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7%, 대학을 버리자 '삶'이 보였다

[서평] 르포작가 박영희의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등록 2012.12.10 17:01수정 2012.12.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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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겉표지 ⓒ 살림

꾸준하게 책을 읽어오면서 '어떤 책인가?'를 묻기 전에 그 저자의 책이기 때문에 선택할 정도로 좋아하는 저자 몇이 있다. 르포작가 박영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작가 박영희는 <팽이는 서고 싶다>나 <즐거운 세탁>을 비롯한 여러 권의 시집을 냈는지라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인으로 먼저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약자들의 고통과 한숨을 그 누구보다 진솔하게 들려주는 르포작가로 우선 떠오른다. 그가 쓴 르포집 <길에서 만난 세상>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읽던 그 먹먹한 감동과 함께.


저자를 처음 알게 된 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이주노동자, 미혼모, 탈학교 청소년, 거리를 떠도는 노인 등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인권 보장에서마저 차별받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길에서 만난 세상>(우리교육, 2006년)이다.

책 속 주인공들은 어렵지 않게 골목이나 길에서 만날 수 있으나 미처 돌아보지 못한 내 이웃들이거나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이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울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간다던 아무개씨의 안부가 새삼 궁금한가 하면, 가게 앞 버스 정거장에서 매일 우두커니 앉아 있곤 하던 노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하철이나 길가 1.45평짜리 간이가판대 앞을 지나노라면 책에서 읽은 그들의 이야기가 떠올라 다시 보게 되고 또 마음 아프곤 했다.

저자의 다른 르포집 <보이지 않는 사람들>(우리교육, 2009년)도 거의 비슷한 책. 비슷한 심정으로 읽었다. 여하간 저자는 내게 우리 사회의 소외받고 차별받는 약자들의 아픔을 가장 따뜻하고 진실한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들려주는 사람 중 하나로 닿아 있다. 때문에 그의 책들을 추천하기도 하고 늘 찾아 읽곤 한다.

문득 명지대학교에서 교수로 있는 강규형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경제수준에서 80퍼센트의 대학 진학률이 과연 정상적일까? 미국 60~70, 일본 50, 유럽 선진국 40~50퍼센트와 비교해도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어디 그뿐일까. 2012년 현재 대학을 졸업한 청년 실업자만 4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박사학위를 딴 실업자 수를 합하면 대한민국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벌써 여러 해 일자리를 달라며 아우성이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대학교 진학이 의무교육처럼 되어 버린 걸까.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는 정말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것일까? 나는 우리가 이 문제를 좀 더 깊게 고민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그래서 가방을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나라 전체 고교생 중 83%가 대학입학을 한다. 10명 중 8명꼴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높은 대학 입학률이다. 마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 혹은 사회인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처럼 된 지 오래다. 하지만 83%의 나머지인 17%는 대학 입학 대신 '고졸'이란 이름표와 함께 곧장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우리나라 대학은 대형마트... 일종의 '충동구매'"

르포작가 박영희의 신간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살림프렌즈 펴냄)는 대학 입학률 83%에 포함되지 않는 나머지 17% 청년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무엇에 대한 배움 때문이 아니라 일단 어느 대학이든 입학해 졸업장을 받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린 세태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 대신 삶의 현장을 선택한, 한편으론 차별의 이름표가 되어 버린 고졸 출신이란 이력으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전국의) 아름다운 청년 11명을 인터뷰, 그들의 꿈과 희망과 삶에 대한 도전과 그 용기를 들려준다.

"야간자율학습이기에 더욱더 학생들의 의견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도 교과부와 학교는 반강제로 '자율'을 죽이고 있어요. 학원으로 가는 학생과 학교에 남을 수밖에 없는 학생. 제가 보기에 그건 굉장히 기분 나쁜 차별이었어요."(조혜영)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경우는 공부를 해서 먹고살 팔자는 아니었어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저 또한 그렇게 살고 싶었죠. 공부 잘하는 형을 둘이나 뒀으니 그중 하나는 힘쓰는 일을 해도 좋지 않을까요."(김재성)

"요즘 널리고 널린 게 대학 아닙니까? 게나 고동이나 너나없이 다 가는 바람에 주식으로 치면 벌써 몇 년째 바닥을 치고 있고요. 제 자랑하는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저 이래 봬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오라는 경마장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죠."(김성수)

"우리나라 대학은 대형마트를 닮은 것 같아요. 꼭 필요해 산 물건이 아니라 A라는 사람이 사니까 덩달아 B라는 사람도 사게 되는, 일종의 충동구매라고 할 수 있죠."(O성문)
-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에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는 오빠가 불쌍해 보이기만 하고, 야자가 싫어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첫 번째 주인공인 혜영씨는 대학생 응모자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새마을금고 공채에 도전해 합격한 것이 삶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가장 즐거운 추억은 '탱자탱자'들과 맘껏 놀고 다양한 경험을 즐긴 것이다.

마필관리사인 성수씨 역시 혜영씨처럼 제도권 교육이 싫어서 일찌감치 대학을 자신의 삶에서 제외시켜 버린 경우. 스카우트 제안이 너무 많아 고민이라는 그가 대학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적성은 곧 길과 같다. 어느 곳으로 진출하든 먼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라"와 같은 말로 용기를 심어주곤 했던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아버지의 이삿짐센터를 이어받겠다며 졸업과 동시에 이삿짐센터 일에 뛰어든 재성씨에게 직업은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사이즈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마다 몸에 맞는 일이 따로 있다'이다. 구구단 6단의 벽을 도무지 넘어설 수 없었다는 그는 자신은 흔히 말하는 공부체질이 아닌 만큼 힘쓰는 일이 적격이라며 이삿짐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 

대학진학,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모들을 위해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에는 우연히 경마장에서 본 달리는 말에 꽂혀 기수의 길을 선택한 이아나씨, 친구 권유로 대학등록금을 벌고자 뛰어들었다가 대학을 그만두고 직장을 선택하고만 정용남씨 등의 사연이 더 실려 있다.

책 속 주인공 중 누구는 흔한 말로 '머리와 가정 형편이 되는데도' 대학에 가지 않았고, 누구는 가정을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대학 입학을 일찌감치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차별의 딱지이기도 한 고졸 출신임에도 졸업과 더불어 순탄하게 직장 생활을 해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주인공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대답은 '자신이 원하는 일에 귀 기울여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 그 어떤 때보다 일을 할 때가 즐겁고,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어서 보람 있다'이다. 이런 주인공들의 보람과 희망, 애환과 우여곡절은 우리 공교육의 문제와 청년 실업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무엇일까? 과연 선택의 문제일까? 높은 청년 실업률 그 돌파구는 과연 없는 걸까?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는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려운 걸까?

대학입학률 83%, 그 나머지 17% 중 한 사람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과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이 책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수도 없이 고민하고 토론해왔음에도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런 물음들에 대한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책이 부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묻지마식 대학 입학이나 비싼 등록금 현실을 염려하고 비난하면서도, 머잖아 내 자식의 문제로 닥치면 그 길을 가는 데 몸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이 이 책을 특히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고교 졸업과 함께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청년들에게는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종사해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 수 없는 여러 직업들의 세계와 그 현장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장점이 될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책 외에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만주의 아이들>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대통령이 죽었다> 등이 있다.

덧붙이는 글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박영희 씀| 살림Friends 펴냄| 2012-11-12ㅣ1만2000원

나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 삶이 길이 되고 꿈이 땀이 된 고졸 청년들의 이유 있는 선택

박영희 지음,
살림Friends, 2012


#대학입학 #청년 실업 #공교육 #8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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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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