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마다 이사... 14살 명호의 '유목민 생활'

전국 청소년쉼터는 이미 포화상태... "위기 청소년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야"

등록 2013.03.10 14:37수정 2013.03.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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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청소년쉼터는 가정해체, 가정폭력, 경제적 어려움, 가출 등을 겪은 이른바 '위기 청소년'을 위한 보호시설이다. 청소년복지지원법에 근거하여, 9살부터 24살까지의 위기청소년에게 주거, 상담, 의료, 고충처리, 문화 활동, 자립교육 등을 지원한다.

청소년쉼터는 가정해체, 가정폭력, 경제적 어려움, 가출 등을 겪은 이른바 '위기 청소년'을 위한 보호시설이다. 청소년복지지원법에 근거하여, 9살부터 24살까지의 위기청소년에게 주거, 상담, 의료, 고충처리, 문화 활동, 자립교육 등을 지원한다. ⓒ 박현진


이명호(가명. 16)군은 11살 때부터 가족이란 울타리를 잃었다. 이군의 엄마는 "형편이 나아지면 곧 찾으러 오겠다"며 서울 동대문의 한 아동센터에 이군과 3살 위 누나를 맡겼다.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이군이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시작이었다.

남매는 보육원에서 3년을 보냈다. 14살이 된 이군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보육원의 통제된 생활이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그곳을 뛰쳐나왔다. 누나는 보육원에 남아 혹시 찾아올지 모를 엄마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군에게 갈 곳은 없었다. 이군은 며칠 동안 거리를 헤맨 뒤, 서울 신림동의 청소년쉼터를 찾았다.

청소년쉼터는 가정해체, 가정폭력, 경제적 어려움, 가출 등을 겪은 이른바 '위기 청소년'을 위한 보호시설이다. 청소년복지지원법에 근거하여 9살부터 24살까지의 위기 청소년에게 주거, 상담, 의료, 고충처리, 문화 활동, 자립교육 등을 지원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거나 민간단체에 위탁을 한다. 청소년쉼터는 위기 청소년의 보호기간 및 기능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되며, 2012년 기준으로 전국에 ▲일시쉼터(13개소) ▲단기쉼터(49개소) ▲중장기쉼터(30개소)가 있다.

'유목민'이 된 위기 청소년

이군의 어려움은 청소년쉼터에서도 계속됐다. 이군이 찾은 청소년쉼터는 단기쉼터로, 보호기간이 3개월 내외로 규정돼 있다. 이는 단기쉼터의 기본목적이 '가정으로의 복귀'이기 때문이다. 담당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위기 청소년들이 각 쉼터별 운영위원회를 거쳐 단기쉼터 생활을 두 차례(3개월씩) 연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혹은 2년 정도 지낼 수 있는, 중장기 쉼터로 옮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방법 모두 어린 위기 청소년들에게 쉽지 않은 방법이다. 일단 위기 청소년들이 운영위원회의 심의 과정 자체를 꺼려한다. 또 아이들은 자신의 자활의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일도 어렵고 부담스러워 한다. 이군은 "단기쉼터를 연장하든, 중장기쉼터로 옮기든, 자활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14살이었던 나에겐 그 말 자체가 막막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결국 이군은 수도권의 단기쉼터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서울 신림에서 안양, 의정부, 인천을 떠돌며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 쉼터에 정을 붙일 때쯤이면 3개월이 다 됐다. 그렇게 이군은 3개월짜리 삶을 살았다. 몇몇 쉼터에서는 그의 처지를 배려해 3개월이 넘도록 이군을 내보내지 않았다. 규칙에는 어긋났지만, 어린 이군을 '유목민'으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대다수 단기쉼터 관계자들도 이군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서울의 한 단기쉼터 관계자는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에게 자활이란 말은 무척 어렵게 느껴질 것"이라며 "(위기청소년이) 부담 없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단기쉼터 연장 혹은 중장기쉼터로 이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단기쉼터 실무진들에게도 '3개월 내외'라는 지침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의 한 단기쉼터 관계자도 "이런 문제들 때문에 단기쉼터들이 허가보다 더 많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사례가 많다"며 "갈 곳 없어 찾아온 아이들을 내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가족에게 기타 연주 해주고 싶어"

a  이명호군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이군은 14살 때부터 수도권의 단기쉼터를 전전해왔다. 이군은 "돈이 모이면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싶다"며 "나만의 기타도 마련해서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이명호군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이군은 14살 때부터 수도권의 단기쉼터를 전전해왔다. 이군은 "돈이 모이면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싶다"며 "나만의 기타도 마련해서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 박현진


오랫동안 쉼터에서 생활한 이군은 수줍음이 많았다. 때마침 기타를 메고 있기에 연주를 부탁했다. 부끄러운 듯 이군의 얼굴은 붉어졌다. 한 차례 더 부탁하니 이군은 "쑥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군은 "자원봉사자 선생님에게 배운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잠시 생각하던 이군은 자세를 가다듬고 기타를 쳤다.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였다. "한 달 배운 거 치고는 참 잘한다"고 칭찬하자 이군의 얼굴은 또 붉어졌다. 

이군이 인천 청소년 단기쉼터 '바다의 별'에서 지낸 지도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이번에는 그가 연장을 선택했다. 이군에게 뚜렷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검정고시에 도전하기로 했다. 쉼터를 정기적으로 찾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에게 도움도 받는다. 이군은 "틈 날 때마다 스스로 공부한다"며 달라진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이군은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학내 폭력사건에 한차례 휘말린 이후, 학교에서는 일만 났다 하면 이군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군은 "여러 선생님들은 나를 귀찮아 하거나 걸림돌처럼 여겼다"고 기억했다. 가정에서 밀려난 이군은 학교에서도 밀려났다.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이군은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볼 생각이다. 몇 년 전부터 엄마와 누나는 서울에서 같이 살게 됐지만, 아직 이군까지 함께 하기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다. 이군은 "돈이 모이면 엄마, 누나와 함께 살고 싶다"며 "나만의 기타도 마련해서 가족에게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a  청소년쉼터의 종류 및 기능.

청소년쉼터의 종류 및 기능. ⓒ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2년 청소년백서'에 따르면, 청소년 쉼터에서 보호할 수 있는 위기 청소년의 숫자는 900명 남짓이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위기 청소년의 규모를 현재 약 87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체 청소년의 17%에 달하는 규모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가정 복귀가 어려운 위기 청소년이라면 (직업교육 등) 적절한 도움이 가능한 중장기쉼터가 더 유익하다"며 "위기 청소년 발견 초기에 정확한 사례분석을 통해 단기쉼터를 전전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지침을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올해 안에 쉼터 개소수를 92곳에서 103곳으로 늘리기 위해 예산규모도 73억 원에서 81억 원으로 확충했다"고 덧붙였다.

"'가출청소년' 들어간 기사 안 봐"
"우리 사회는 쉼터에서 지내는 청소년들의 부정적인 면을 주로 부각시킨다. 물론 그런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행복의 조건을 잃어버린 청소년들에게 좀 더 따뜻한 태도를 보이는 게 정상 아닌가."

장정혁 인천 청소년 단기쉼터 '바다의 별' 상담부장은 위기 청소년을 향한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청소년에게 가장 적절한 자리는 가정이지만 이 아이들은 거기서 밀려났다"며 "우리 사회가 이들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가정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위기청소년이 많은 현실에서, 사회가 가정 복귀 이외에 대안을 마련해줘야 한다"며 "직업교육 등 자활 능력을 만들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위기청소년에 대한 일부 언론들의 보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일부의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시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쉼터에서 만난 한 청소년도 "인터넷을 하다가 '가출 청소년' 등이 들어가는 제목의 기사는 안 본다"며 "대부분 우리를 나쁘게 묘사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쉼터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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