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비구니 스님의 좌충우돌 미국 연수 이야기

[서평]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등록 2013.05.29 15:36수정 2013.05.2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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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 칼리지에서 1년 6개월 동안 연수하는 일상을 기록한 비구니 스님의 촉감과 눈높이는 천수천안이라 할 만큼 섬세하고 다양합니다. ⓒ 임윤수


2007년 12월, 박사학위 논문을 마친 한 비구니 스님이 박사후국외연수를 위해 미국으로 출발합니다. 미국 메사추세츠 노샘프턴에 있는 스미스 칼리지까지 가는 여정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우여곡절입니다.

김치, 된장 고추장까지 꾹꾹 눌러 싼 짐은 버스에 실을 수 있는 중량을 초과해 다 가져가질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맡겨야 했습니다. 줄어든 가방조차 버스에 화물을 싣는 절차를 제대로 알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스님은 결국 미국인 운전사 옥신각신하는 상황까지 벌이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시작부터가 좌충우돌이며 우여곡절입니다.


스미스 칼리지에서 1년 6개월 동안 연수하는 일상을 기록한 비구니 스님의 촉감과 눈높이는 천수천안이라 할 만큼 섬세하고 다양합니다. 결코 출가수행자의 입장이나 방문학자의 눈썰미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여행자의 눈, 출가 수행자의 눈, 인문학도의 눈, 학자의 눈, 여성의 눈, 교포의 눈, 유권자의 눈, 대한민국 국민의 눈, 아시아인의 눈, 교육자의 눈으로 또랑또랑 살피며 적었습니다. 

비구니 스님이 '천안'으로 바라본 미국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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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지은이 명법 스님┃펴낸곳 아름다운 인연┃2013.6.1┃값 1만 8000원 ⓒ 임윤수

조계종 교수 아사리 명법 스님이 쓰고 아름다운 인연에서 펴낸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는 저자인 명법 스님이 미국 스미스 칼리지에서 1년 6개월 동안 박사후연수를 하며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고, 학습한 것들을 에세이처럼 기록한 미국불교 이야기입니다.

한국을 떠나면 모든 한국인이 한국을 대표하게 되듯이 스님들도 한국불교를 대표하게 된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내가 한 것이든 아니든, 심지어 한국 밖에서 벌어진 일일지언정 불교에 관한 일이라면 나의 책임이다. 승려이기 때문에 한국불교뿐 아니라 승단 전체를 대표하고 또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부처님 제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37쪽

스미스 칼리지에 도착한 스님이 보내는 일상은 여느 연수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을 바라보거나 기록하는 스님의 눈은 여유롭고, 날카롭고, 여성적이고, 애국적이고, 소시민적이고, 구도자적이고, 풍자적이고 심지어 세태를 조롱하는 듯 해학적이기 조차합니다.  


자유분방해 보이는 생활 속에서 미국인들의 질서를 보고, 승가조차 없는 미국불교를 보면서 위세 등등한 한국 승가의 실상과 허세를 당신 스스로 반조합니다. 학문에 정진할 때는 더없이 진지하지만 주변사람들과 부닥뜨리며 맺어가는 인간관계는 우리들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불교에는 승가도 없고 공짜 보시도 없다


미국에는 출가수행자 집단인 승가도 없지만 공짜 보시도 없다고 합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제공 받았을 때만 보시를 한다고 하니 한국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와는 거리가 멀지만 보시 또한 철저하게 주고받는(give and take) 미국적 사고와 가치를 전제로 귀결되는 행위라 생각됩니다. 

처음 미국 선 센터에 갔을 때 사람들이 '승가(Sangha)'라는 말을 스님이 아닌, 일반 불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시아 출신의 승려나 아시아로 가서 승려가 된 일부 미국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 불교지도자들은 출가하지 않고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동성애자도 섞여 있기 때문에 '승가'를 구성할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 -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112쪽

스님은 학자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쪼개가며 견문하고 사람들과 접촉도 넓혀갑니다. 봉사활동에도 동참하고, 학술대회나 강연 등에 참가하며 적극적으로 봐야할 것을 찾는 것으로 한국불교와 미국불교, 일본 불교와 아시아 불교를 비교하고 분석합니다.

미국불교를 선점하고 있는 일본불교를 통해 한국불교가 나가거나 개선해야 할 바도 선문답처럼 툭툭 던지고 있습니다. 연수 기간 중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과 국민성을 꼬집어내고, 사소한 교통사고를 경험하며 미국인들의 대륙적 기질을 체험합니다.

스님은 석사과정 논문심사위원으로 활동할 만큼 학자로서 일가견을 보이기도 하고, 방학이 되면 뉴욕이나 보스턴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내로라하는 명작들도 관람합니다. 한국스님의 눈으로 미국불교를 보고, 출가수행자의 눈으로 미국불교의 미래도 예측해봅니다. 그리고 기숙사 옆방에 사는 동성애자들을 통해 동성애자들의 삶도 살짝 들여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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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에는 출가수행자 집단인 승가도 있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무주상보시도 있습니다. ⓒ 임윤수


스님의 은사 스님께서는 "남자는 호랑이니까 어딜 가더라도 조심하라"고 하셨지만 정작 스님이 연수를 하고 있는 곳에는 '여자 호랑이도 있다'는 표현으로 동성애자의 실태를 들려줍니다. 불자 중에 동성애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청교도적인 미국의 종교관에서 기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속세에서는 흔히들 '남자'를 '늑대'로 표현하는데 스님들 세계에서는 '호랑이'로 표현하는가 봅니다.

미국에서 불교에 친화적인 사람들 중에 동성애자가 많다. 미국의 주류 종교인 기독교가 동성연애를 사악한 일로 규정하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오갈 데 없는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들이 불교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252쪽

한국 부처님은 몇 살이나 될까?

좌충우돌하며 시작한 스님의 연수는 2009년 6월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으로 마감됩니다. 낯설고 물선 미국에서 한 비구니 스님이 천수의 촉감으로 느끼고, 천안의 눈높이로 살피며 기록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읽는 느낌은 꿈틀거리고 전달되는 내용은 시사적입니다.

저자인 명법 스님이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하고 툭하고 던진 질문이야말로 '한국 부처님은 몇 살이나 될까?'를 진지하게 되새기에 하는 시대적 화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지은이 명법 스님┃펴낸곳 아름다운 인연┃2013.6.1┃값 1만 8000원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 명법 스님이 미국 유학 생활에서 발견한 미국불교 이야기

명법 지음,
아름다운인연, 2013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명법 스님 #아름다운 인연 #승가 #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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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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