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내가 200년 전 화형당한 마녀라니?

[리뷰] 존 딕슨 카 <화형 법정>

등록 2013.03.04 13:54수정 2013.03.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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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화형법정> 겉표지

<화형법정> 겉표지 ⓒ 엘릭시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추리소설의 역사를 장식했던 수많은 추리작가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셜록 홈즈를 창조한 코난 도일이라고 말하겠다.

대신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존 딕슨 카를 들겠다. 존 딕슨 카는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다작(多作)형의 작가였기 때문에 평생동안 수십 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하지만 그 중에서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출간된 작품은 채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거의 모두 국내에 번역출간 되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꽤나 대조적이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삼분의 일도 읽지 못했다는 점이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존 딕슨 카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받았던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작가들과 차별되는, 카의 작품을 특징짓는 두 가지 요소는 바로 밀실과 괴기다.

불가능 범죄에 도전했던 카

밀실과 괴기는 논리적인 추리와는 다소 동떨어진 영역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질적인 요소를 뒤섞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카의 장기였다. 상식적으로 보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불가능한 범죄를 작품 속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밀실이란 것은 글자 그대로 (거의) 완벽하게 폐쇄된 공간을 가리킨다. 이런 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카는 밀실에 집착했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수많은 밀실 트릭을 창안해냈다. 그리고 <세 개의 관>에서는 기드온 펠 박사의 입을 빌려서 밀실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밀실트릭은 여러가지로 나뉜다. 살인처럼 보이는 우발적인 죽음도 있고, 살인이지만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마치 자살처럼 보인다. 혹은 실내의 특수 장치에 의해서 죽음을 맞는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전화기를 들면 감춰진 총이 발사되면서 피해자가 죽는 경우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밀실트릭이 있다.

카의 작품의 또다른 특징은 괴기취향이다. 전설이나 민담을 살인사건과 함께 뒤섞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전설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괴담이다. <흑사장 살인사건> <해골성> <마녀가 사는 곳> <구부러진 경첩>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을 읽다보면 추리소설을 읽는 건지 괴기소설을 읽는 건지 구별이 잘 안될 정도다.


카가 밀실과 괴기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니다.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는 이 두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순수하게 트릭으로만 승부를 건 작품이다. 여기에 사용된 트릭의 정체를 알고난 후에 '이런 트릭도 가능하구나'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납골당을 파헤치는 사람들

<화형 법정>은 카가 1937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화형 법정이란 것은 중세시대에 독살범이나 마녀로 몰린 사람들을 고문하고 화형을 선언했던 법정을 의미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뉴욕의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에드워드 스티븐스다. 그는 인기작가의 원고자료에서 17세기 독살범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그 사진 속의 인물은 바로 자신의 아내이기 때문이다. 이런 충격도 잠시, 이웃에 살고 있는 마크가 스티븐스를 방문해서 다른 충격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얼마전에 위염으로 사망한 삼촌이 사실은 독살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밤에 함께 삼촌의 관이 있는 납골당에 가서 관을 열어보자고 부탁한다. 스티븐스는 뭔가에 홀린듯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한밤중에 납골당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도입부부터 사람을 으스스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를 시작으로 카는 <화형 법정>에서 자신의 장기를 한껏 풀어놓는다. 죽지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인간, 빛이 들어오지 않게 검은 커튼을 친 채 독살범을 고문하는 중세시대의 법정, 밀실에서 소리없이 사라진 여인, 죽은 후에 되살아난 시체 등.

현실에서 이런 식의 기괴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카의 작품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불가능 범죄의 구현. 그것은 모든 범죄자나 추리작가가 꿈꾸는 하나의 로망일 것이다. 그리고 카는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작가였다.
덧붙이는 글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지음 / 유소영 옮김. 엘릭시르 펴냄.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엘릭시르, 2013


#화형법정 #존 딕슨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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