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트룸>'로마사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
랜덤하우스
로마 역사에서의 최고 격동기는 아마도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행하던 시기인 기원전 1세기 무렵일 것이다. 로마 역사를 장식했던 쟁쟁한 인물들도 이 때 많이 등장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키케로, '위대한 폼페이우스', 클레오 파트라 그리고 후에 제정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는 옥타비아누스 등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들이 이 시기를 장식한다.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키케로와 카이사르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생전에 집정관을 지냈으며 군사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키케로는 '카틸리나의 역모'를 사전에 알아내고 분쇄해서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았고,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을 통해서 갈리아 지역(이탈리아 북쪽)을 로마의 영토에 편입했다. 카이사르는 또한 자신의 후계자로 옥타비아누스를 지목해서 로마가 제정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확립했다.
키케로와 카이사르 모두 로마사에 잊지 못할 업적을 남겼지만, 정치적인 입장은 정반대였다. 키케로는 공화정의 수호자였다. 반면에 카이사르는 비대해진 로마 영토를 통치하려면 공화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집정관이 된 키케로여기까지는 역사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을 갖다보면 역사책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실제로 어떤 성격이었고 어떤 일상을 보냈는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호기심은 역사소설을 통해서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해리스의 '로마사 3부작'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격동기의 로마사회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귀족과 평민들의 모습을 복원하고 있다. <루스트룸>은 이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임페리움>의 마지막 장면에서 42세의 키케로는 집정관에 당선된다. 대부분의 집정관들이 해외에서의 군사경험과 군사적 업적을 바탕으로 집정관에 올랐던 반면에, 키케로는 군사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이 변호사 활동을 통해서 얻은 명성만으로 집정관에 당선했다. 그야말로 세치 혀로 세상의 정점에 오른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까지 키케로도 많은 적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동시에 키케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카이사르다. 키케로는 로마 최대의 바람둥이인 카이사르를 전편에서도 근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번 편에서 그 시선은 단순한 근심에서 증오로 변해간다.
<루스트룸>은 키케로가 집정관에 오르는 기원전 63년 겨울을 무대로 시작한다. 키케로는 화려하게 집정관에 오르지만 로마의 풍경은 그리 평화롭지 못하다. 도시는 기근과 유언비어와 불안의 소용돌이에 놓여있다. 골목마다 구걸하는 군인과 농부가 있고, 술에 취해 몰려다니며 상점을 때려 부수는 젊은이들도 있다.
폼페이우스는 군대를 이끌고 오리엔트 지역을 안정시키는 중이지만, 그의 부재로 인한 동요가 마치 안개처럼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키케로는 어떻게 집정관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대립하는 두 영웅 <루스트룸>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키케로의 개인비서이자 노예인 티로가 작중화자가 돼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티로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키케로와 당시 로마사회의 모습과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카이사르다.
일본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카이사르를 가리켜서 '로마역사상 위대한 개인'이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역사학자 테오도르 몸젠은 카이사르를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라고 극찬했다.
반면 작가 로버트 해리스가 묘사하는 카이사르는 그렇지 않다. 키케로는 카이사르를 '개자식'이라고 부르고 카이사르의 면전에서 '당신은 사악한 자요'라고 말한다. 물론 위대한 개인이나 천재가 꼭 인간성까지 좋을 필요는 없다. 키케로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카이사르와는 반대였기 때문에 카이사르가 하는 모든 언행이 나쁘게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키케로도 시간이 지나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면서 카이사르와 손을 잡으려 노력한다. 키케로뿐만 아니라 당시의 많은 권력자들이 이런 식으로 적과 동지를 계속 바꿔가며 권력을 유지한다. 그걸보면 정치판의 모습이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로마사 3부작'의 백미는 바로 키케로와 카이사르의 대립을 바라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