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이 들어가지만, 부대찌개를 거부할 수 없어요

등록 2012.06.30 16:52수정 2012.06.3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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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부터 1997년까지 수원에 있는 신학대학원을 다녔습니다. 학교 옆에 부대찌개를 아주 잘하는 할머니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하러 오시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부대찌개 집에 들러 드시곤 했습니다. 학생들도 자주 그 집에서 부대찌개를 먹었습니다. 저 역시 부대찌개 맛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아직도 그 집만큼 맛있는 집을 찾지 못했습니다. 2000년 진주에 와서 어느 부대짜개 집을 들렀는데 한 숟가락 뜬 후 바로 그 집을 나왔습니다. 수원 할머니 집 부대찌개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요.


이후 부대찌개는 식당이 아니라 집에서 자주 해먹습니다. 특히 큰아이가 좋아합니다.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재료가 대부분 햄 등 인스턴트라 걱정은 되지만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조리법으로 걱정을 조금 달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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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는 한끼 먹을거리로 안성마춤 ⓒ 김동수


지난 수요일 아내가 일을 다녀오면서 부대찌개 재료를 사왔습니다. 아이들이 좋아라합니다. 부대찌개가 먹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 스스로 부대찌개를 해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도 맵고 짠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아내가 그 마음을 알았나 봅니다. 육수는 멸치로 대신합니다. 딸아이가 멸치 육수에 고추장을 붓습니다.

"예쁜 아이! 육수에 고추장을 넣어?"
"육수에 고추장을 넣지 무엇을 넣어요?"
"아니 육수가 다 끓고, 햄을 넣고 그 위에 양념장을 하는 것 아냐?"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디 있어요. 육수를 끓이면서 고추장을 넣어요. 엄마가 그랬어요."

"아빠는 부대찌개 할 때 육수 따로, 양념장 따로 한다. 그럼 엄마에게 배운대로 육수에 고추장을 바로 넣고 끓인 부대찌개 맛이 어떤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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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육수를 만들고 있는 딸 ⓒ 김동수


엄마 말을 듣고, 부대찌개를 끓이는 딸 아이 솜씨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7시쯤 학교에 돌아온 큰아이는 부대찌개를 끓였다는 말을 듣고, 입에 침이 고입니다. 문제는 예배를 마치고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빨리 예배를 마치고 부대찌개를 먹기를 바라는 그 심정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엄마 예배 마쳤으니 빨리 밥 먹어요.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놓고 끓여 먹어요."
"휴대용 가스레인지는 불이 약하니까? 가스레인지에 먼저 끓여야 해."
"아까 서헌이가 다 끓였잖아요."
"그때는 육수를 만들었지. 아직 햄과 소시지는 덜 익었잖아."



아내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집혀 팔팔 끓인 후,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올렸습니다. 보글보글 끓은 부대찌개를 보니 절로 침이 입에 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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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와 어울리는 라면사리, 당면을 넣을 수도 있다. ⓒ 김동수



부대찌개 위에 라면 사리를 올렸습니다. 당면을 넣을 때도 있습니다. 입맛따라 사리가 달라집니다. 라면을 먹고 싶으면 라면을, 당면을 넣고 싶으면 당면을 넣어면 됩니다. 부대찌개가 다 끓자 아이들은 사흘이나 굶은 것처럼 밥 한 그릇, 부대찌개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먹다보니 부대찌개 한 솥이 바닥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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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한 솥을 두고 아이들은 먹기 바쁘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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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먹는 막둥이,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지만 이상하게 부대찌개는 잘 먹는다. ⓒ 김동수


막둥이는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지만 부대찌개만은 잘 먹습니다. 5살 때 서울 가서 부대찌개를 먹은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하면서 "엄마 오늘 부대찌개 먹고 싶어요"를 외칠 때가 있습니다. 햄과 소시지 같은 인스턴트 재료가 들어가지만 부대찌개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 건강 망치는 부모라는 타박을 듣겠지만, 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부대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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