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블루 드레스는 무엇입니까?

[서평] <블루 드레스>를 읽고

등록 2013.03.16 16:00수정 2013.03.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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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드레스 알비 삭스의 법과 삶에 관한 글
블루 드레스알비 삭스의 법과 삶에 관한 글일월서각

블루 드레스는 흑인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헌법 재판소 초대 재판관을 지낸 알비 삭스가 쓴 개인의 삶과 법관으로서의 삶을 법리적 관점에서 조망한 글모음이다.

표지에 보이는 블루 드레스는 법과 인권, 화해와 용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 등 인간 삶을 법과 이어주는 많은 상징성이 담겨 있다.


남아프리카 민족회의 '민족의 투창' 소속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해 무력 투쟁에 참여했던  치과대학 여학생 필라를 체포한 보안경찰은 그녀와 함께 저항운동을 한 동지들의 이름을 대도록 몇 주 동안 그녀를 발가벗겨 두었다. 필라는 여성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파란 비닐봉지를 구해 바지를 만들어 입었다. 보안경찰들도 차마 그녀가 만들어 입은 파란비닐바지를 벗겨내지는 못했다. 그녀는 침묵했고 끝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보안경찰은 그녀를 사살했다. 필라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그 비닐봉지는 그녀의 골반에 감겨 있었다. 그녀의 죽음에 연루된 보안경찰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는 전혀 말을 하려하지 않았으며 놀라울 정도로 용감했다고 한다.

후에 필라의 이야기를 들은 주디스 메이슨(남아프리카공화국 예술가)는 "필라, 당신께 드레스 한 벌을 만들어 줄게요"라며 파란 비닐봉지를 모아 바느질을 시작했고 완성된 드레스 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자매여, 비닐봉지가 신이 주신 갑옷은 되지 못하리라.하지만 이 야비한 땅에서, 그대는 5살을 베어내고 피를 흘리면서 권력과 어둠의 통치자들, 그리고 악한 영혼들과 맞서 싸웠다. 그대의 무기는 침묵과 한 조각 쓰레기 뿐 이었다. 그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비닐봉지를 구해, 바지를 만들어 입은 그대의 모습은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주부의 행동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대의 행동에 도리어 부끄러워 포획자들은 그대의 옷을 두 번 다시는 벗기지 못했다. 대신 그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우리는 포획자들의 키득거리는 입을 통해서 그대의 진실과 그대가 얼마나 용감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대의 용기를 기리는 비닐봉지는 이 세상 어디에나 널려 있다. 그 비닐봉지들은 거리 곳곳에서 바람에 날리고, 파도에 떠밀려 다니며, 가시덤불에도 걸려 있다. 그 비닐봉지들을 모아 이 드레스를 만들어 그대에게 바치나니 잘 가오. 투사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50년간의 노예제도, 300년간의 식민지 체제에 이어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아파르트헤이트로 인종차별 정책을 펼쳐왔다. 그런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인 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수많은 아프리카민족회의 소속 투쟁가들이 비밀경찰에 잡여 고문들 당하다 처참하게 죽음을 맞았다.

1994년 역사상 처음 민주적 선거가 실시되어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들은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수많은 숨겨진 범죄를 토설하게 만들고 그들을 처벌하는 대신 관용과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용서한다. 피해자 가족들로서는 억울하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절대로 정의와 자유, 민주적 절차를 통한 평화가 자리잡지 못할 것이라 여겨졌던 남아공은 세계 역사상 가장 평화적이고 진보적으로 과거청산과 입헌민주주의, 사법정의,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한 사례를 남겼다고 한다.


친일 잔재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도 못했고 독재정권하에 억울하게 간첩으로 사상범으로 마녀 사냥을 당해 고문으로 죽어 간 많은 투사들, 일제 침략과 동족상잔으로 서로를 엮어 죽이고 죽은 아픈 역사를 지닌 우리에게 이 책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친일청산의 잔재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고, 분단이 빚어낸 비극,  5.18 범죄, 유신정권이 빚어 낸 범죄의 현장 또한 완전한 용서나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이 아니던가.


아니 오히려 친일 세력들이군사독재나 정치적인 억압의 하수인들이 되어 권력을 등에 업고 범죄를 지속하거나, 독점기업으로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성장한 몇 몇 재벌 기업들은 정치적 억압과는 다른 형태로 범죄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상실, 사법부의 정의 상실 입법부의 무능, 권력층의 도덕성 상실까지 많은 것들이 소중한 개인의 인권을 발가벗겨 푸른 비닐봉지를 찾게 만들고 있다.

자본가에 의한 범죄인 정리해고, 손해배상 가압류, 비정규직 등 법과 자본의 이름으로 합법적으로 자행되는 범죄 앞에서 맨몸의 개인은 어떤 것으로 인간의 마지막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지천에 널려 바람에 날리는 파란 비닐봉지가 부끄러운 인간의 신체를 가려 줄 바지나 드레스는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의 목숨을 지탱해 줄 양식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이땅 이천만 비정규직 노동자 개인이 지닌 마지막 자존심인 블루 드레스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나는  마지막 자존감은  인간이 정신적 존재임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희미한 온기나마 남은 손을 서로 마주잡고 희망을 향해 나가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참고*

블루 드레스는  자유를 위한 투쟁 중  사망한 필라 온드완드웨(민족의 투창 소속'으로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무력 투쟁에 참여한 치과대학 학생)와 헤럴드 세폴라(장례사업을 하며 무력 투쟁에 참여 중 동료의 배신으로 체포 전기 고문으로 사망)의 용기를 기리기 위한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블루 드레스/알비 삭스지음/ 김신 옮김/ 일월서각/18,000원

블루 드레스 - 법과 삶의 기묘한 연금술

알비 삭스 지음, 김신 옮김,
일월서각, 2012


#블루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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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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