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방문했을 당시 박도 기자
박도
- 소설도 소설이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사진 자료들이 무척 귀해 보입니다. 어떻게 해서 모으시게 됐는지요."2004년 1월 31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갔을 때, 영어가 서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진을 검색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물아물한 제 기억을 되살려 한국전쟁 사진을 집중으로 검색하여 <오마이뉴스>에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으로 30회 연재한 바 있습니다. 그 뒤 2005년, 2007년 두 차례나 더 그곳에 가서 NARA에 소장 중인 수십만 장의 사진을 일일이 검색하여 1900여 컷 스캔해 왔습니다. 이번에 새로 공개하는 사진이 많을 겁니다."
-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하던데, 혹 후회하신 적은 없으신가요?"아닙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는 약 300컷 이상의 한국전쟁 관련 사진이 들어갈 것입니다. 아마도 소설에 이렇게 많은 사진이 컷으로 들어간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로, 이 연재가 끝나면 기네스북에 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오마이뉴스>가 아니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요."
- 오래전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처단한 권중희 선생을 알리는 등 취재 기사를 많이 쓰셨고 틈틈이 사는 이야기도 쓰셨습니다. 또 지금은 소설을 쓰고 계신데, 어떤 분야의 글쓰기가 가장 매력적인가요? 또 가장 어려운 분야의 글쓰기는요?"저에게는 모두가 다 매력적이고, 어느 분야도 쉬운 글은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작은 글 하나에도 프로야구 마무리 투수처럼 전력투구합니다. 글 쓰는 일은 제 인생의 구도(求道)요, 구원입니다."
- 오랫동안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해오셨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어떤 의미인가요?"<오마이뉴스>는 내 마지막 꿈을 이룬 '광장'입니다. 저는 소년시절 세 가지 꿈을 가졌습니다. 교사, 작가, 기자였습니다. 두 가지 꿈은 이루었으나 기자의 꿈은 이루지 못하다가 정말 뜻밖에도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 꼭지의 글로 늘그막에 시민기자가 되었습니다. 고기가 물, 그것도 큰 바다를 만난 겁니다. 시민기자 생활 중 한때는 창작에만 매달린다고 탈퇴했지만, 6개월도 못 참고 슬그머니 돌아왔지요(죄송).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고 독자들이 사랑을 주시는 한, 계속 송고하겠습니다."
- 십년 넘게 시민기자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롱런의 비결을 알려주신다면요."외람된 말이지만 독자와 편집자 그리고 시민기자 3자 간의 신뢰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음에는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소설로 만나실 건가요, 기사로 만나실 건가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진정한 술꾼은 청탁(淸濁)이 가리지 않습니다. 글꾼도 마찬가집니다. 내 영감에 따라 그때그때 붓이 움직이는 대로 써서 따끈하게 송고하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미리 말했다가 실천하지 못할까 좀 그렇습니다. 우선 연말까지 <어떤 약속> 연재를 끝낸 뒤, 한 출판사와 기획 중인 사진으로 보는 <미군정 3년> 원고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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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약속> 매일 연재하라는 요청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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