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만 되면 사라지는 남편, 이걸 확!

[연말스트레스①-잦은 술자리편] 2차, 3차... 송년회 간 남편보다 내가 더 힘들다

등록 2013.12.28 21:27수정 2014.01.1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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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셋째 주 7일 중 남편은 단 이틀만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래놓고 일요일(22일) 아침엔 1박2일로 송년 워크샵을 가버렸다. 이런저런 송년회도 모자라 1박2일 송년 워크샵이라니! 그것도 일요일에!!


연일 귀가가 늦는 남편에게 속이 상해 일요일 아침 집을 나서는 걸음엔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이제 요일 개념이 조금씩 잡혀가는 다섯 살 첫째는 일요일인데 아빠가 회사에 가자 무척 서운해 했다. 아이들은 남편이 집을 나선 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아빠 언제 오냐" 묻고 또 묻는다. "일요일인데 어디 놀러갈 거냐"고도 묻는다.

올해 7월 이직한 남편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는 고스란히 우리 가족의 변화로 이어졌다. 새벽 6시 10분에 나가 일찍 집에 와야 저녁 7시 반, 일주일에 반 이상을 밤 10시를 훌쩍 넘겨 집에 오던 직장에서 아침 9시 출근, 6시 칼퇴근이라는 조건의 직장으로 옮겼다. 비록 연봉이 거의 60% 깎인 이직이었지만 '사회적경제'를 배우고, 활동가로 일하고 싶은 남편의 뜻을 존중했다. 연봉은 줄었지만 대신 남편과 아빠가 부재하던 우리집의 아침과 저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돈' 대신 '시간'과 '가치'를 선택한 우리 모두의 이직이자 변화였다.

이직 후 우리는 남편 회사 근처로 이사를 했고 덕분에 남편은 아침 8시 반까지 자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여유를 만끽하리라 했던 아침이었지만 여전한 야근으로 남편은 아이들보다 더 늦게 기상하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빠의 출근길 배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아침은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영리기업에서 비영리조직으로 직장이 바뀌어도 '저녁이 있는 삶'은 많아야 주 3회였다.

지역일을 하는 활동가에게 정시출근은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칼퇴근은 없었다.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교육하고 네크워크를 구성하는 중간 조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일반사람들 퇴근 후가 지역 활동가들의 주 활동 시간이 되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12월은 한 달 내내 송년회


a  폭탄주

폭탄주 ⓒ 권우성


처음 몇 달은 이런 남편에게 투정도 부리고 잔소리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그러려니 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11월 말부터 이런저런 행사로 바쁘더니 12월이 되자 하반기에 진행한 여러 프로그램이 마무리 되면서 각종 송년회 일정이 잡히기 시작했다. 진행했던 프로그램마다 참여하는 지역사람들이 다르니 프로그램마다 마무리 겸 송년회를 하고, 지역의 여러 단체 송년회에도 가야 하는 듯했다.

"오늘도 늦냐"는 나의 볼멘소리엔 "어쩔 수가 없잖아, 일인데..."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 줄줄이 사탕처럼 잡힌 모든 송년회가 일과 관련된 모임이니 뭐라 할 말도 없긴 하다. 남편인들 제 아무리 좋아하는 술자리라 해도 거의 매일 늦은 시작까지 앉아있고 싶진 않을 것이다. "늦게 들어오고 싶어 늦게 들어오는 남편은 아무도 없다"는 남편의 속 보이는 변명을 아직은 믿어주는 척 하는 나이지만, 연말이면 각종 송년회 때문에 하숙생처럼 지내는 남편이, 남편을 그렇게 불러내는 사회가 야속하기만 하다.


연일 계속되는 송년회로 눈치가 보이는지 남편은 오늘도 늦는다는 전화의 말미에 재미없는 자리라며 밥만 먹고 오겠다는 빈말을 하고, 난 아닌 걸 알면서도 시계바늘이 되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되나, 더구나 송년회인데.

결국 난 또 해 떨어지면 더 보채는 돌도 안 된 10kg 넘는 막내를 업고 저녁을 짓고 혼자 세 아이 밥 먹이느라 내 밥은 코로 먹고(그나마 못 먹는 날도 많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세 아이에게 소리소리 질러가며 아이들을 씻기고 잠옷 입혀 겨우겨우 재운다. 남편과 둘이서도 바쁘고 정신없는 저녁 일과를 혼자 해내느라 혼이 쏙 빠질 지경인데 아이들은 불 꺼진 방에 누워서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하루 종일 기다린 아빠를 찾는다.

"엄마, 아빠 언제와? 아빠 보고퍼."

특히 아빠를 따르는, 말문이 트인 지 얼마 안 된 둘째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아빠가 출근하자마자 아빠 언제 오냐 묻고 보고싶다 찾아댄다. 날씨가 추워져 놀이터 나들이도 거의 못하는 통에 아이들은 넘치는 기운을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쓰고, 종일 나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엄마에 비해 잔소리도 덜 하고 잘 놀아주는 아빠를 찾아 댄다.

언제 집에 오냐는 나와 아이들의 물음이 남편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알지만 나도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받긴 매 한가지다. 만 5년째 만성수면부족에 하루 종일 세 아이를 집에서 혼자 돌봐야 하는 나와 재미난 건 다 아빠 오면 하자며 뒤로 미루기만 하는 피곤한 엄마와 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남편의 잦은 송년회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폭탄주와 탬버린, 이런 송년회 꼭 해야할까?

일요일에도 1박2일로 송년 워크샵을 가는 지경에까지 이르니 송년회를 꼭 해야 하나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나도 결혼 전엔 이런저런 송년회로 연말이면 참 바빴는데, 송년회 핑계로 오래 못 본 얼굴들도 보며 즐거웠는데 결혼 후 5년 동안 출산 육아만 반복하고 지내다보니 거의 송년회는 참석하지 못하고 지내고 있어 송년회가 뭐였는지 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송년회는 누구에게나, 어떤 조직에게나 필요한 자리이다. 한해를 마무리 하고 새로 맞을 한해를 준비하는 '송구영신' 뜻 그대로인 송년회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과연 밤늦게 2차 3차까지 이어지는 송년회에서 송년회 본연의 뜻한 바는 취하지 않고 얼마나 깨어있을까?

송년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다하지 못한 숙제들, 털고 가야할 과오들, 새롭게 품는 희망들을 정리하다보면 분위기에 취해 주객이 전도 되어 술을 위한 자리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편은 이직한 직장에선 덜하지만 각종 이해관계와 갑을관계로 엮인 예전 영리기업의 송년회 자리는 거의 술을 위한 자리가 되어 심신이 스트레스로 가득 찬 12월을 보내야만 했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남편의 표현을 빌리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세계는 어쩔 수 없다"며 요즘도 술로 시작해 술로 마무리 되는 피곤한 송년회 릴레이 중이다. 그래도 본인도 눈치가 보이는지 피곤한 걸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11월 중순부터 달아 달라 부탁한 커텐 봉이 송년회에 밀려 며칠 전에야 겨우 달렸으니 말 다 했다.

분명 송년회는 술 마시자고 모인 자리는 아닐 텐데, 어쩌다 우리문화의 송년회는 술이 되어버렸을까. 요즘은 단체 영화나 공연관람 혹은 자원봉사로 송년회를 대신하는 곳도 많이 늘고 있다 하던데 남편은 어제도 폭탄주를 세 사발이나 마셨다며 아이들이 잠들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촛불을 켜고 우리들만의 송년회

a 우리들의 송년회 조촐하지만 진심을 담아 다함께

우리들의 송년회 조촐하지만 진심을 담아 다함께 ⓒ 정가람


그래도 며칠 남지 않은 한해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 여러 사정으로 정신없는 날들이지만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케이크 한판 구워 우리집 송년회 자리를 마련해 "언제나 일찍 집에 들어오고 싶다"는 남편을 초대해야겠다.

돌아보는 2013년, 새 식구를 맞이했고, 정든 식구를 먼 길로 떠나보냈고, 이직과 이사를 통해 환경을 바꾸며 많은 것을 새로 시작하느라 마음이 참 바빴다. 여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세상마저 '하 수상하'기 짝이 없어 더 마음이 바빴다. 그래도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공으로 흐른 시간은, 거꾸로 간 시간은 아니었으리라 서로를 위로하는 세밑이다.

바빴기에 더 쉬어가는 자리를 만들어 따뜻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안녕'을 물어본다. 세상이 앞다투어 '불안한 안녕'을 인사하는 때 가장 작은 세상인 우리집만큼은 '송구영신'하며 '안녕'하려고 애를 써야겠다.

가난한 밥상이지만 식구들 모두 둘러앉아 김치찌개에 숟가락 푹푹 꽂아가며 더 없이 배부른 저녁을 보내며 다 함께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며 어제와 오늘을 정리하고 보다 건강한 내일을 준비해야겠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 '작은 안녕'을 만들며 세상의 '안녕'을 만들며 다시 살아내야지.

올 한해 우리 다섯 식구는 그래도 안녕했습니다.
내년은 유치원에 가는 큰아이를 따라 한 뼘 더 자란 '작은 안녕'으로
조금씩 더 큰 세상의 안녕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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