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쏜 총에 턱 맞아... 평생 장애 시달린 할머니

[서울처녀 제주착륙기 14]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 자원봉사 하던 날

등록 2013.03.19 16:04수정 2013.03.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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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진아영 할머니의 집 4·3사건 당시 경찰의 총에 턱을 맞아 한평생 무명천으로 감싸고 살아오신 할머니의 집이다. ⓒ 조남희


제주도에는 서울보다 먼저 찾아온 봄기운을 따라온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육지에서 온 관광객 코스프레(?)를 하며 올레길을 쏘다니다가, 완연한 봄날씨에 제주도의 4월이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다양한 4·3사건 관련 추념 행사가 준비 중이고, 4·3유족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4·3 위령제 참석을 요구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갓 '입도'한 새내기 도민이지만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을까 하던 차에 제주주민자치연대에서 제주 4·3사건 피해자의 상징적 존재였던 진아영할머니, 일명 '무명천 할머니'의 삶터 지킴이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 전화로 신청을 했다.

"삶터지킴이 자원활동을 신청하려는데요."
"아, 네. 어머니세요?"
"서귀포 대평리에 살고 있는 아, 가, 씨, 입니다. 작년 여름에 서울에서 왔어요. 가도 될까요?"
"아, 예. 크크크. 곧 4월 3일이 다가오고 하는데 할머니 집 정비를 해야 해서요. 동네 개들이 와서 똥을 싸고 가서 치워야 하고요, 화초도 심고 해야 해요. 월령리로 오전 10시까지 오세요."

'아가씨'를 너무 꾹꾹 눌러 힘주어 말했던 건 아닐까 후회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개똥 치우는 거야 전에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때 여러 번 해본 일이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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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모습과 턱을 감추기 위해 쓰셨던 무명천들. ⓒ 조남희


진아영 할머니, 일명 무명천 할머니는 4·3사건의 피해자로서 그 아픔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오신 분이다. 할머니는 1949년 서른다섯 살에 경찰이 발포한 총에 턱을 맞으셨다. 그 후 한평생을 무명천으로 턱을 가리고 제대로 말도 못하고 후유장애에 시달리며 사시다가 2004년 9월 9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제주시 한경면 월령리에 있는 할머니의 집을 보존하기 위해 삶터보존회가 꾸려졌고, 시민사회단체인 제주주민자치연대에서 2008년 이후로 두 달에 한 번 꼴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할머니의 집을 가꾸고 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4·3순례기행을 떠나기도 하고 9월 8일 할머니 기일에 맞춰 마을문화제도 열린다.  

4·3의 아픔을 평생 간직한 채 살다 가신 '무명천 할머니'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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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 작은 텃밭에 가득한 개똥을 치우는 아이. ⓒ 조남희


월령리 마을에 도착했지만 워낙 길치인지라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나가시는 할머니를 붙들고 물어 물어 도착한 작은 집. 두리번거리고 있자 제주주민자치연대 사람들과 자원봉사를 신청한 아이들이 곧 도착했다. 정낭(제주도의 옛날 대문에 걸쳐놓은 굵은 나무가지)을 내리고 들어선 집의 작은 텃밭은 동네 개들이 들어와 싸놓은 똥 무더기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자치연대에서 자주 와서 가꾸는 데도 개들은 어찌어찌 넘어들어와 똥을 싸놓는 모양이었다.

목장갑을 끼고 삽으로 개똥을 퍼서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똥이 굳어서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똥은 똥이니 삽으로 조심조심 푸고 있는데, 내 옆의 여자아이가 목장갑 낀 손으로 개똥을 그대로 집어서 치우고 있었다. 처음 하는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무안한 마음에 삽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할머니가 주무시던 두세 평 남짓한 방 한 칸과 주방이 전부다. 생전에 생활하시던 모습 그대로가 느껴졌다. 할머니가 덮으시던 이불과 신으시던 신발, 쓰시던 가재도구 그대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잠시 외출하신 것처럼 느껴졌지만 방 한구석에 정리된 할머니가 턱을 덮으셨던 하얀 무명천들과 벽에 걸려 있는 할머니의 사진들이 생전의 고통스러웠던 삶을 생각하게 했다. 생전에 사셨던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에서 삶터보존회와 자치연대의 깊은 고민과 노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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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집은 주민자치연대와 마을사람들의 노력으로 사시던 모습대로 보존되고 있다. ⓒ 조남희


어른들은 텃밭을 정리하고 가져온 꽃들을 심고, 아이들은 잡초를 뽑고 할머니가 쓰시던 이불을 꺼내 돌담에 널어 먼지를 털고 말렸다. 방바닥의 먼지도 정성껏 비질을 했다. 호미질을 해본 적도, 이불을 널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이었지만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서로가 나서서 따스한 봄햇살 아래 즐겁게 집안팎을 청소했다. 방바닥 비질을 하던 여학생에게 물었다.

"자원봉사 점수 준다고 해서 왔어?"
"아니에요~, 크크크."
"그럼 하고 싶어서 온 거야? "
"친구가 저번에 하고 왔는데 저한테도 가보라고 했어요."

아이의 목소리에선 진심이, 비질하는 손길에선 정성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그렇게 돌아가신 할머니를 알고, 할머니의 삶의 모습을 보고, 직접 그 집을 치우고, 방명록에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제대로 된 역사를 알아가지 싶었다.

올레길과 닿은 집 앞 바다... 할머니도 이 바다를 바라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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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아이들이 모여서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담은 다큐를 보고 있다. 마을 할아버지가 오셔서 아이과 함께 서서 보고 있다. ⓒ 조남희


"태풍 때는 더 걱정되시겠어요?"

텃밭을 정리하다 한숨 돌리고 있는 자치연대 사무처장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그렇죠. 뭐 날아가지나 않을까 싶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가요?"
"올레길 걷다가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계세요."

마을 안에 있는 집이지만, 일부러 찾아와 보는 올레꾼들도 있는 모양이다. 올레길 14코스가 월령리를 지난다. 유명한 협재와 금릉 해수욕장도 지척이다. 14코스를 걷는 올레꾼들은 월령리에 오면 잠시 시간을 내어 할머니 집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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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에 아이가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글을 남기고 있다. "진아영 할머니 저는 여기 자주오고 있어요. 무명천을 쓰기 전에는 미녀였네요. 잊지 않을게요." ⓒ 조남희


두 시간 남짓 집 정비를 끝내고 나오자 몇 백 미터 지나지도 않아 마을에 인접한 바닷가가 눈에 들어왔다. 무명천 할머니도 가끔은 앉아서 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도로에 들어서자 아까 보았던 열심히 청소하던 아이들이 버스정류장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너희들 어디 가니?"
"협재요~. 얘가 라면 끓여준대요~."
"태워줄까? 타!"
"와~!"

오늘 할머니의 집을 찾아본 소회를 묻자 어느새 저희들끼리 4·3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근데 언제 일어난 일이야?"
"1948년이래. 6년 6개월 동안 사람들이 엄청 많이 죽었대."
"와~ 6년 6개월이나? 근데 오래된 일도 아니네?"
"응, 우리 할머니는 그때 숨어 지냈던 얘기 해줬어."

협재의 푸른 바닷가에 이르러 아이들을 내려주는 내 뒤통수에 "다음에 또 봬요~!"라고 합창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꽂혔다. '이거 어쩔 수 없이 다음에 또 가야겠군'이라고 생각하며 시원스런 바닷길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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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사셨던 월령리 마을길에 인접한 바닷가. ⓒ 조남희


#제주도 #4.3사건 #무명천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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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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