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야, 이야기 좀 하자!" 외쳤더니...

[인터뷰] 박석용 진주의료원지부장, 경남도청 정문 앞 노숙농성 석 달째

등록 2013.11.15 21:14수정 2013.11.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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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14일 밤. 경남도청 정문 앞에 비닐로 비를 가리며 밤샘 노숙농성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박석용(46)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이다. 노숙농성 65일째, 진주의료원 재개원 투쟁 261일째다.

경남도청을 비롯한 주변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은 희미했고, 질주하는 차량들이 내뿜는 소음이 심하게 들려 대화를 나누지 못할 정도였다. 이날 비가 내리자 박 지부장은 "그래도 오늘은 비가 와서 차량 소음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안외택 보건의료노조 울산경남본부장을 비롯한 조합원들과 함께 노숙농성하고 있다. 박 지부장은 홍준표 지사를 비롯한 공무원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선전전을 벌이기도 하고, 홍 지사를 상대로 '그림자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을 폐업․해산하고 매각 절차를 밟고 있으며,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을 해고했다. 하지만 박 지부장은 "진주의료원은 재개원 할 것이다"라고, "21년 다닌 직장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a  박석용(46)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은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14일 밤 비가 내리는 속에 비닐을 씌워놓고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염원하며 65일째 노숙농성하고 있었다.

박석용(46)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은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14일 밤 비가 내리는 속에 비닐을 씌워놓고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염원하며 65일째 노숙농성하고 있었다. ⓒ 윤성효


언제까지 이곳에서 노숙농성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진주의료원이 재개원될 때까지"라고 대답했다. 그는 적어도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2014년 6월 3일까지는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낯에는 파라솔 밤에는 비닐에 의존

박 지부장은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낮에는 '햇빛가리개용' 파라솔에 의존해 노숙농성하고, 밤에는 비닐을 씌워 지낸다. 천막을 설치하지 못했다. 그는 진주의료원에서 버스기사로 일했는데, 핸들을 놓은 지 9개월째다. 다음은 박석용 지부장과 14일 밤 농성장에서 나눈 대화다.


-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숙농성하면서 홍준표 지사와 마주친 적은 있는지.
"직접 마주친 적은 없다. 하루는 출근 시간에 맞춰 서문 쪽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었는데, 홍 지사가 탄 차량이 지나가더라. 그래서 '홍준표야, 이야기 좀 하자'고 소리를 질렀다. 아무 반응이 없이 차량은 그냥 지나갔다."

- 홍준표 지사의 차량을 막았던 적이 있다고 하던데.
"조합원들이 함께 와서 선전전을 하던 날이었다. 홍 지사가 탄 차량을 가로막았던 적이 있다. 차량이 서려고 하길래 이야기 좀 하자면서 다가가 차 문을 열려고 했는데, 그냥 가버리더라."


- 경남도청 현관 앞에는 가지 않았는지.
"며칠 전에 공무원들 출근 시간에 맞춰 경남도청 현관 앞으로 갔던 적이 있다. 홍 지사가 탄 차량이 오길래 '홍준표야'라고 부르면서 '의료원 어찌할 것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홍준표 지사님'이라 하지도 않고 바로 '홍준표야'라고 해버렸다. 그랬더니 홍 지사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바로 가버리더라."

- 경남도청의 반응은.
"홍 지사의 출근 시간에 맞춰 계속 나타나서 그런지, 그 뒤에 경남도청 청원경비들이 찾아 와서 정문 앞 쪽에서 노숙농성을 하더라도 현관 쪽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더라. 특히 출근 시간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 홍 지사에 대한 '그림자 시위'는 계속하고 있는지.
"오늘(14일) 낮에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경남특산물박람회'가 열렸는데, 홍 지사가 참석한다는 정보를 알고 갔다. 안외택 보건의료노조 울산경남본부장과 함께 가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홍 지사는 VIP룸으로 바로 들어가버리더라. 저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의 홍 지사에 대한 그림자시위를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그림자 시위'를 한다고 하니까 경남도는 홍 지사의 일정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 만약에 홍준표 지사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묻고 싶다. 진주의료원 폐업 과정에서 노조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왜 일방적으로 했는지 묻고 싶다. 홍 지사가 국회의원과 한나라당 대표 등 정치를 하면서 이렇게 해왔느냐고 묻고 싶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독불장군식으로 해 왔는지 말이다. 경남도정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닌데, 왜 그랬는지 따지고 싶다."

- 노숙농성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대개 아침 7시 30분경부터 공무원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선전전을 벌인다. 선전전은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공무원 출근 시간이 지나고 나면 도로를 지나는 차량을 상대로 선전전을 벌인다. 낮에는 회의나 집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또 저녁에도 선전전을 벌인다. 농성장을 지키려고 하지만, 부득이 하게 자리를 지킬 수 없을 때는 다른 조합원이 와 있기도 한다."

a  박석용(46)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은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14일 밤 비가 내리는 속에 비닐을 씌워놓고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염원하며 65일째 노숙농성하고 있었다.

박석용(46)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은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14일 밤 비가 내리는 속에 비닐을 씌워놓고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염원하며 65일째 노숙농성하고 있었다. ⓒ 윤성효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면역이 되었는지..."

- 경남도청 공무원들의 반응은.
"공무원들과 마주치고,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경남도청 총무과 직원은 노숙농성을 하니까 '마음은 알겠는데, 진주의료원은 다 끝난 거 아니냐'며 '다른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라. 윤성혜 경남도 복지보건국장이 보자고 해서 사무실에 가서 만났던 적이 있다. 윤 국장은 진주의료원 재개원 이야기 말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하더라."

- 밤에 차량이 지나는 소리가 크게 들려 잠을 제대로 못 잘 것 같은데.
"차량이 지나는 소음이 심각하다. 어떨 때는 오토바이가 지나가면서 심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특히 새벽 시간인데도 경적소리를 크게 내기도 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예민한 사람은 잠을 못 잔다. 저는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면역이 되었는지, 아니면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지금은 견딜 만하다."

-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허리가 아프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 특히 오른쪽 허리가 부자연스럽고 아프다. 평소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근경색 증상이 있다. 의사가 당장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이 그렇게 할 수 없다. 건강하지 않지만, 진주의료원 재개원 투쟁이 더 시급하다."

- 가족들도 힘들어 할 것 같은데.
"집사람과 고2 아들, 중1 딸이 진주에 살고 있다. 집에 남편과 아빠가 없으니까 모든 게 불편한 모양이다. 엊그제 낮에 아주 잠깐 집에 들렀는데, 세면대가 고장이더라. 금방 고칠 수 있는데, 여자와 아이들만 있다보니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집사람도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다. 생계는 실업급여를 타서 버티고 있고, 집사람이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다고 한다."

- 진주의료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안타깝다. 시민들은 공공병원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진주의료원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사람들은 폐원에 안타까워 하고, 재개원되기를 바라고 있다."

- 진주의료원이 재개원한다고 보는지.
"재개원 해야 된다. 홍준표 지사가 있을 때는 힘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홍 지사가 고집을 부리고 있어서 그렇다. 지사가 바뀌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여러 가지 힘든데, 언젠가는 재개원 될 것이라 본다."

- 경남도에서 진주의료원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데.
"쉽게 매각할 수 없을 것이다. 홍준표 지사가 공공의료를 위한다면 진주의료원을 절대 매각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도 진주의료원 매각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진주를 비롯한 서부경남지역은 아직까지 공공병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매각은 공공의료를 모르고 하는 사람들이다."

- 해고자들은 지금 함께하고 있는지.
"70여 명이 해고됐는데, 함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서너 명이 다른 데 취업을 했지만, 조합원 신분은 유지하고 있다. 70여 명 모두 재개원한다면 재고용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합원들은 진주의료원 호스피스병동에 있는 노조 지부 상황실을 지키고, 거리 선전전을 벌이며, 집회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경남도의회에는 야권 교섭단체인 민주개혁연대에서 '진주의료원 재개원 조례안'을 제출해 놓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이 찬성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새누리당 도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고 있다. 우리의 어려운 처지를 이야기하고,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도의원들이 다시 한번 더 깊이 생각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a  박석용(46)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은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14일 밤 비가 내리는 속에 비닐을 씌워놓고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염원하며 65일째 노숙농성하고 있었다.

박석용(46)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은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14일 밤 비가 내리는 속에 비닐을 씌워놓고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염원하며 65일째 노숙농성하고 있었다. ⓒ 윤성효


"지금도 직장을 잃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 진주의료원에는 가보았는지.
"지난 13일 잠시 다녀왔다. 경남도에서 바깥 둘레에 펜스를 설치해 놓았고, 잡초도 깎아 놓았더라. 매각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광경을 보고 착잡한 느낌을 받았다. 21년간 다닌, 정든 직장이었다. 이전에는 의료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지금도 직장을 잃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 경남도에서 보건의료노조 지부 상황실의 퇴거를 요청했는데.
"몇 차례 공문도 보내서 퇴거하라고 요구해 왔다.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처음에는 노조 상황실이 진주의료원 본관 건물에 있었는데, 경남도청 공무원들의 업무를 위해 본관 건물 뒤편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리조차 나가지 않으면 단전․단수조치를 하겠다고 했는데, 말이 안 된다. '진주의료원 폐업처분 무효확인소송' 등이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고,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기에 경남도가 일방적으로 노조 상황실을 빼라고 할 수 없다."

- 언제까지 이곳에서 노숙농성할 것인지.
"진주의료원이 재개원할 때까지다. 지금은 2014년 6월 3일 지방선거까지는 계속할 생각이다."

홍준표 지사는 지난 2월 26일 진주의료원 폐업방침을 발표했고, 경남도의회는 6월 11일 '진주의료원 폐업 조례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경남도는 5월 29일 진주의료원 폐업신고, 7월 1일 해산조례 공포, 7월 2일 해산 등기, 9월 25일 청산종결 등기를 했다.

국회는 9월 30일 본회의를 열어 '한 달 안에 진주의료원 재개원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는 내용을 담은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를 채택했지만, 경남도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경남도와 홍준표 지사는 "진주의료원은 과거"라 하지만, 박석용 지부장을 비롯한 해고자들은 "진주의료원 재개원은 현재진행형"이라며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진주의료원 #경남도청 #노숙농성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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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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