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동안 아홉 건의 방화사건... 누가 범인일까

[서평] 브루스 디실바가 쓴 <악당들의 섬>

등록 2012.08.17 10:49수정 2012.08.1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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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악당들의 섬> 겉표지

<악당들의 섬> 겉표지 ⓒ 검은숲

미국 북동부에 있는 로드아일랜드 주는 미국서 가장 작은 주다. 모니터 화면으로 미국 지도를 보았을 때 워낙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코딱지'만 한 주다.

브루스 디실바의 2010년 작품 <악당들의 섬>의 주인공은 그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식민지 시대에 이단자, 밀수업자, 살인자들이 그곳에 정착하자 독실한 농부들이 그곳을 로그아일랜드(Rogue Island·악당들의 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는 이름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로드 아일랜드의 역사 또한 이름의 유래에 걸맞게 온갖 부정과 비리가 장식하고 있다. 독립전쟁 당시에는 중무장한 사략선들이 해적질을 하고 돌아다녔고,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는 신문사 소유주가 돈을 주고 사람들의 투표권을 사들였다.

작가 브루스 디실바가 실제로 로드 아일랜드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니, 이런 이야기들이 약간 부풀려졌을지 몰라도 전혀 허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런 범죄의 역사는 현대까지 이어진다. <악당들의 섬>에서 로드 아일랜드는 연쇄 방화범이 돌아다니는 무대가 된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화재 사건

로드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마운트 호프에서 연달아서 화재 사건이 발생한다. 석 달 동안 마운트 호프에서만 주택 화재 아홉 건이 발생했고 다섯 명이 사망했다. 그 화재사건 중 일곱 건이 전부 반경 1km 이내서 발생했고 대부분 지하실에서 화재가 시작됐다. 이는 화재가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방화라는 의미다.


내년이면 나이 40이 되는 주인공 멀리건은 로드아일랜드에서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기자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여기고 있으며 항상 경찰 무전기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사건 취재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화재사건이 발생하면 누구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다. 지역 소방대장이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그에게서 나름대로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멀리건은 일련의 화재사고가 방화범의 소행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경찰이나 수사관이 아니라서 정보를 얻고 추적하는 데에 한계를 느낄 뿐이다.


범죄소설의 주인공이 대부분 그렇듯이, 멀리건도 자신의 상관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편집장은 멀리건에게 동네 애완견을 취재해서 기사를 쓰라고 닥달하고, 지역 화재수사관은 멀리건에게 교통사고나 취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냉소한다.

멀리건은 그래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로드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자신의 고향이 방화범에 의해서 망가져 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못한다. 멀리건은 화재현장을 뛰어다니고 목격자를 탐문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추리하면서 사건의 진상에 조금씩 접근해간다. 그 와중에도 화재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포기하지 않는 신문 기자

방화범이 계속 건물에 불을 지르고 다닌다면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건물에 사는 특정인을 증오해서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또는 부동산 개발 등의 이유로 건물을 강제로 철거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밤하늘을 배경으로 불타오르는 건물을 보면서 흥분하려고 사이코 방화광이 계속 불을 내고 다닐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방화 사건 수사는 살인 사건 수사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범인이 현장에 불을 질렀다면 분명 무엇인가 흔적을 남겼을 테지만, 그 흔적은 보통 불에 타서 없어져 버린다. 아니면 소방대원들이 쏟아붓는 소화액에 흘러서 사라져버린다. 심한 경우에는 화재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조차 밝혀낼 수가 없다.

멀리건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사건에 대한 조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욱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숯 더미로 변해버린, 악취를 풍기는 시신을 꺼내오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하고 증오한다.

화재로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은 사람들, 동시에 그동안 살아오던 집과 재산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사건조사를 그만두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화재는 개인과 가족에게서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앗아간다. 누군가의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 못지않게 몹쓸 짓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악당들의 섬> (브루스 디실바 씀 | 김송헌정 옮김 | 검은숲 | 2012.06 | 1만2000원)


덧붙이는 글 <악당들의 섬> (브루스 디실바 씀 | 김송헌정 옮김 | 검은숲 | 2012.06 | 1만2000원)

악당들의 섬

브루스 디실바 지음, 김송현정 옮김,
검은숲, 2012


#악당들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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