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썰매대회에 이런 이유가 있을 줄이야

[서평]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

등록 2013.01.09 18:38수정 2013.01.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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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생긴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고자 내 영혼의 안식처 동네 도서관엘 들렀다. 몸은 멀리 떠나지 못하지만 마음만이라도 어디 멀리 떠나고 싶어, 여행책들이 서로 기대어 있는 서고를 훑어보던 내 눈을 담박에 사로잡은 책을 발견했다.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박준기 글 사진,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책 내용은 둘째치고라도 제목이 돌직구 마냥 가슴에 꽂힌다.    

책 뒷면에 써있는 산악인 엄홍길 아저씨의 추천사도 좋다.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의 고산(高山)으로 향한 건 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의 행로를 따라 걸어갔고, 때때로 그 여정이 '인간'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도록 요구했을 뿐이다. 우리 삶이 무엇 다르랴. 우리는 매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선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책의 부제 '나는 끝을 향해 갔다'처럼 저자는 흔히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황량한 툰드라의 대륙 알래스카에 그것도 영하 40~50도를 오르내리는 얼음산 매킨리와 개썰매가 내달리는 대설원 아이디타로드(Iditarod)에서 인간 정신의 순수와 열정을 체험하고 독자들에게 힘들게 찍은 사진과 글로 진솔하게 전해주고 있다.

살아 있음을 깨닫기 위해 세상의 끝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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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의 마지막 원시지대, 얼음산 맥킨리(본래 이름은 디날리) ⓒ 박준기


"도대체 알래스카에 무엇이 있소?"
알래스카···· 화려하지도 감각적이지도 않은 그곳에는 사실 별것 없다. 그러나 스스로의 영혼이 고독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짧은 언변을 무릅쓰고 그 고독의 완성을 위한 종착지로 주저없이 알래스카를 이야기하고는 한다 - 본문 가운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퍼펙트 월드>에서 주인공 버치는 탈옥 후 필립이라는 꼬마를 인질로 잡고 거침없이 탈주를 계속한다. 텍사스 수사팀과 경찰이 총동원되어 그의 행방을 쫓지만, 알아낸 것은 탈옥수가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들이 궁금해 하는 버치의 목적지는 알래스카였다.


감독은 왜 알래스카를 탈옥수 버치의 목적지로 그렸을까? 그것은 아마도 알래스카라는 땅이 버치처럼 삶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비현실적이고 막막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끊임없이 노스탤지어를 불러 일으키는 시원(始原)의 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버치는 그곳에서라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꿈에 유혹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알래스카는 원래 러시아령이었으나, 1867년 3월 29일 720만 달러의 헐값에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지금이야 알래스카에 황금과 석유 등 무한한 천연자원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귀한 땅이 되었지만, 당시 재정난에 허덕이던 러시아는 쓸모없이 얼음만 가득한 땅을 팔아치운 성공적인 비즈니스에 파티까지 벌였고, 얼음 땅을 매입한 국무 장관 스워드는 "국무장관이 아이스박스를 돈 주고 샀다"는 언론의 뭇매와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알래스카는 그러한 역사의 기록이나 천연자원의 보고로서의 가치 등의 사실보다도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원시지대라는 미학적 관심으로 인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알래스카는 땅 주인 미국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다. 그것은 단지 관심이 덜하다든지 혹은 알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 대해 무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알래스카는 아직 인간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조용한 대지의 느낌,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아직도 거대한 대자연과 이음동의어 격으로 다가오는 알래스카는 단지 탈옥수 버치만이 동경하는 곳은 아닐 것이다.

몇 달씩 텐트를 치며 북한산을 올랐고, 덕유산 꼭대기의 산장을 지키며 등산객들을 구조하기도 하고 설악에 단풍이 들면 로프를 메고 천화대 능선을 밟던 저자는 어느 날 넓은 땅떵이가 보고 싶어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알프스, 히말라야까지 드나 들더니 결국 알래스카에 있는 6194미터의 얼음산 매킨리(본래 이름은 디날리(Denali)로 아사바스칸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산)까지 찾아가게 된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삶을 사는 저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도대체 당신은 왜 그렇게 사시오?"란다. 탐험에 나서는 이들은 죽고 싶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하다는 말은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고독한 사람들일 뿐··· 저자의 답변이다. 화려한 도시보단 광막하고 황량한 초원이나 사막의 풍경이 더 마음에 다가오는 나도 알 것 같기도 하다. 

위대한 모험과 도전의 길, 아이디타로드(Iditar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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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서사시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대설원길, 아이디타로드 ⓒ 박준기


내가 세상의 끝이라는 알래스카에서 운명처럼 듣게 된 건 어느 전설. 오래전, 북극 마을의 어린이들을 살리기 위해 1800킬로미터의 눈 덮힌 설원에 목숨을 걸고 길을 뚫었던 스무 명의 머셔(musher 개썰매꾼)들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오십 년이 더 지난 후 사람들이 찾아 나섰던 그 길에서 '아이디타로드'라는, 전설을 잇는 개썰매 대회가 계속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복잡한 도시와 인간문명에서 삼류 철학에 찌든 채 헤매고 있던 나를 단숨에 휘어잡은 것이다. - 본문 가운데

1925년 1월 알래스카 교역의 중심지 앵커리지에서 1800킬로미터나 떨어진 인구 1500명 가량의 작은 마을 놈(Nome)에 디프테리아가 창궐했다. 디프테리아는 특히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이어서 항혈청을 맞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혹한의 추위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알래스카의 1월은 잔인했다. 혈청이 앵커리지에 도착했지만, 혈청을 놈에 운반할 방법이 없어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그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정의감에 찬 스무 명의 개썰매꾼들이 등장했다. 목숨을 담보로 자원한 이들은 섭씨 영하 47도, 체감온도 영하 57도의 혹독한 날씨 속에서 맹렬한 눈보라를 뚫고 북극의 설원을 이어달리기 식으로 헤쳐 나갔다. 그들은 25일은 족히 걸렸을 거리를 5일 8시간이라는 초인적인 기록으로 주파하여 3만 개의 약품을 놈까지 운반하였고 아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동안 7명의 어린이가 희생되었지만 그들이 운반한 혈청 덕분에 더 이상의 희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스무 명의 개썰매꾼들과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증명한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후대 사람들은 당시 개썰매꾼들이 달려간 그 길을 복원하여 세계적인 개썰매 대회를 열었다. 이것이 알래스카 '아이디타로드(Iditarod)'의 전설이다. 듣기만해도 가슴을 울리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알래스카에 이어져오고 있었다니 새롭고 놀랍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모험과 도전이 아니어서 그런지 더욱 감동적이다.

셀파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자기 혼자의 힘으로 올라야 하는 극한의 얼음산 매킨리에서, 용맹스러운 충견 알래스칸 허스키가 끄는 개썰매가 내달리는 대설원 아이디타로드에서, 단지 남들이 하기 힘든 모험과 도전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넘어 그 시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저자의 시선과 마음 그리고 혹한의 추위 속에서 힘들게 찍었을 사진들이 돋보이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 박준기 글 사진,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11년 1만2000원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

박준기 글.사진,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


#알래스카 #매킨리 #디날리 #아이디타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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