영해왔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도덕, 정치를 말하다><프레임 전쟁> 등을 발표했다. 그의 저서는 2004년 하워드 진에 의해 상원의원 후보들의 정책에 반영되었다고 공표되었듯이, 많은 정치 집단과 광고계에 차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을 위한 선거 답안지라 할 수 있는 을 탈고했다. 오는 6월 19일 온라인으로 세계에 공개될 예정이다.

[인터뷰어(interviewer)]

안희경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불교방송 PD로 활동할 당시, 1998년과 2000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 이주후 여러 매체에 미국의 시사 문화와 명상 트랜드를 다양하게 소개해왔다. 또한, 세계의 석학 및 현대미술 거장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술을 뒷받침하는 근원적 삶의 자세를 드러내 진한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틱낫한 스님의 환경을 지키는 책 <우리가 머무는 세상> 등을 번역했다.

#석학을 만나다 #조지 레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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