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에 화난 '을'이 공정위로 몰려간 까닭은?

[현장] 속으로만 삭히던 분노 표출 "공정화 법률 제정해야"

등록 2013.05.16 14:14수정 2013.05.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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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와 중소상공인살리기시민대책위는 16일 오전 부산 중앙동 공정거래위원회 부산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열고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정책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와 중소상공인살리기시민대책위는 16일 오전 부산 중앙동 공정거래위원회 부산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열고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위한 정책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 정민규


부산의 한 기업형 슈퍼마켓(SSM) 안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윤영씨. 사람들은 빵집이 SSM의 소유인 줄 알지만 빵집의 엄연한 주인은 윤씨다. 대신 윤씨는 SSM에 입점하는 조건으로 1억5천만 원 권리금을 냈고 20%가량의 수수료와 전기세, 가스비 등을 별도로 내고 있다.

하지만 빵집을 직영화하겠다는 뜻을 품은 SSM 본사는 지난해 빵집의 양도와 양수를 하지 못하게 막는 약정서에 서명을 할 것을 윤씨에게 강요했다. '갑'인 SSM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윤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약정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제 아파서 빵집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와도 윤씨는 빵집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게 됐다. 윤씨와 같은 상황을 맞이한 곳은 이 SSM이 출점한 76곳의 점포 중 61곳에 달한다.

학교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이주완씨의 걱정도 이와 비슷하다. 매점의 연사용료가 올라도 이에 응하지 않으면 매점의 운영은 공개입찰로 넘어간다. 교육청은 공개입찰로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지만 높은 값에 매점 운영권을 산 업자들의 사정은 다르다.

이씨는 "높은 금액으로 응찰해 들어온 업자들은 나중에 뒤늦은 후회를 하며 제3자에게 불법으로 재임대를 내주게 되고, 결국엔 중학교 매점의 폐점으로 이어지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지역에서 식품업체의 총판을 맡고 있는 양혜경씨도 본사의 입김에 분노를 터트린다. 양씨가 제품을 받아 판매하는 C기업은 지난해 여름 대기업 물류업체와 물류시스템 거래를 시작하면서 양씨에게도 이 대기업과만 거래를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업체를 이용하는 수송과 배송에 대한 물류비는 양씨가 부담해야 했다. 이러한 부분에 항의를 할 경우 본사는 양씨의 총판에 일시적으로 제품공급을 중단했다. 뿐만 아니었다. 최근 문제가 된 남양유업의 물품 밀어내기처럼 발주량의 2배에 달하는 물건을 억지로 밀어넣고는 총판에 책임을 떠넘겼다.


"대리점 거래 공정화 법률 조속히 제정해야"

유명 제과업체인 L사의 중간 유통 대리점주 허진도씨는 물건을 밀어내는 '갑'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중·대형 슈퍼마켓들은 상품의 입점을 허락하는 대신 공공연하게 입점비를 요구한다. 거기에 각종 세일이며 행사를 내세워 결제 금액을 할인해달라는 요구도 흔하다.


허씨는 "영세 소규모 대리점들은 본사로부터 을의 입장이 되어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입고 납품하는 입장에서도 을의 입장이 되어 부당한 피해를 입게되는 이중의 고통 속에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렇개 '갑'으로부터의 피해를 호소하는 '을' 20여 명이 16일 오전 부산 중앙동 공정거래위원회 부산사무소를 찾았다. 자신들의 피해를 알리고 공정위에 정책 대안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공정위 방문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조속히 제정하여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갑의 횡포를 막아달라며 6가지의 요구안도 전달했다. 요구안에는 ▲대리점사업자에게 상품이나 용역의 공급 또는 영업지원을 부당하게 중단하지 말 것 ▲대리점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구속하거나 제한하지 말 것 ▲물량 밀어내기나 목표량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 불이익을 행사하지 말 것 ▲판촉비 등을 대리점에게 전가하지 말 것 ▲대리점 수수료에 대한 본사의 일방적 책정 금지 ▲하자가 있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의 반품을 허용할 것 등이 담겼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책임이 중요하다는데 입을 모았다.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회장은 "공정거래법이 있음에도 사회적 약자는 을의 입장에서 살아야 한다"며 "을의 입장을 생각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중소상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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