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정동영 운명, 박원순에 달렸다?

[총선 격전지-서울 강남을] 보수텃밭 'MB심판' 폭탄 터질까

등록 2012.03.28 16:41수정 2012.03.2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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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왼쪽)와 민주통합당 정동영 후보. ⓒ 남소연


"여기는 새누리당이 되는 분위기예요. 정동영씨는 왜 이렇게 어려운 데를 나와서…."

지난 27일,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의 한 대형상가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정아무개(45)씨는 상가 방문을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정동영 후보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민주통합당 지지자라는 정씨는 "이 지역에서는 민주당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 취급을 받는다"면서 "손님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보면 김종훈 후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텃밭인 전주 덕진을 떠나 출사표를 던진 강남을(대치 1·2·4동, 개포 1·2·4동, 일원본동, 일원1·2동, 수서동, 세곡동)은 전통적인 새누리당의 텃밭이다. 16·17·18대 내리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고, 15대에는 홍사덕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된 바 있다. 지난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도 투표에 참여한 지역 주민의 약 57%는 박원순 후보가 아닌 나경원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수서동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여기는 누가 나와도 무조건 1번이 된다, 서초·강남·송파는 그렇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 후보' 출신인 정동영 후보가 출마하면서 '보나마나'였던 선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난 22~23일 <매일경제>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30.1%로 38.7%를 기록한 김종훈 후보를 8.6%p 차로 바짝 뒤쫓고 있다(신뢰수준 95%, 오차범위 ±4.4%p). 정동영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지난 수십 년 동안 포기했던 지역이 격전지로 떠오른 것만 해도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이날 각 후보의 일정에는 10여 개의 언론사가 동행해 취재열기가 뜨거웠다. 

"공천 늦어... 1분이라도 아껴서 지역주민 만날 것"

4.11 총선 격전지 여론조사(강남구 을) ⓒ 고정미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두 후보는 토론과 인터뷰를 통해 연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한미FTA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FTA 전도사'로 불리며 FTA 협상을 주도했고, 정동영 의원은 가장 적극적으로 한미FTA를 반대해왔다.

이날 오전에도 두 후보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바탕 논쟁을 벌였다. 정 후보는 "김종훈 후보는 미국의 이익을 대변했다, 미국의 파견관처럼 행동했다"며 김 후보를 "검은 머리 백인"이라고 칭했고, 김 후보는 "(한미FTA 협상은) 어떤 상호적인 작용이지 '우리 주권 잘라 저쪽에 줬다'는 것은 아주 극단적으로 편파적인 시각"이라고 받아쳤다.


MBC <100분토론> 출연과 관련한 설전도 이어졌다. 전날(26일) 진행된 CBS 라디오 토론에서 김 후보는 '100분토론' 출연을 거부한 이유를 "심야에 진행을 해서 신체적 부담이 크다"라고 설명하는가 하면, "MBC에 주간으로 옮기라고 하라"고 말해 SNS 상에서 논란이 되었다. 이에 정 후보는 "'100분토론'을 낮에 방송하자고 하는 것은 김종훈 후보의 생체시계는 한국인인지 모르지만 정치적·사회적 의식의 시계, 주권의식의 시계는 한국에 안 맞기 때문"이라고 김 후보를 쏘아 붙였다.

김 후보 캠프 측은 '공식 트위터 계정 폭파'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지난 26일 "힘내세여~ 정동영이 아웃시켜 망신좀 주세여~종북 빨갱이들 4.11에 혼나봐라"는 글을 리트윗해 '색깔론 제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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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가 27일 수서동의 사회복지관을 찾아 주민들에게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방송을 마치고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지체장애인 직업재활센터를 찾은 김종훈 후보는 정 후보와의 토론이 "시간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저는 출발도 늦고, 공천도 늦었으니 1분이라도 아껴서 지역주민들을 만나고 싶다"면서 "어제도 새벽 1시 반에 자서 오늘 새벽 5시 반에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시간이 많으면 토론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토론해봐야 계속 (논쟁이) 돌아가더라"며 토론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비치기도 했다.

정작 대부분 주민들은 FTA 논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은 두 후보 모두에게 부담이다. 19일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지역 유권자의 55.1%는 한미FTA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은 26.3%, 무조건 폐기해야 한다는 응답은 3.3%에 불과했다. 김 후보는 "주민들은 국가전체 정책보다는 결국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올 수 있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면서 "지금 급선무는 주민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 후보는 이 지역에서 4선을 지낸 유만희 구의원과 함께 지체장애인들을 만난 데 이어 기초생활수급 대상 노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식사를 제공해주는 경로식당에 들러 배식봉사를 했다. 부인도 함께했다. 수행비서는 "기호 1번, 김종훈 후보"를 반복하며 부지런히 명함을 나눠줬다. 김 후보는 "강남을 지역에 보호받아야 할 곳이 많다"면서 "어제도 다녀왔고, 오늘도 다니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에는 개포동에 위치한 판자촌인 '구룡마을'을 방문했다.

FTA전선? 주민들은 큰 관심없어... '개포 재건축'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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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을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정동영 후보가 27일 일원동의 상가를 돌며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 남소연


"강남을 지역은 강남갑과 달리 최상류층·중산층·하류층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유만희 의원의 설명처럼 강남을은 빈부격차가 큰 지역이다. 지난해 5월 단체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은 구룡마을 주민들은 10·26 보궐선거에 이어 두 번째로 투표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원심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부회장은 "구룡마을은 누군가에게 의지할 데가 없기 때문에 센 곳, 힘 있는 곳, 주로 여권을 지지했다"면서 "1995년 민선 1기 구청장 선거부터 마을 차원에서 한나라당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개발시켜 준다'는 말만 믿고 20년 가까이 한나라당을 지지했지만, 아직도 여기가 이렇다"면서 "반면, 정 후보는 지난 6년 동안 구룡마을에 관심을 보여왔다, 이번에는 우리를 이해해주고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한테 표를 줄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구룡마을 거주민 2000여 명 가운데 유권자는 1800여 명이다.

개포동 재건축도 주요 변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 후 개포동 주공아파트와 시영아파트의 재건축 계획을 보류했다. 현재 서울시는 승인 조건으로 소형주택비율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27일 방문한 주공아파트 단지 근처에는 '시민이 주인이라던 박원순은 잊었는가', '인허가권 이용한 행정폭력 중단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주공아파트 인근 상가에서 벽지가게를 운영하는 조철희(53)씨는 "재건축은 재산 증식의 문제니까 집주인 입장에서야 (소형주택 비율을 확대할 경우) 돈이 안 되는데 좋아할 리가 있겠느냐"며 "아마 이번 선거에서 재건축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민주통합당이 처음으로 거물급 정치인을 내놓으면서 박빙까지 갔지만 재건축 때문에 결국엔 새누리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가 재건축 문제 해결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 후보는 "제가 이 문제를 풀 권한은 없지만 다리를 놓는 일은 누구보다도 잘 할 적임자"라며 "박원순 시장과 주민들 사이에 열심히 가교를 놓고 있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박 시장과의 중재를 통해 주민들이 19일, 29일 집회를 취소했다, 현수막도 철거할 것"이라면서 "서울시와 주민들 사이의 절충안을 이끌어내겠다"라고 강조했다. 

'1번 김종훈'이 적힌 빨간 점퍼를 입고 다닌 김종훈 후보와는 달리 정동영 후보는 노란 점퍼가 아닌 정장 차림으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당'이 아닌 '인물론'으로 승부한다는 것. <매일경제> 여론조사 결과, 후보 간 지지율 격차는 8%p대인 반면 당 지지율 격차는 그 두 배인 17.2%p에 이른다.

FTA 논란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은 정 후보 측에도 부담이다. 정 후보 캠프 측 관계자는 "FTA 논란을 피할 생각은 없지만 FTA 논란에 모든 것이 매몰되다 보면 최근 밝혀지고 있는 민간인 사찰 문제 등 MB 심판론이 묻히게 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날 정 후보는 야권단일화를 이룬 신언직 공동 선거대책위원장과 함께 주민들을 만났다. 또 다른 선대위원장인 전현희 의원은 의료계·법조계 등 전문가 집단을 만날 계획이다.
#정동영 #김종훈 #FTA #강남을 #4.11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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