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짐바닥에 풀어놓은 짐 사이를 고양이가 돌아다니고 있다.
최성규
저녁은 컵라면이다. 스토브에 물을 끓여 용기에 붓는다. 오랜만에 조촐한 식사를 하니 요 며칠간 즐겼던 '황제의 식탁'이 생각난다. 정겨운 친척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 먹던 화기애애한 식사자리.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세차게 밀려드는 파도는 해변 위에 성급히 세운 모래성을 금새 무너뜨리고 만다.
스스로 택한 고독함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결과값이 나왔다. 제가 쳐놓은 그물에 걸린 거미. 공중에서 버둥거리며 '외로움' 백신을 맞는다. 투명한 용액이 팔뚝에 꽂힌 바늘을 통해 울룩불룩한 정맥을 따라 흘러들어간다. 사지말단의 모세혈관까지 파고드는 액체는 몸을 휘감아 나를 깊은 늪으로 잡아끈다. 14시간 동안 태평양을 건너 착지한 미 대륙, 조그마한 마을 풀밭에서 몹시 사람이 보고팠다.
무엇을 위해 여행하는가? 사람들이 묻는다. 지금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인생에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나만의 도전이다 등. 세 치 혀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을 해대지만 기실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진정한 여행은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걷는 것이라는 말을 누가 했던가. 애스토리아에 도착하면 해답이 조금이라도 보일 거란 헛된 기대를 품는다.
6월 12일 화요일 Holy cross 인근 Fogle road - SR 920번과 84번의 교차점61.5 mile ≒ 98.9 km점점 캠핑에 능숙해진다. 7시가 약간 지난 시각. 눈을 뜬다. 아침을 먹고 너저분한 짐을 정리하기까지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속도가 붙는다. 기세를 몰아 맥다니엘스(Mcdaniels)까지 가기로 맘먹는다. 약 80마일. 아직 무리지만 이른 출발시간을 한번 믿어본다.
탁상행정은 현실과 일치하지 않았다. SR 52번과 SR 247번의 교차로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고야 말았다. 오른쪽으로 내달리는데 3~4마일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바로 근처에 게세마니 수녀원(abbey of our lady of gethsemani)이라는 큰 이정표가 있음에도 길을 놓치다니. 라이더의 굴욕이다.
버팔로(buffalo)를 지나 SR 61번을 따라가다가 US 31E 도로에 이르자 표지판 하나가 시선을 잡아끈다. 에이브러햄 링컨 출생지 국립사적지(Abraham Lincoln Birthplace national historic site).
불과 오른쪽으로 0.2마일. 고민이 된다. 여기서 시간을 조금이라도 보내면 맥다니엘스(McDaniels)까지는 무리다. 이러한 선택의 순간에 참고하는 기준이 하나 있다. A를 선택하고 B를 포기하였을 때 아쉬움이 크다면 나는 B를 택한다. 난 링컨을 보고 싶다.
1808년 12월 토마스(Thomas)와 낸시(Nancy) 부부는 놀린(nolin) 강이 흐르는 싱킹 스프링 농장(sinking spring farm) 300에이커를 200달러에 사들인다. 옛집을 떠나 남서쪽으로 14마일 떨어진 농장으로 이사 가는 날. 첫째 아이 사라(Sarah)는 불과 한 살이었다.
싱킹 스프링 농장의 붉은 흙은 그다지 기름지지 않았다. 근처는 불모지였고 목초지를 만들려는 인디언이 불을 놓아서 나무도 자라지 않았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당시 개척자들이 흔히 살던 통나무집이었는데, 흙바닥에 창문 하나, 문 하나가 달렸고 작은 화덕, 지붕, 그리고 진흙과 짚, 나무판자로 만든 낮은 굴뚝이 조촐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809년 2월 12일 일요일. 옥수수 껍질과 곰 가죽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던 낸시는 아이를 낳았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딴 그가 바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다.
아버지 토마스는 농장 일 외에도 간간히 목수일과 캐비넷(진열용 선반이나 장) 작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어머니 낸시는 가족을 위해 화덕에서 빵과 옥수수, 돼지고기를 요리했다. 검소한 생활이지만 가난하지는 않았다. 두 개의 농장과 엘리자베스 타운의 여러 부지, 가축들을 가지고 있던 링컨 일가는 그 지역에서 부유한 축에 속했다. 1811년 10마일 떨어진 납 강(Knob creek) 인근 농장으로 이사 가기까지 링컨 가족이 2년 동안 살았던 싱킹 스프링 농장.
링컨 가족이 떠난 농장에 위치한 기념관 건물 안에는 통나무집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1894년 뉴욕의 사업가 데닛(A. W. Dennett)은 링컨 농장을 구입하여 통나무집 하나를 싱킹 스프링 근처로 옮긴다. 얼마 후 분해된 집은 많은 도시를 옮겨 다니며 전시되었다.
1905년 <주간 콜리에(weekly collier)>의 편집장인 로버트 콜리에(Robert collier)가 이 농장을 다시 사들인 후 1년 후인 1906년 마크 트웨인(Mark Twain), 윌리엄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 새뮤얼 곰퍼스(Samuel Gompers) 등의 유명 인사들과 함께 링컨 농장 연합(Lincoln Farm Association)을 결성한다. 제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출생지를 보존하고 기념관을 건립하려는 계획이었다.
같은 해 그 통나무집을 사들인 연합회는 건립을 위한 모금행사를 개최하여 십만 명의 시민들로부터 35만 달러를 모았다. 1909년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초석을 놓고, 1911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대통령이 기념관 완공식을 열었다. 존 러셀 포프(John Russell Pope)가 디자인한 이 건물은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졌다.
191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기념관과 싱킹 스프링 농장은 1959년 에이브러햄 링컨 출생지 국립사적지(Abraham Lincoln Birthplace 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