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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주말부부 시절. 충북 음성에서 직장생활을 할 적에는 시설 좋은 화장실을 놔두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용변'을 해결을 했다. 회사 문밖만 나서면 산이요 들이라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내리면 풀냄새가 새벽공기 속에 맡아지는 그런 천연 화장실이었기 때문이다.
한 손에 휴지를 꼭 움켜쥐고 먼 산을 바라보며 무상무념에 젖어 있으면 산골짝을 타고 불어오는 시원한 솔바람이 일품이었다. 풀잎 이슬 속에서 나온 청개구리 펄쩍 뛰어올라 이단 옆차기로 엉덩이를 걷어차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크게 탓할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삼년을 보낸 사람이 서울로 올라와 한 평도 안 되는 꽉 막힌 공간에서 말타듯이 도자기(변기) 위에 앉았으니 도저히 '용변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남들이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집에서는 휴지로 뒷처리를 하지 않고 샤워기 꼭지를 항문에 대고 비데 비슷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그만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아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며 보일러를 온탕으로 해놨나 보다. 볼일이 끝나고 '나만의 비데'를 사용하려고 샤워꼭지를 항문에 대고 물을 트는 순간, 나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솥뚜껑 위의 올려놓은 미꾸라지처럼 자반뒤집기를 하며 목욕탕 안을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아이고. 수도꼭지를 올리는 순간 펄펄 끓는 물이 항문을 강타했던 것이다. 다행히 푹 익지는 않고 데친 수준을 조금 넘어서고 말았는데, 말이 그렇지 제대로 앉기도 힘들고 죽을 맛이었다. 더군다나 큰 볼일을 볼 때의 그 고통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도 남을 정도. 항문 외과에 갔는데 간호사와 의사 선생이 항문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치질도 아니고 치열도 아니고 희한하다며 이렇게 되기까지 그간의 상황을 설명해보란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설명했더니 간호사는 까무러치고 의사는 창가로 가더니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얼씨구! 남은 아파서 죽겠다는데…. 이거 바지 올려요 말아요? 쯧쯧."
지난 2월 27일 사고가 터지고 항생제가 포함 된 약을 한 주먹씩 먹었다. 3월 21일이 돼서야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거의 한달 가깝게 고생을 한 셈이다. 덕분에 똥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 한 달 가까이 공부한 나름대로 똥에 대한 철학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똥에도 질과 격이 있다
하루에 해우소를 두 번씩 가는 것이 사치였던 보릿고개 시절에는 변을 보는 것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온갖 화학물질로 범벅이 된 음식은 도처에 깔려있고, 먹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싸는 것은 시답잖게 여기는 사람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나는 화장실에 앉아서 밑 닦는 휴지도 필요 없을 만큼 똑 떨어지는 그런 용변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다.
몇 년 전 위궤양을 심하게 앓고 난 뒤로 용변을 보고 나면 꼭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몸 상태가 아주 좋을 때는 따로 뒷처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러나 전날 술이라도 한 잔하든가, 몸이 불편하면 상태가 좋지 않음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뒤끝도 개운치가 못하다. 휴지가 많이 든다는 얘기는 그만큼 사람들이 조악한 음식을 먹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동물 중에 일보고 뒷처리하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다.
모든 유기체는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나가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하루에 먹은 만큼만 내 보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요, 장수의 비결이다. 궤변일는지는 몰라도 변의 모양과 색깔, 그리고 냄새에 따라 상대방이 얼마나 욕심이 없고 절제된 삶을 사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렇게 똥에도 질(質)이 있고 격(格)이 있다.
[부탁의 말씀] 다시 한 번 부탁드리지만 휴지 대신에 샤워기 꼭지를 사용하시는 분들은 뜨거운 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항문외과 의사선생 말씀으로는 똥구멍의 괄약근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정교한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제가 약 한달 가깝게 아파봐서 아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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