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사랑 실천했는데..." 그래도 모르시겠죠?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 상경투쟁... 재단과 학교는 '묵묵부답'

등록 2012.06.25 19:15수정 2012.06.2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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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일요일 새벽 6시. 많은 사람이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시각, 한 승합차가 전주시내를 달린다. 중간중간 멈춰, 아주머니들을 태운다. 그녀들은 손에 짐을 들고 차에 오른다. 휴일에 어디 나들이라도 가는 것일까?


이 차에는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 6명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전북평등지부 이태식 지부장과 이주철 교선부장이 탔다. 좁은 봉고차 안에 사람 여덟 명에, 스피커, 현수막 등 집회 도구들까지 더해 빽빽하다.

이날 목적지는 서울 일원동의 밀알학교. 밀알학교의 일요일 예배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 출발해야한다. 예배가 목적이 아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학교법인 신동아학원의 홍정길 이사장(서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을 만나기 위해서다. 설사 홍정길 이사장을 만나지 못한다 해도 자신들의 요구와 약속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기 위해 이들은 새벽에 서울행을 택했다.

a  24일 새벽 6시에 출발하기 전, 화이팅을 외치는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들. 맨 오른쪽이 이태식 지부장이다. 이날로 단식 38일째를 맞이했다. 지난 14일 신동아학원 홍정길 이사장은 전주대 고건 총장을 만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연락두절이다

24일 새벽 6시에 출발하기 전, 화이팅을 외치는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들. 맨 오른쪽이 이태식 지부장이다. 이날로 단식 38일째를 맞이했다. 지난 14일 신동아학원 홍정길 이사장은 전주대 고건 총장을 만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후 연락두절이다 ⓒ 안소민


한 달째 이어진 서울 상경투쟁

서울로 출발하기 직전, 전북평등지부 앞에서 그들을 만났다. 이태식 지부장은 이날로 단식 38일째에 접어들었다. 5월 말부터 서울 온누리교회 앞에서 시위를 한 지도 이달 말이면 곧 한 달에 접어든다. 그동안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 34인은 조를 짜서 일부는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나머지는 전주 시내에서 꾸준히 집회를 펼쳤다.

애초, 서울 온누리교회를 시위 장소로 정한 이유는 전주대 고건 총장과 비전대의 홍순직 총장이 이 교회의 장로이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두 총장 모두 우리가 시위하는 모습을 보았다. 당황해 하며 그 자리를 피하거나 외면했다"고 말했다. 전주대 측은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전주대·비전대가 소속되어 있는 신동아학원의 홍정길 이사장에게 연락이 온 건 약 열흘 전이었다. 이태식 지부장은 14일 오후 4시 남서울은혜교회에서 홍정길 이사장을 만났다. 홍 이사장은 이 지부장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 지부장은 홍 이사장에게 농성하는 이유와 주요 쟁점에 대해 설명했다.

"대한민국 노동현장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 바로 사립학교 청소노동자들의 근무환경입니다. 학교라는 곳은 다른 곳에 비해서 사회적 위상이 있고, 가치가 있는 공간이잖아요. 그런 학교에서 복수노조를 악용하며 노조활동을 억압하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죠."


이어 이 지부장은 "홍 이사장께서 이번 문제를 잘 해결해,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뿐 아니라 전국의 열악한 사립학교 청소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태식 지부장에 따르면 홍 이사장은 노조를 이해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이 지부장의 말에 의하면 홍 이사장은 "목회를 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여러 사업을 했고, 가족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왔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대답했다.

또한 홍 이사장은 "나는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며 "사태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겠다. 토요일(16일), 전주대 고건 총장을 만나서 논의해보겠다"고 약속했다고 이 지부장은 전했다.

홍 이사장 "사랑 실천했는데 왜 이런 일이..." 

그러나 토요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다 지나도록 홍 이사장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노조 측에서 하루에도 몇 번 연락을 취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직접 방문해, 연락처를 남겨놓아도 연락이 없었다. 이주철 교선부장은 "하루에 거의 10통 가깝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며 "일부러 피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 측의 한 관계자는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주대·비전대와 관계된 일을 우리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홍 이사장이 고 건 총장과 만났는지 여부에 관해서도 그는 "그 문제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전주대 측과 직접 연락해봐라"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그는 받지 않았다.

a  지난 24일, 서울 일원동 밀알학교 앞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들. 이들은 조를 짜서 교대로 서울-전주간 214km에 이르는 상경투쟁을 한달째 해오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일원동 밀알학교 앞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있는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들. 이들은 조를 짜서 교대로 서울-전주간 214km에 이르는 상경투쟁을 한달째 해오고 있다. ⓒ @duocell213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 34인은 조를 짜서, 서울 밀알학교에 올라간다. 이번에 서울에 올라간 조합원들이 전주에 내려오면, 그 다음날 조합원들이 서울에 올라간다. 경제적으로 따져도 차비와 1박2일 생활비 등이 가볍지 않다.

전주대 측에서 이번 파업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는 않는 이상, 서울과 전주간 214km를 오가는 이들의 투쟁은 계속될 듯하다.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 #서울 일원동 밀알학교 #학교법인 신동아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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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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