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아저씨들의 유년시절 담아내다

[서평] <남자의 탄생> 한 아이의 유년기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등록 2013.04.29 14:43수정 2013.04.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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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탄생 표지 멀리서 보아야 선명해지는 얼굴이 들어 있다. 우리네 삶도 한 걸음 떨어져야, 시간이 흘러서야 좀 더 잘 보이는 것은 아닐까. ⓒ 푸른 숲

'탄생(誕生)'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빛이 난다. 탄생-세상에 나온다는 것은 '나오는 이의 고통'과 '낳는 이의 고통'의 어울림이기에 빛이 난다.

<남자의 탄생>-'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과정'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대한민국에서 한 남자가 어떻게 남자로 길러지는가를, 그 속에 어떤 통증이 있었는가를 얘기하고 있다.


전인권은 정치학을 공부, <편견 없는 김대중 이야기>를 내놓는 등 정치평론가로 활동했지만, 한국문화의 본질을 연구하기 위해 가장 한국적이라고 생각한 화가 이중섭을 연구하여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문학과 지성사, 2000년)을 출간할 정도로 한국의 사회와 문화 연구에 집중하기도 했다.

전인권은 자신은 실패한 사람이라고 덤덤히 말하며, 책의 문을 열고 있다. 자신의 실패 앞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에 집중했고, 그 물음은 '나의 부모는 어떤 사람인가', '그분들은 나를 어떤 방법으로 길렀는가'로 이어지며 당시의 시대상을 담기에 이른다.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성으로, 여성으로 길러진다.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토양 안에서 말이다. 전인권은 그의 말대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제물로 6,70년대 대한민국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실패의 자리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다

아버지의 공간과 어머니의 공간이라는 두 분리된 공간으로부터 그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두 개의 공간, 두 개의 자아, 신분의 감옥, 오이디푸스, 분리사랑, 안택고사, 페르조나, 진급하는 삶. ... 진솔하고 담담하지만 심리학적, 문화인류학적, 사회학적 접근 등 다각적인 모양새로 자신의 어린시절을 해석하고 있다.

전인권은 한국 남성의 탄생을 얘기하면서 그 안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모 됨도 삽입되어있다. 성실하고 착했음에도 그가 갖게 된 오류와 부조리는 당시 시대적 상황이 준, 그래서 그즈음의 남자들에게는 자연스레 스며있는 것들이다. 더불어 그 시대 어버이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그 때는 그랬으니까.


나를 읽게 하다, 여자의 탄생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유년시절을 오버랩된다. 뒤집어져 있는 외투처럼 놓여있던 어린 시절의 그림들이 마치 재생(play) 버튼을 누른 것처럼 활동사진이 되어 '여자의 탄생'을 쓰게 한다.

나의 엄마에게 맏딸인 언니는 전투대상이며 동지였다.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친구같은 존재였다. 눈을 흘기고, 서로 비난도 하고 악다구니도 해대지만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찾는 큰 딸이었다. 그 큰 딸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고 싶어 투쟁하고, 항복시키려 했던 엄마를 생각하니, 큰 딸은 어쩌면 늘 탐나는 적국의 실력파 부하 같은 존재였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 마저든다.

막내 딸은 늘 귀엽고 사랑스럽고 뭐든 다해주고 싶은 존재였다, 실제 막내는 얼굴도 빼어나게 예쁘고 애교도 있었다. 두 아들, 늘 갈등과 고통의 중심에는 그들이 있었다,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내 어머니는 지금도 그 왜곡된 사랑의 결과들을 딸들에게 부담으로 지우고 가셨다. 내 어머니도 아버지가 주는 여러모양의 결핍을 아들부터 채우고 싶었을 게다. 둘째 딸인 나는 말 수도 적고 제일은 제가 알아서 하는, 말썽은 안 피우지만 별로 관심도 안가는, 다시 말해 있으나마나한 딸이었다. 가족 간의 끊임없는 다툼과 갈등에 나까지 보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이 되기까지 많은 이들이 배경이 되어주고, 그들이 만든 시대와 문화가 거름이 되어준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저를 이해하는 데에는 저의 역사를 수용해야 한다.

자신은 어머니의 공간에서나 통하는 '동굴의 황제'였음을 발견한데 이어 아버지의 공간에서는 '티끌'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전인권. 그는 '내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는 도발적인 그러나 매우 적절한 명제로 끝을 맺는다. 진정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만나야 하고, 그리고 그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야 함을 전인권은 말한다.

내 안의 아버지, 네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는 최종적 명제는 당신의 마음에 깊이 각인된 '이상적인' 사람의 이미지를 살해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 아버지와 내 안의 아버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먼저 내 안이 아버지를 정확하게 살해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아버지를 가장 정정당당하게 살해하는 방법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 변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이피할 수 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긍정의 길을 걷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p.299

4, 50대는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2, 30대는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는데에 이만한 책도 흔치 않으리라 본다. 전인권은 지금 중년을 보내는 아저씨들을 탄생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이제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 의해 또 다른 남자의 탄생이 집필되어 나오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남자의 탄생>-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과정, 전인권 지음, 푸른숲 펴냄, 2003년, 1만3000원

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푸른숲, 2003


#남자의 탄생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전인권 #한국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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