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졸한 소시민에게도 자기 희생이 가능할까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19] <수난로(水煖爐)>

등록 2013.04.08 14:42수정 2013.04.0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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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팔을 고이고 앉아서 창을 내다보는
수난로는 문명의 폐물

삼월도 되기 전에
그의 내부에서는 더운 물이 없어지고
어둠이 들어앉는다


나는 이 어둠을 신이라고 생각한다

이 어두운 신은 밤에도 외출을 하지 못하고 자기의 영토를 지킨다
―유일한 희망은 겨울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의 가치는
왼손으로 글을 쓰는 소녀만이 알고 있다
그것은 그의 둥근 호흡기가 언제나 왼쪽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를 가보나
그의 머리 위에 반드시 창이 달려 있는 것은
죄악이 아니겠느냐

공원이나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여름이면 그의 곁에 와서
곧잘 팔을 고이고 앉아 있으니까


그는 인간의 비극을 안다
그래서 그는 낮에도 밤에도
어둠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둠과는 타협하는 법이 없다
(1955)

이 시의 제목인 '수난로'는 라디에이터(radiator)와 같은 것입니다. 관을 통해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를 통하여 방안을 덥히는 기구 말이지요. 당연히 이 수난로가 제대로 대접 받는 계절은 추운 겨울이겠지요.


그런데 이 시에서 '수난로'는 이미 "문명의 폐물"(1연 3행) 취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수난로'는 피어나는 꽃들을 시샘하는 "삼월도 되기 전에"(2연 1행) 천덕꾸러기 처지로 전락합니다. "그의 내부에서는 더운 물이 없어지고 어둠이 들어앉"(2연 2, 3행)게 됩니다.

그런데 이 '어둠'이 심상치 않습니다. 화자 '나'에게 그것은 '신'입니다. 그 "어두운 신"이 갖고 있는 "유일한 희망은 겨울을 기다리는 것"(4연 2행)입니다. '겨울'은 수난로 안에 어둠 대신 뜨거운 증기가 채워지는 계절이지요. '어둠' 그 자체인 '신'으로서는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시간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신'이 '겨울'을 기다리는 것은 그 '겨울'이 되어야 어둠을 품고 있는 '수난로'가 그 존재의 가치를 되찾게 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만약 '수난로'와 '어둠'을 분리할 수 있다면, 이들은 존재의 차원에서 서로 모순적인 관계를 갖게 됩니다. 어느 한쪽의 부재가 다른 한쪽의 존재를 가져오는 역설과 같은 것 말이지요.

이러한 역설은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한번 더 출현합니다. '그(수난로)'가 "낮에도 밤에도 / 어둠을 지니고 있으면서 / 어둠과는 타협하는 법이 없다"(9연 1~3행)는 진술이 그것이지요. 대체 이미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어둠'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그 실마리는 바로 앞의 "그는 인간의 비극을 안다"(8연)에 있는 듯합니다. 그가 "인간의 비극"을 안다는 진술은 이어지는 "어둠을 지니고 있으면서 / 어둠과는 타협하는 법이 없다"라는 진술의 전제 문장입니다. 앞의 것이 근거가 되고 뒤의 것이 결론이 되는 구조인 것이지요.

이런 관계에서 도대체 어떤 의미가 딸려 나오는 것일까요. '어둠' 속에서 '어둠'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은 "인간의 비극"을 아는 '그'가 그 비극에 맞서고자 할 때 취하는 다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짐은 일종의 자기 희생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는 지금 "문명의 폐물"이 되어 천덕꾸러기가 된 채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7연 1행)이 "팔을 고이고 앉아 있"(7연 3행)을 수 있게 그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주고 있습니다. '그'가 "밤에도 외출을 못하고 자기의 영토를 지"(4연 1행)키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런지요.

전후의 피폐함 속에서 혼란스러운 삶을 살았던 수영에게 이와 같은 자기 희생의 다짐은 매우 이채롭습니다. 훗날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와 같은 시에서 고백하듯이, 수영 자신은 오히려 "옹졸한 소시민"과 같은 모습에 더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나는 "옹졸한 소시민"이 그 자신을 "옹졸한 소시민"으로 지칭하는 말법의 이면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누군가가 그 자신의 입으로 스스로의 '옹졸함'을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옹졸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요. 그렇다면 '옹졸한' 수영에게 자기 희생의 다짐은 당연한 귀결이 됩니다. 그가 끊임없이 싸운 대상은 바로 '옹졸함'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 시는 1955년에 쓰였습니다. 만약 수영이 이 시 속의 '수난로'를 1954년에 보았다면, 그는 '수난로'를 틀림없이 좀더 처연하고 애절한 이미지의 소재로 그렸지 않았을런지요. 그때 그는 온통 '설움'과 '비애'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 '수난로'는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비록 겉으로는 천덕꾸러기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희망'도 갖고 있고, '어둠'과 타협하지 않는 결기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영에게 1950년대의 앞 시기 절반은 어둡고 긴 터널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빠져나오면서 수영은 점점 세상 속으로, 현실의 한복판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수난로>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수난로> #소시민 #옹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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