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권우성
현장에서 그들 3주체의 암묵적인 역할분담과 공동행동, 연합작전을 보고 있노라면 그 조화로운 잔인함에, 그 한 치 오차도 없는 폭력의 정합성 앞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개의 문>은 그 폭력의 현장을 여과 없이 정밀하게 보여줍니다.
내가 현장에서 보고, 직접 경험했던 국가폭력 중 가장 큰 규모는 대추리 때의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었습니다. 물론 이때는 워낙 까발려진 국가폭력의 실체가 컸기에 1만 5천여명의 전경, 군 헬기 등 현역군 일부에 눌려, 수백 명 규모의 용역 깡패들과 공무원들은 무슨 귀여운 마스코트 인형들 같았습니다.
가장 잔인하고 폭압적이던 경우는 용산 때였습니다. 이때는 아예 경찰특공대들과 용역깡패들이 드러내놓고 공동작전을 펼쳤습니다. 용역들이 문을 따면 경찰들이 들어가고, 밖에서는 경찰들이 컨테이너를 이용해 오르고, 안에서는 용역들이 계단을 치고 오르는 식이었죠.
가장 밀집된 형태는 기륭전자 공장 앞에서 보았습니다. 2008년 10월말 마지막 망루를 쌓고 사람들이 올라갈 때였습니다. 망루 하나를 지키려는 사람은 한 무리였는데 덮치는 무리들은 세 겹이었습니다. 회사 구사대까지 포함해 경찰과 용역깡패들이 무슨 더블햄버거 마냥 압착해 들어왔습니다. 경찰이 망루 곁에 있는 촛불 시민들과 연대온 사람들을 뜯어내어 공장 안으로 넣어주면 후미진 공장 담벼락 밑으로 먹이를 받은 용역들은 그들을 끌고 가 무지막지하게 짓밟았습니다.
여기에 '용역검찰'과 편파적인 사법부까지 곁들여지면 정말이지 환상적인 민중탄압 구조의 틀이 완성됩니다. 대추리에서도, 기륭에서도, 용산에서도, 한진에서도 단 한 명의 경찰도, 용역깡패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물리력도 없이 맨몸으로 저항했던 사람들. 이웃을 돕고자 한 사람들만 '폭력행위' 등으로 구속됐습니다. '특수공무방해 치상'으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런 우리 시대 폭력의 A, B, C, D가 <두 개의 문> 다큐를 보다보니 순차적으로 다시 떠올라 잠시 숨을 골라야 했습니다.
용산은 실제 이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용산에서 돌아가신 분들 중 고 이성수, 윤용현, 한대성 선생은 용산 4구역 철거민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구속되어 있는 여덟 분 중 4분도 용산 철거민이 아닌 타 지역 철거민입니다. 다치거나, 끌려가거나, 실제 그렇게 죽을 수도 있는 길을, 다른 철거민 이웃들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이나 대가 없이 올라간 정의롭고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모두가 입으로는 이웃 사랑을 얘기하고 살신성인을 말하지만 실제 그들처럼 몸으로 함께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뭐 그게 대단한 일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난 그렇기에 더더욱 그분들의 위대함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꽃도 무덤도 십자가도 없는 영광처럼요.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다시 살아남아 이 잔인한 일상을 견뎌야 하는 용산 그 후의 이야기입니다. 모두가 용산이라는 시대의 트라우마에서 이제 잠시라도 놓여나고 싶을 때, 계속해서 그 진실규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홍지유 감독과 여섯 분의 만화가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심흥아, 유승하, 이경석씨께 용산에 함께했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때로 아픔은 일이 일어났을 때보다, 그 일이 잊힐 때 오는 것임을 생각해볼 때 우리 모두가 망각하지 않게끔 기억의 끈을 잡아주고 그 실낱같은 기억에 분명한 형상들을 입혀준 분들의 노력은 그 어떤 가치로도 쉬이 갚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일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