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여전사'들이 사는 딸들의 나라를 아십니까

[서평] 하쿠타 나오키가 쓴 <딸들의 제국>

등록 2012.07.21 10:46수정 2012.07.2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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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곤충은 무엇일까. 짐작건대 말벌이 아닐까. 잘 알려진 것처럼 말벌에 쏘이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위험한 지경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말벌에 쏘여 죽었다는 사람들 소식과 함께 이른바 '말벌 주의' 뉴스가 보도되곤 한다. 얼마 전에도 말벌에 쏘여 죽는 사람이 발생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는 여러 종류의 말벌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장수말벌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장수말벌은 여왕벌이 4.5~5cm, 워커(일벌)는 2.5~4cm, 수벌은 3~4.5cm 정도로 여러 종류의 말벌 중 몸집이 가장 크다.


장수말벌이 위험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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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의 제국> 겉표지 ⓒ 뜨인돌

단지 크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아니다. 장수말벌, 장수잠자리, 장수풍뎅이, 장수하늘소 등에 붙여진 '장수'는 그 무리의 곤충 중 가장 큰 종류에게 붙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수말벌은 다른 곤충들의 경우처럼 단지 크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힘깨나 쓰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 쓰는 그 '장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타고난 조건도 다른 말벌들보다 월등할뿐더러 다른 말벌들까지 살상하기 때문이다.

장수말벌은 어떤 곤충도 씹어 죽일 수 있는 거대한 턱과 단단한 이빨을 가졌다. 그리고 몇 번이고 쏠 수 있는 두껍고 날카로운 침을 가졌는데, 침에서 분비되는 타액은 멧돼지 같은 대형 포유동물까지 살상할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게다가 외피는 갑충류에 필적할 만큼 단단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공격으로도 쉽게 손상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속 30km 이상으로 하루에 100km를 넘게 날아갈 수 있는, 화수분 같은 체력까지 갖췄다.


그리하여 이처럼 골고루 갖춘 타고난 전투력으로 한 번 목표로 삼은 것은 끝장을 내고 만다. 때문에 '곤충계 최강 전투기'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처럼 최강의 전투력을 지녔으며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장수말벌 거의 전부가 암컷이라는 것이다.

"마리아는 다시 전진하다가 둥지입구를 발견했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마리아는 다음에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마리아는 본능의 명령에 따랐다. 페로몬을 바르는 것이다. 난생 처음 하는 일인데도 왠지 오래전 기억에 따라 행동하는 듯한 불가사의한 느낌도 들었다. 이 페로몬은 '먹이터 표식 페로몬'이라 불리는 것으로 장수말벌 워커가 카을 이후 분비하는 특수한 페로몬이다.

공기 중에 떠도는 페로몬을 포착한 동료는 '먹이터'로 달려 온다. '먹이터 표식 페로몬'은 '꿀벌의 춤' 같은 유도 신호를 갖고 있지 않은 장수발벌이 동료를 호출하기 위한 도구다. (중략) 먹이터 표식 페로몬으로 모인 장수말벌은 동료가 세 마리 이상이 되면 행동이 극적으로 바뀐다. 그 전까지 둥지 구멍을 노리거나, 여기저기 페로몬을 바르던 행동을 갑자기 그만두고 오로지 눈앞의 적을 죽이는데 전념한다. (중략) 마리아는 뭔가에 홀린 듯이 꿀벌을 살육했다."(<딸들의 제국> 중에서)

책 <딸들의 제국>은 장수말벌을 의인화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질풍의 여전사'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강한 전투력을 지닌 워커(일벌) 마리아. 말벌 세계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존재인 워커 한 마리가 우화한 직후 첫 사냥을 나가는 것부터 죽어가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통해 장수말벌들의 세계와 생태적 특성 등을 들려준다.

동생들에게 먹이를 가져다주는 전사들

워커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유충인 동생들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공급해 제대로 우화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다. 전사 마리아도 마찬가지. 다른 장수말벌보다 우월한 체력을 가지고 태어난 마리아는 하루 종일 끊임없이 사냥하고, 그렇게 사냥한 먹이를 최대한 신선하게 동생들에게 먹이고자 전전긍긍한다.

사실 장수말벌은 육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충일 때만 육식을 하고 성충이 된 이후에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몸의 구조상 고형으로 된 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꽃가루나 수액을 먹는다. 그리고 유충들이 내뱉는 타액을 받아먹는데, 이는 말벌에게 아주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장수말벌은 풍뎅이나 메뚜기, 잠자리, 왕사마귀 등 어떤 곤충도 가리지 않고 사냥한다. 장수말벌의 눈에 띈 것이 불행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률까지 높다. 하지만 자연계의 어떤 생명이든 천적은 반드시 있게 마련. 왕사마귀처럼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나 큰 사냥감과는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자신은 정작 전혀 먹지 못하는 먹이를 사냥하고자 목숨까지 내 거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낳지 않은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자, 매일,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자칫 보금자리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냥터로 나가는 것이다.

"둥지(기자 주: 꿀벌의)에는 1000마리에 달하는 유충과 번데기가 있다. 이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제국에 가지고 갈 수송부대가 필요하다. 이제 곧 오리가와 카테리아가 동료를 이끌고 오겠지만, 그 사이 다른 제국의 장수말벌이 급습하지 않는다고는 장담 못한다. 그런 사태를 대비해서 남은 장수말벌들은 상자 둥지(기자 주: 양봉벌의)를 지키며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상자 둥지 밑에 쌓인 꿀벌 사체들을 내려다봤다. 그중에는 아직 다리를 꼼지락거리는 벌도 있다. 곧 죽겠지.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불과 열 마리 밖에 안 되는 장수말벌이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30000이 넘는 꿀벌들을 학살한 것이다. 제국(기자 주: 장수말벌의)이 치른 희생은 단 한 마리였다."(<딸들의 제국> 중에서)

심지어는 다른 말벌들이나 꿀벌 등, 다른 벌들까지 거리낌 없이 사냥한다. 그것도 눈에 띄는 벌 한두 마리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말벌이나 꿀벌 등의 둥지를 습격해 유충과 번데기까지 약탈해 애벌레들의 먹이로 삼는데, 이는 다른 말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수말벌만의 독특한 행동 특성이라고 한다.

소설 속 마리아 역시 마찬가지. 먼저 우화한 언니 장수말벌들과 함께, 그리고 동생들을 이끌고 다른 곤충들보다 포학한 다른 말벌들의 둥지를 습격하기도 하고 꿀벌의 둥지를 약탈하기도 한다. 이런 마리아에게 주어진 목숨은 불과 30일. 제국을 위해 온 몸을 불사른다.

이 책, 말벌에 대해 세세히 알려줍니다

장수말벌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장수말벌이 다른 곤충들과 다른 방식의 번식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그 작은 몸 어떤 비밀이 장수말벌들로 하여금 자신들보다 엄청 많은 숫자의 상대와 몇 시간씩 싸울 수 있게 하는 걸까. 수컷 벌과 암컷 벌은 어떻게 선택되는 것일까. 말벌의 무엇이 우리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가.

<딸들의 제국>은 주인공 마리아의 목소리를 통해 장수말벌들의 일생과 여왕벌의 독특한 일생 등 장수말벌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사실 말벌은 종종 우리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지라 실질적으로 우리와 적대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계속 말벌로 인한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위험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 정작 알고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소설은 (장수)말벌에 대한 참 많은 것들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자칫 딱딱하거나 어려울 수 있는 장수말벌들의 세계와 특성 및 자연계의 약육강식의 질서를 마치 한 편의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설명해준다. 독자는 내레이션을 따라 숲 속과 들판에서 말벌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착각에 빠지기도 할 만큼 책 속 묘사는 생생하고 세세하다.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는 그 비밀들에 대해서 말이다.

말벌집 근방 5~6m는 위험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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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단맛에 이끌리거나 벌집을 건드리거나 하면 위협을 느낀 벌이 방어하고자 공격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말벌 중 가장 위험한 장수말벌은 자신들의 둥지 5~6m 거리에 있는 것도 위협물로 간주해 공격한다. ⓒ 김현자


말벌 관현 사족을 덧붙이면, 2006년 9월 중순 어느 일요일. 남편이 집 근처 골목에서 벌에 쏘였는데, 쏘인지 10여 분만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기도 주변이 심하게 부풀어 올라 기도를 막기 직전이었다.

이후 늘 궁금했다. 흔히  벌집을 건드리거나 벌을 피하려다가 잘못 건드리면 벌이 본능적으로 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편은 당시 그냥 걸어가다가 쏘였기 때문이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1m가 넘는 축대 위의 집 처마의 벌어진 틈에 벌집이 지어졌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거리가 확보된 셈이었다. 그런데, 왜 쏘였을까.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은 '말벌에 쏘이지 않으려면 알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절실함이다. 장수말벌은 자신들의 둥지, 즉 벌집과 5~6m 거리에 있는 것도 위협물로 간주해 공격한다고 한다.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나 자주 가는 곳에 유난히 큰 벌이 보이면 말벌집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말벌집이 보이면? 119에 신고해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장수말벌들의 세계만을 들려준다면 자연생태계의 한 존재인 장수말벌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만 얻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전사 마리아가 애벌레들의 먹잇감으로 만나거나 거대한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료로 만나는 또 다른 곤충들의 물음은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묻게 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의 의지라고 할 수 없는 본능에 이끌려 평생 자신이 낳지 않은 애벌레들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다 제국에 해가 되지 않고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 누군가의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의 제국을 위해 또 다른 말벌들의 애벌레까지 침탈하는 장수말벌의 모습에서 인간세계의 냉혹한 약육강식이 느껴지기도 한다.

생태학자도 아닌 저자가 어떻게 이처럼 장수말벌의 세계를 적나라하고 생생하고 들려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거듭 감탄하며 궁금해 했던 것 중 하나다. 대학 재학 중 방송작가로 데뷔한 저자는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장수말벌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이 단서가 돼 장수말벌 제국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덧붙여, 이 소설 '<딸들의 제국>은 '도쿄대생 100명이 뽑은 책'에 선정됐으며 연극으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개미의 세계를 세심하고 적나라하게 들려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보다 생생하고 치밀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딸들의 제국> (하쿠타 나오키 씀 | 이기웅 옮김 | 뜨인돌 | 2012.06 | 1만2000원)


덧붙이는 글 <딸들의 제국> (하쿠타 나오키 씀 | 이기웅 옮김 | 뜨인돌 | 2012.06 | 1만2000원)

딸들의 제국

햐쿠타 나오키 지음, 이기웅 옮김,
뜨인돌, 2012


#장수말벌 #청소년(1318) #황말벌 #좀말벌 #뜨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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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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