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역습? 10년새 무슨 일이 있었나"

[좌담회] 참여사회연구소 주최...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사회 변동

등록 2012.12.21 15:07수정 2012.12.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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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헛헛한 웃음소리도 들렸다. '민주진보진영'을 대표하고 나섰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패배한 지 이틀 뒤인 21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는 18대 대선의 의미를 평가하는 좌담회가 열렸다. 좌담회를 주최한 홍윤기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장(동국대 철학과 교수)은 "오늘은 18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좌담회 끝나고 반드시 투표소에 들러달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장은주 <시민과 세계> 편집주간(영산대 교수)의 사회로 열린 이날 좌담회에는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패널로 참석했다.

"진보진영의 집권능력에 대한 의구심 드러났다"

a  21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21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18대 대선의 의미와 한국 사회 변동'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 홍현진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오래 전에 토론회 참석 부탁을 받고 나오기로 했는데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면서 운을 뗐다. 강 교수는 "선거판 자체가 특정 이슈라든지 후보자 개인적 측면보다는 보수 대 진보라는 진영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양 진영에서 결집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결집시켰다"며 "여전히 한국의 보수가 굳건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야권의 패배 원인에 대해 "내 것을 보여주지 않고 남의 잘못에 편승해서 지지를 얻겠다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 "'MB가 못하니까 권력이 넘어오겠지' 이걸로는 안 된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진보진영의 집권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강 교수는 특히 야권의 의제설정 능력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많은 신문에서 '50대 유권자', '수도권' 이 두 변수가 선거 결과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생활과 관련된 불안감의 문제다. 전통적으로 진보가 강했던, 강해야만 되는 그런 이슈인데 결국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됐던 이슈인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후보 쪽에서 선점했다. 과거에는 진보가 유리했던 이슈지만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주지 못했다."


강 교수는 이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적어도 절차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는 상당한 정도 실현이 됐다"면서 "그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했던 거대 담론 이후, 어떤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거대 담론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치세력으로서 진보가 어떤 답을 줄 수 있느냐에 대한 절박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야권이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그는 "정치개혁이라는 주제만이라도 확실하게 차별성을 갖고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민주당이 제도적인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겠다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것이 국민적인 호응을 받았으면 새누리당도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제는 노무현과 김대중을 어떻게 버려야하는지 고민을 해야한다"면서 "자신을 완전히 버리려고 하는 자기 변신이 없으면 앞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철수 현상'과 관련해 이태호 사무처장은 "모두가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정치개혁으로 유권자들을 조직할 것인가'라는 좌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안철수 현상'의 꼭짓점에 있는 안철수는 충분히 유능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강원택 교수는 "(안철수 전 후보가) 정치개혁이라는 중요한 화두는 던졌지만 내용적으로는 다소 허접한, 포퓰리즘적인 접근을 했다"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제도적 정치권에 들어가서 대표되지 못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새로운 경쟁틀을 만들어내서 기존 정당들을 자극하고 변화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서 전체적인 논쟁 자체가 힘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50대의 보수화? 삶의 문제에 밀착하지 못했기 때문" 

a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당선 인사말을 하자, 김용준, 정몽준,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과 지도부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해 당선 인사말을 하자, 김용준, 정몽준,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과 지도부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하고 있다. ⓒ 유성호


한귀영 연구위원은 진보진영의 패배 원인을 "50대의 역습"이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은 "50대가 박근혜 후보 지지가 높았는데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도 50대는 보수성향이었다, 새삼스럽게 보수화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우리가 봐야하는 것은 10년 전에는 50대의 노무현 지지율이 이회창 지지율보다 높았는데 1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은 "참여정부의 실패와 국정운영 불안이 50대에게 씻을 수 없는 불안감을 주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은 "'50대의 보수화'로만 보기에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50대가 산업화 시대 주요 수혜 계층이다. 7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실질적으로 성장을 경험한 세대이고 본인들이 산업화시대의 수혜자다. 이 세대들한테 '20대 청년들을 위해 희생해달라'는 요구를 던졌는데 사실은 이들이 20대보다 더 불안한 세대다. 노후, 자녀, 하우스푸어. 그런데 야권에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구체적인 부분이 없었다.

50대가 요구한 건, '자신들이 힘들게 쌓아왔던 것들을 어떻게 하면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욕망의 정치라면 욕망의 정치지만, '희생하라'는 가치만으로는 결국 표를 얻을 수 없었다. 왜 이들의 삶의 문제에 대해 좀 더 밀착거리에서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불안감을 줬을까. 50대 뿐만이 아니다. 40대, 30대 지지율도 떨어졌다." 

한 위원은 또한 "2008년 총선, 2010년 지방선거, 지난 4·11 총선에서도 경기인천 지역은 야권세가 강한 지역이었는데 이들의 민심이 이반했다"면서 "이는 민주당 조직의 문제가 크다"고 분석했다. 한 위원은 "아무리 중앙에서 아젠다를 가지고 경제민주화, 복지를 떠들어도 지방에서 조직들이 같이 움직이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보수가 결집하면 이기기 어렵다고 했는데 이게 진짜 보수가 결집한 결과인가, 보수의 외연확장이 성공한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한 "5060을 보수라고 보는 것이 맞나"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5060을 보수라고 보기 보다는, 5060이 유보했던 부분에 대한 부응이 안 돼서 나타난 절박함의 표시라고 볼 수 있지 않나. 가장층이고, 실제로 50대 자살율이 증가하고 있다. 가계대출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박근혜 후보 제1공약이 가계 대출이었다."

김 교수는 "5060이 박근혜를 이해하는 방식과 진보진영이 박근혜를 이해하는 방식이 불일치했다"면서 "'독재자의 딸'이라고 하는데 언론이나 <나꼼수>에서 조롱한다고 유권자들도 조롱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태호 사무처장 역시 "박근혜 후보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면서 "박근혜 후보는 굉장한 득표력을 가진 후보다, 매 선거에서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온 파괴력 후보"라고 말을 받았다.

"박근혜 후보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냉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여러 가지로 통합력을 갖는 것이었다. 여성들한테는 어찌됐든 남성들의 정치에서 생물학적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그 자체가 많은 호소력이 있었다. 가부장적인 분들에게는 박근혜 자신이 가부장성을 대표하기도 한다. 독재자건 아니건 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가부장적인 후광이 있다." 

"의제투입의 정치는 끝나... 산출의 정치 필요"

a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가진 해단식에서 울먹이는 캠프 관계자들을 다독이며 위로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가진 해단식에서 울먹이는 캠프 관계자들을 다독이며 위로하고 있다. ⓒ 남소연


'진보정치의 관점에서 본 대선의 의미'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다. 김윤철 교수는 "경제민주화가 모든 정치세력에게 받아들여지는 등 이제 이념정책적인 측면에서 진보의 독자성을 주장하기가 어려워졌다"면서 "의제투입의 정치는 끝났다, 산출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산출을 하려면 사회적 기반이 있어야 하고 집권을 하거나 수권가능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새로운 이념정책적인 차별성과 실력이 없는 상황에서 퇴행적인 언어를 구사한 예가 이정희 후보, 홍성담 화백이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이제 '제3 정치세력' 공간의 주인은 안철수 후보와 그 지지자들로 바뀌었다"면서 "민주진보진영이 사회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시민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금까지 진보가 선호 형성 정치를 해왔다면 4050의 선호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정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원택 교수는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었던 한계, 그걸 극복하지 않으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면서 "왜 계층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했는지, 진보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8대 대선 #12.19 대선 #대통령 선거 #참여연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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