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콘 농사 유감

소설 같은 반전이 있는 농사

등록 2012.11.04 18:27수정 2012.11.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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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심지 않고도 심었다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일이다. 보리씨앗을 뿌려놓고 밀이라고 둘러댈 수도 없는 일이 농사다. 콩을 심어놓고 팥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농사인 것이다.그러나 가끔은 농사도 소설처럼 극적인 반전을 경험하는 일이다. 가뭄과 홍수 냉해 등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재앙에는 예상했던 수확량이 뚝 떨어지는 경우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금년 야콘 농사. 집짓기를 시작하면서 집지을 터에 있던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텃밭 가운데 새 비닐하우스를 짓는 일은 하루에 뚝딱 해치우는 일이 아니었다. 기존의 하우스를 옮기고 새로 짓는 것이 나은지 판단하는 일도 마을 사람들의 엇갈리는 의견, 하우스를 짓는 업자의 의견을 듣다보니 쉽지 않았다. 결국 기존의 하우스를 철거하고 텃밭에 새 하우스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그런 탐색기간이 후딱 며칠 걸린 것이다. 다시 하우스를 철거하는 데 이틀, 새 하우스를 짓기 위해 철근을 들여오고 하우스 형태로 철근을 휘는 작업(벤딩이라고 했음)과 철근을 세우는 일도 이틀이나 걸렸다. 그 사이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다린 날까지 합하면 새하우스를 완성하기까지 거의 보름이 걸리고 말았다.

그 사이에 철거한 하우스안에 구덩이를 파고 갈무리해두었던 야콘의 관아는 추위에 노출되어 얼어버렸다. 부랴부랴 새 비닐하우스로 옮기고 성한 관아를 떼어내어 모종을 만들었지만 다른 해에 비해 족히 두 이레는 늦고 만 것이다. 농사에는 일주일이 굉장한 변수일 수 있는데 보름이 늦었으니 야콘 풍작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인가. 수확이 떨어지리라는 사실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던 것이다.

4월 말, 그래도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약한 모종을 옮겼다. 여름 가뭄에도 야콘은 시원하게 자라 무성한 잎을 자랑했다.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제(3일) 오후, 야콘을 캤다. 서리 맞은 잎이 바람에 금세 바스러지는 것을 볼 수 없어 줄기를 쳐내고 비닐을 걷어내는 일도 땀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야콘 주변을 호미로 긁어내고 조심조심 들어올리는 순간 어쩐지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변은 없었다. 아니다. 나의 기원이 무색하게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이다.

a 야콘 수확 내가 야콘을 들어올리면 어머니와 아내가 크기에 따라 분리했다.

야콘 수확 내가 야콘을 들어올리면 어머니와 아내가 크기에 따라 분리했다. ⓒ 홍광석


일차적으로 내 탓이었다. 핑계일 수 있지만 모종을 늦게 만들고 덜 자란 모종을 늦게 심은 잘못이 컸다. 거기에 연작의 피해를 무시한 것도 잘못이었다. 금년에 야콘은 100주를 세 곳에 나누어 심었는데 그 중에서 한 줄은 지난해에 야콘을 심었던 자리였다. 그런데 그 중에서 연작했던 두둑의 야콘은 상품성 있는 실한 뿌리를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작물이 연작했을 경우 수확량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피하지 않았던 것인데 그런 기대가 무모한 욕심이었음을 증명해준 셈이다.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천심. 긴 가뭄, 그리고 찌는 더위는 사람만 지치게 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몇 번의 태풍은 야콘의 뿌리를 흔들었다. 야콘이 뿌리에 자양분을 모을 안정적인 시간을 주지않고 가을이 된 것이다.

야콘의 수확은 쉽게 끝났다.야콘이 실하면 주변의 흙을 호미로 긁어내고 뿌리를 들어내야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잡아당기면 뿌리가 드러나는 야콘을 보며 아내는 우리 먹을 것만 나와도 괜찮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실망스런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데 한 뿌리에서 평균 4kg정도 수확했으나 금년에는 어림하여 보건데 평균 1.4kg을 겨우 넘을 것 같다. 평년의 3분의 1 수준이다. 고마웠던 몇 친지들에게 보내려고 했던 마음은 소리 없이 접어야 할 것 같다.


농사는 생명 없는 흙에서 생명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노동이다. 무릇 농산물의 결실은 가족의 협동과 땀 흘리는 노동 그리고 기다림의 산물이다. 쌀 한톨 배추 한포기도 종교적인 심판 혹은 주술적인 기도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산술적인 손익을 따지는 결산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때를 맞추어 준비하고 흘린 땀 만큼 나타난 결과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엄정하게 자신을 평가하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교훈으로 새겨야할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내년에 심을 자리를 미리 봐두고 내년 모종으로 쓸 관아를 모아 챙겨야겠다.

참, 11월 2일에는 숙지원에 무서리가 내리고 첫얼음이 얼었다. 이제 겨울의 관문을 넘은 듯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야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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