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옥 전 의원.
권우성
야당 대표의 단호하되 짧은 표현에는 호응하는 지지세력이 등장한다. 단호하고 '원칙'을 가지고 발언하는 듯한, 안정감도 느끼게 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동생이 아니라면 아니다" 등이 그에 해당한다. 야당 대표일 때에는 아무도 발언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노무현 때도, 이명박 때도 가끔 등장해서 시원하게 짧은 말,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 등으로 존재감만 부각시키고 사라지면 됐다.
박 대통령의 불행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야당 대표와 동일하다는 데 있다. 야당 대표일 때 호응을 얻었던 방식이 지금은 오히려 비판 지점이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최근의 표현은 "철도 민영화 아니라는데… 파업 명분 없다"이다. 그와 같은 표현은 조정과 화합을 지향해야 하는 대통령의 것이 아니다. 야당 대표였더라면 호응하는 국민들과 언론이 있었을 것이나,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문 의원의 표현대로 '낙제점'이다. 왜 아닌지에 대한 설명도 없기에 지지세력조차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여의도 정치를 할 당시 박근혜 대표의 발언을 언론에 전달했던 전여옥 씨의 과거 예언이 흥미롭다. 전씨는 2012년 1월 출간한 책 <i전여옥-전여옥의 私, 생활을 말하다>에서 박 대통령의 짧게 말하는 표현 방식에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박근혜 의원의 언어는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의 '베이비 토크'와 다름없다"며 "'대전은요?'와 같은 단언으로는 반대 방향에 서 있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여옥씨는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박근혜 의원을 2년간 수행하며 지근 거리에서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박근혜 대통령을 분석했다. 기자생활을 오래 한 그녀가 분석한 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반쪽 짜리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즉, 비판세력과 소통하며 그들을 설득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었고, 2년 후 그것은 '성지'가 됐다. "자랑스러운 불통"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박 대통령은 갈등을 조정할 역량이 없음을 노출하고 있다.
철도민영화, 의료민영화, (국가 지급보장 없는) 국민연금법 개정안, 국가기관 대선개입, 채동욱 혼외자 사건 등은 해결되지 않은 폭발력이 커다란 사안들이다. 야당과 비판세력에서는 역량을 동원해서 논쟁을 키우려 할 것이고 지금과 같이 박 대통령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란 태도를 고수한다면 그 공격은 예상 외로 잘 먹혀들 것이다. 이 정부가 간절히 원하는 안정된 정국은 요원할 것이다. 그것은 야당의 비협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지위에서 갈등 조정을 하지 못하는 집권자의 무능 때문이다.
취임 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대통합과 '100% 대통령'을 내세웠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자랑스러운 불통'을 고집하겠다고 선언하는 기막힌 처지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 자질 없다"고 단언한 전여옥의 예언은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쓰이지 못한 과거 인물의 악담 정도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그 인물이 대통령이 된 지 1년이 지나는 시점, 예언은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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