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서 만난 관우와 적토마... 무슨 상황?

[베트남의 문화유산 찾기 ④] 호이안 1

등록 2013.08.21 10:41수정 2013.08.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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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 주스 만들기 ⓒ 이상기


베트남 중부 여행 거점은 다낭이다. 다낭에서 미선유적지까지는 60㎞로 1시간 반이 걸린다. 그것은 베트남 차량의 속도가 40㎞이기 때문이다. 미선유적지에서 우리의 다음 여행지인 호이안까지는 45㎞다. 그러므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땀도 식힐 겸 갈증도 풀 겸해서 중간에 잠시 쉬어 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탕수수 주스를 한 잔씩 먹는다. 사탕수수 줄기를 기계에 넣어 즙을 뽑아낸 것으로 당도가 높지는 않지만, 갈증을 풀고 원기를 회복하는 데는 그만이다. 그 시골에서도 나는 삼성 전자제품을 파는 가게를 볼 수 있었다. 우리 제품을 써 주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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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실은 영구차 ⓒ 이상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호이안으로 향한다. 그런데 버스 앞으로 장례행렬이 나타난다. 장례행렬은 크게 세 무리로 이루어져 있다. 맨 앞에 만장을 든 오토바이 부대와 트럭이 간다, 그 뒤로 장사를 치르는 데 필요한 도구를 실은 트럭이 간다. 맨 뒤에 망자의 관을 실은 영구차가 간다. 영구차의 지붕은 상여처럼 지붕을 해 얹었고, 관은 외부에서도 다 들여다보인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결혼 후 웨딩 촬영하는 젊은이들은 자주 봤지만, 죽은 자를 운송하는 장례행렬은 처음이다.

해양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 호이안

우리가 탄 버스는 투본강을 지나 호이안으로 접어든다.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항구도시다. 1세기부터 벌써 람압포(Lam Ap Pho)란 이름으로 알려졌고, 7~10세기 향료무역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때 중국에서 인도로 가던 모든 배는 이곳에 기항해 물자를 보충받고 말라카 해협으로 떠났다고 한다. 해양 실크로드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는 신라승 혜초(慧超)도 이곳 호이안에 들렀을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679년부터 베트남은 안남(安南)이란 이름으로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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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교로도 불리는 내원교 ⓒ 이상기


호이안에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 것은 16~17세기다. 중국, 일본, 인도 사람은 물론이고, 서양 사람들의 식민지 정책으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상인까지 이곳에서 교역했다. 이때는 비단과 향료 외에 도자기가 중요 교역품으로 추가되었다. 그러나 호이안은 18세기 말 응유엔 왕조 때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802년 지아롱(Gia Long) 황제가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세우며 가까운 다낭항을 프랑스에 할양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베트남 중부의 무역 주도권이 호이안에서 서서히 다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후 200년간 호이안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히려 베트남의 중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관광과 문화도시가 될 수 있었다. 현재 호이안은 인구 12만의 작은 항구도시로, 어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1999년 호이안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유럽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 베트남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다.


투본강 상류 쪽에 있는 도자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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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마을에서 본 고양이 공예품 ⓒ 이상기


우리는 호이안에 도착하자마자 투본강변에 있는 선착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상류 쪽에 있는 도자기 마을로 간다. 이게 소위 말하는 투본강 크루즈다. 그러나 말이 크루즈지 통통배 수준이다. 강 주변으로 마을이 이어진다. 강변에서 우리는 야자수와 풀을 뜯는 소들을 볼 수 있다. 한 20분쯤 가니 깜하(Cam Ha) 마을이 나온다. 깜하와 건너편의 탄하(Thanh Ha) 마을이 도자기 마을로 유명하다. 마을에 들어서자 좁은 골목이 이어지고, 그것을 지나니 도자기 가게가 나온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 물레로 성형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도자기의 크기가 작다. 비교적 작은 기념품을 만드는 수준이다. 도자기에서 예술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고, 상업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도자기를 살펴보니 공력이 부족하다. 나는 물레를 가지고 작은 물건을 하나 만들어 본다. 국내에서 한두 번 만져본 적이 있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물건에 사인까지 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마을을 한 바퀴 돈다. 도자기 마을답게 집집마다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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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장인의 정형 작업 ⓒ 이상기


한 곳에서는 장인 풍모를 지닌 젊은이가 벽에 조각을 새겨 넣고 있다. 형태를 만드는 작업으로 예술성이 느껴진다. 또 다른 집에 가니 기념품을 대대적으로 만들고 있다. 12지 동물이 보이고, 매미, 개구리 같은 친근한 곤충과 동물도 보인다. 다른 곳에는 귀여운 돼지를 대대적으로 만들고 있다. 원숭이와 고양이도 보인다. 이들 작품은 도자가라기보다는 공작 개념이 강하다. 형태를 만들고 코와 귀를 만들어 붙였기 때문이다.

도자기하면 물레를 돌려 성형과 정형을 하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 넣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이 보이질 않는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활도자기와 예술도자기를 만들었을 테지만, 이제는 그런 장인정신은 사라지고 상업성만 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두 군데서는 항아리와 접시 등 생활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어떤 집에서는 도자기를 가마에 넣어 굽고 있다. 우리는 마을을 돌며 도자기를 생산하는 전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마을을 나오면서 보니 신당이 있다. 신당 앞에는 보경사비(寶慶寺碑)라는 비석도 보인다. 이곳이 원래 절터였던 모양이다. 

박당 거리 선착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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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전통예술 공연의 집' ⓒ 이상기


신당을 떠난 우리는 다시 배를 타고 호이안으로 돌아간다. 투본강을 따라 내려가다 호이안에 근접해 호아이(Hoai)강으로 들어선다. 그리고는 박당(Bach Dang) 거리 앞의 선착장에 내린다. 선착장 주변으로 사람과 자전거 그리고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 가장 먼저 전통예술 공연의 집이 눈에 들어온다. 3층짜리 건물인데, 문을 닫아놓았다. 우리는 먼저 올드 마켓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중간에 호이안 민속박물관이 보인다. 2층의 목조주택이다.

시장에 접어드니 사람들이 더 많다. 이곳에는 올드 마켓과 뉴 마켓이 있는데, 우리는 올드 마켓을 살펴본다. 과일과 채소, 꽃, 먹거리, 생활용품이 가득가득 쌓여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과일을 산다. 두 사람당 5㎏을 배당하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다 먹는 조건이다. 그런데 바로 이 과일이 베트남을 여행하는 내내 피로를 풀어주고 갈증을 풀어주는데 기여했다. 더운 지방에 가면 과일을 많이 먹을 일이다. 나는 잠시 시장 안으로 들어가 본다. 안에는 식당들이 영업하고 있다.

입장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트란 푸 거리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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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회관 금산사 ⓒ 이상기


시장을 나온 우리는 자연스럽게 트란 푸 거리로 들어선다. 응유엔 타이 거리와 함께 호이안 구시가의 중심거리로, 볼거리들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은성회관, 복건회관, 금산사, 중화회관, 광조회관, 내원교 등이 다 이 거리에 있다. 나는 먼저 복건회관으로 들어간다. 회관 정문 안으로 또 다른 문이 있는데 금산사다. 문을 들어가니 오른쪽으로 철로 된 당간지주가 서 있다. 문의 뒷면에는 천후궁(天后宮)이라고 썼다. 그렇다면 이곳도 천상모후(天上母后)인 마조신을 모실 가능성이 높다.

문 위에는 한자로 혜아동인(惠我同人)이라고 썼다. 나와 마찬가지로 남에게도 베풀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복건회관 본 건물로 들어간다. 수복강녕(壽福康寧)과 관련된 문구가 많은 것으로 보아 마조신이 틀림없다. 그런데 왕관을 쓴 마조의 얼굴이 자애롭고 온화하다. 그런 마음으로 바다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때문인 모양이다. 나는 이곳을 나와 잠시 중화회관을 살펴본다. 이곳에 와서 좀 더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인데, 베트남 중부 이북의 문화는 인도차이나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중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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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대제와 적토마 ⓒ 이상기


길 중간 중간에 옷을 파는 가게와 갤러리도 여럿 보인다. 이 길을 천천히 거닐다 나는 칼 마르크스 비슷한 형상을 한 동상을 하나 발견한다. 그런데 가까이 가 보니 다른 사람이다. 동상 아래 카지미에르츠 크비아트콥스키(Kazimierz Kwiatkowsky: 1944-1997)라고 쓰여 있다. 폴란드 건축가로 베트남의 문화유산을 사랑해 미선유적, 호이안, 후에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다낭의 참조각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광조회관(廣肇會館)도 우리가 둘러본 중요한 건물이다. 광동성 사람들이 지은 집회장소 겸 사당으로 관성대제와 천후성모를 모시고 있다. 관성대제는 삼국시대 장군 관우를 말하고, 천후성모는 바다의 신 마조를 말한다. 사당 한 가운데 관우상이 있고, 좌우에 흰말과 붉은 말이 있다. 붉은 말이 그 유명한 적토마다. 관우는 안타깝게 죽었지만, 아시아 전역의 사당에서 숭배되는 신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묘 등 곳곳에서 관우 숭배신앙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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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이강 광장에서 바라 본 구시가 ⓒ 이상기


우리는 이제 내원교(來遠橋)로 발길을 돌린다. 일본 사람들이 1539년 건설했기 때문에 일본교라고도 불린다. 길에서 보면 다리라기보다 건물로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불상과 불단이 모셔져 있다. 그렇다면 사원의 기능도 하는 것이다. 이 다리건너에 일본 사람들의 거주지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1500년대 이미 한국, 중국, 베트남 등과 교역하는 해양국가였던 것이다. 내원교를 지나면 길은 응티민카이 거리로 이어진다. 이 길 끝에 호아이강 광장이 있고, 그곳에서 구시가지가 끝난다.

나는 응티민카이 길을 걸으며 시간이 멈춘 도시 호이안을 구경한다. 이곳에 각양각색의 복장과 얼굴을 한 관광객들만 없다면, 정말 17~18세기 호이안을 보는 듯하다. 천천히 그리고 더 천천히 나는 호아이강 광장으로 간다. 그곳에는 구시가지 입장권 매표소가 있고, 용으로 장식한 아치가 있다. 두 마리 용이 마주보는 아치 한 가운데 꼭대기에는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임을 알리는 엠블렘이 있다.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호이안에 와 있는 것이다.
#호이안 #투본강 #도자기 마을 #박당 거리 #트란 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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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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