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내와 젊게 사는 김진국씨김진국 씨는 30년 가까이 나이 차가 나는 베트남 아내와 함께 신혼생활을 하며 옥동자까지 얻어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허성수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경안시장 안. 투명 아케이드로 길게 이어진 통로 중간에 '한국이주노동재단'이라는 단체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봉사단체로서 번잡한 상가 건물 2층을 빌려 매주 화·목요일 오전 2시간씩 한글교실을 연다.
수업에 참여하는 결혼 이민자들은 10여 명 정도. 대부분 동남아 출신 여성들이다. 그런데 교실 밖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갓난아기를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을 매주 그 시간에 볼 수 있다. 마치를 손주를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 같아 보이지만 아니다. 지난해 늦둥이 아들을 본 김진국(57·광주시 목현동)씨였다.
그의 아내는 31세로 자신보다 무려 26년이나 더 젊었다. 2010년 8월 베트남에 가서 재혼해 2011년 1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아내와 언어소통이 잘 되지 않은 것 외에는 금슬이 좋아 나이 차이가 많아서 생기는 불편 사항은 없다고 했다. 다만 주변에서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늦둥이를 보고 난 후에는 동네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김씨에게는 이미 장성한 두 자녀가 있어서 이번에 셋째 아들을 얻고 난 후에는 광주시로부터 출산장려금도 받았다. 일시불로 100만 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매달 20만 원씩 양육비를 지원받는다.
전처에게서 태어난 두 자녀들은 재혼한 부인과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새엄마와 자녀들과의 관계가 무척 서먹하다고.
"아직 미혼인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만 아내에게 엄마라고 불러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베트남 여성과 재혼한다고 의논도 하지 않았지만 막상 반기지도 않았어요."나이 서른이 넘은 아들과 딸은 외지에 나가 살기 때문에 가끔 집에 찾아오면 만날 뿐이다. 김씨는 둘째 딸이 3세였을 때 첫 번째 부인과 이혼했다. 그 후 다른 여성과 재혼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물론 한국 여성과 결합했지만 자신을 이용하려고만 하다가 결국 떠났다고 했다.
"내가 가난하니까 무시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베트남 여성을 택해 재혼하게 됐죠."그는 베트남에서 부부 사이 나이 차가 크게 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내는 혼기를 놓친 여자였습니다. 베트남에서는 18~20세가 결혼 적령기죠. 처가에서도 저와 결혼하는 것을 적극 찬성했습니다. 장인·장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김씨는 베트남 여성들이 무척 착하다고 했다. 그가 아내와 같이 사는 곳은 광주시 목현동 깊은 산골이다. 광주시에서 성남시로 넘어가는 큰 길가에서 겨우 차 한 대 다닐 만큼 좁은 산길을 따라 2km 남짓 올라가야 하는 산중턱에 살고 있었다. 주변에 이웃도 별로 없는 외딴집이어서 부인 탓티웃 씨는 외로워 보였다. 재활용 고철과 폐지를 수집하고 분류해서 팔아넘기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김씨는 바로 자택의 마당이 사업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와 늘 같이 지내며 달콤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기는 지난 11월 25일 첫돌을 맞이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김씨는 한글교실 수업이 있는 날은 아내를 승용차에 태워 광주시내까지 같이 나간다. 한국이주노동재단에서 그녀는 한글공부도 하고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누린다. 모처럼 모국어로 그 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향수를 달래는 것이다. 김씨는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교실 밖에서 아기를 보다가 끝나면 같이 쇼핑하고 귀가한다.
그의 아내는 작년 4월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 말하고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는 통역을 부릅니다. 베트남 출신으로 한국에 좀 일찍 와서 공부도 많이 하신 분인데 한국말이 능통해 통역을 잘해 줍니다."기자가 쉬운 말로 인터뷰 하려고 시도했지만 탓티웃씨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도 그녀의 순박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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