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돌아온 괴도, 여인과 사랑에 빠지다

[리뷰] 모리스 르블랑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등록 2012.06.01 10:17수정 2012.06.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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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겉표지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겉표지 ⓒ 문학동네

솔직하게 말해서 아르센 뤼팽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인데, 어린 시절 책 속의 영웅이었던 셜록 홈즈를 '물 먹인' 장본인이 뤼팽이었기 때문이다.

뤼팽을 창조한 작가 모리스 르블랑은 자신의 작품에서 홈즈 대 뤼팽의 대결 구도를 여러 차례 만들었다. 그 승부에서 승자는 뤼팽이었다.


영국에서는 언제나 침착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수많은 사건을 해결했던 셜록 홈즈가, 바다 건너 프랑스에 도착하면 뤼팽에게 온갖 굴욕을 겪는다.

그때의 기억이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던 모양이다. 뤼팽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한 번 읽고나면 안 보이는 곳에 쳐박아두곤 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나는 뤼팽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뤼팽을 좋아하지 않았던 또다른 이유는, 도대체 이 인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뤼팽 앞에는 '괴도'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도둑이라면 경찰이 잡으려고 노력을 해야 할 텐데, 프랑스 경찰청에서는 뤼팽을 체포할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뤼팽을 옹호하는 발언을 할 정도다.

모리스 르블랑의 미발표 유작

아무튼 이런저런 사연에도 불구하고, 뤼팽이 매력적인 남자라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뤼팽이 나오는 작품을 읽다보면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될 것이다.


뤼팽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홈즈와는 달리 작품 속에서 수많은 여인들과 로맨스를 벌였고 특유의 기지와 변장술로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갔다. 그리고 정체 모를 방법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정말 부러운 인생 아닌가?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이하 <마지막 사랑>)은 제목처럼 뤼팽이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이다. 모리스 르블랑은 1941년에 사망했고 이 작품의 원고는 1996년에 발견되었다. 그동안 원고를 공개하지 않았던 작가의 유족들은 작가의 사망 70주기를 맞아서 마침내 이 작품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무려 70년 만에 뤼팽이 귀환한 것이다.


독자들 앞에 다시 나타난 뤼팽은 여전하다. 나이는 마흔이 되었지만 기력도 왕성하고 수많은 어린 아이들을 부하로 거느리고 있다. 자신을 체포하겠다는 경찰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감옥에 가두더라도 자신은 탈출할 수 있으니까 얼마든지 체포하라는 것이다.

<마지막 사랑>의 무대는 1921년의 파리다. 파리 사교계의 스타인 젊은 여성 코라는 아버지와 함께 넓은 저택에서 살고 있다. 얼마전 영국에서 만났던 네 명의 남자 친구들이 자신을 찾아오자, 코라는 저택 한쪽에 그들의 거처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라의 아버지는 권총으로 자살하고 코라에게 유서를 남긴다. 그는 유서를 통해서 "사랑을 향해 대담하게 나서라"라는 당부와 함께 네 명의 남자 중에 아르센 뤼팽이 있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진 뤼팽

이 작품에서도 뤼팽은 여러 개의 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중에는 '파리 경찰청장 직속 특별 기술고문'이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 신분이 사실이라면 뤼팽이 경찰 앞에서 당당했던 것도, 그리고 경찰청에서 뤼팽을 옹호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그는 끝까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뤼팽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말이 많은 편이었지만 결코 빈말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한 번 뱉은 말은 끝까지 지키려고 했다.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격렬했기 때문에 부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혼자서 방 안을 뛰어다니며 춤을 추기도 한다. 단독으로 여러 명의 적들과 대치했을 때도 주먹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이런 점들이 뤼팽의 매력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사랑>의 마지막 장면에서 뤼팽은 한 여인과 결혼을 발표한다. 그동안 여러 명의 여인들과 로맨스를 벌였던 뤼팽이 이제 마흔이 되어서야 한 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결혼과 동시에 은퇴하는 셈이니 역시 로맨티스트였던 뤼팽 답다. 그가 한 곳에 머물고나면 뤼팽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도 극복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모리스 르블랑 씀, 성귀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덧붙이는 글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모리스 르블랑 씀, 성귀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문학동네, 2012


#아르센 뤼팽 #모리스 르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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