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이 아닙니다경찰들이 막아선 길목 바로 그 앞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습니다.
류미례
점심을 먹고 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중년 여성분이 경찰들에게 다가섰습니다. 왜 길을 막는지, 그리고 주민이 가는 길을 막는 게 불법은 아닌지 관련 문서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에서는 구두 지시라도 합법이다"라며 그 분의 발길을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얄미운 경찰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경찰은 무서워만 했지 미워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제 삶이 안온했던가 싶습니다. 전날 밤에도 그리고 산을 올라오면서도 할머니들은 책임자급 경찰들과는 입씨름을 벌였지만 젊은 경찰들에 대해서는 안쓰러워했습니다. "느그들이 고생이다" 하시면서요.
하지만 그날 만난 경찰은 미웠습니다. 자기의 땅에서 쫓겨나야하고 자기의 땅에 가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그렇게 굴 것까지야 없지 않을까요? 그 경찰의 얼굴에 비웃음이 서릴 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한테 그럴 대우 받을 분들 아닙니다. 존중하십시오'그렇게 하루는 저물어갔습니다. 중간에 산으로 올라가는 한전 직원들을 발견하고 주민들이 쫓아갔지만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 그 막힌 길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뿐이었습니다. 용변을 보려고 해도 경찰들은 따라왔습니다. 정말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그 곳을 떠나오며 주민 중에 한 분이 말했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산길은 막아섰지만 우리 동네는 못 들어온다. 내 땅, 내 마을에는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거다 "너무 늦은 글을 마무리합니다. 109번 공사현장에서 만났던 주민 분들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을은 TV에 안 나옵니다", "우리 마을에는 기자가 안 옵니다", "잘 찍어서 인터넷 같은 데 많이 알려주십시오". 작년 가을 밀양에 갔을 때에 저는 너무 늦게 가서 송구스러웠습니다. 손바닥만한 카메라를 반기는 그 분들 안에 있으면서 '내가 이렇게 쓸모있는 사람인가' 싶어서 정말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알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너무 늦은 이 글은 그래서 너무나 송구스럽습니다.
가로막힌 산...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밀양에서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109번이 제 이름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억은 무뎌지고 저는 삶에 묻혀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 유아무개 어르신의 별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고정마을 분입니다. 외부세력 출입금지라고 해서 돌아서던 밀양의 첫날, 같이 산을 올랐을지도 모릅니다. 밀양의 셋째 날, 막힌 길 앞에서 밥을 같이 먹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분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니, 보지 않았다고 해도 저는 보았습니다. 그 곳에 계신 모든 분, 한 분 한 분의 상황은 유아무개 어르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슬픔, 억울함, 분노. 주민들과 함께 있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모욕감이었습니다. 처절한 어르신들의 몸부림에 "참말로 왜 이러십니까?"하며 한심한 듯 던지는 경찰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저는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경찰들이 왜 "참말로 왜 이러십니까?"라고 묻는지 압니다. 그 물음은 이런 뜻일 것입니다.
이 많은 경찰 병력을 어르신들이 뚫을 수 있을 것같습니까? 나라가 하는 일을 힘없는 밀양 주민이 막을 수 있을 것같습니까? 패배주의에 대해서라면 모르지 않습니다. 제 인생에서 그런 식의 물음은 늘 반복되어 왔으니까요. 푸른영상 동료감독들이 평택 대추리에서, 경북 영주에서, 그리고 서울 용산에서 찍어온 화면들에는 결국에는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의 모습이 넘치도록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주민들은 결국 자기의 땅을 떠나야했습니다. 죽어서야 떠나야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그 곳에 살면서 작업을 하던 동료들은 마음의 병을 얻어 휴직을 하기도 했습니다. 패배주의는 그렇게 제게 낯설지 않은 감정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10월 밀양엘 갔습니다. 며칠 촬영을 돕겠다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분들의 질문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왜 우리 마을에 송전탑을 세웁니까? 왜 내가 농사짓는 땅을 빼앗습니까? 왜 내 갈 길을 막습니까? 경찰이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행위를 '합법적인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평생을 내가 일궈온 땅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의 근거가 법이라면, 우리 산에 올라가는 것을 막는 행위의 근거가 법이라면, 그 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경찰들은 저를 외부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배제시킵니다. 밀양 주민들에게는 나라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밀양 바깥에 있는 저의 생각과도, 밀양 안쪽에 있는 주민들의 생각과도 다른 국가의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국책사업이라면서 국민인 제게 물어본 적 있습니까? 국책사업이라면서 국민인 밀양주민들에게 물어본 적 있습니까? 그래서 이 글을 썼습니다. 취재기자로서가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글을 썼습니다.
109번 공사현장으로 가는 길목이 막히던 날,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 그 막힌 길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그 분들은 다시 정해진 자리에 앉아계십니다. 흉년이든 풍년이든 늘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해왔듯이 거기 그렇게 계십니다.
저도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서 밀양에 가고 갈 때엔 꼭 몇 사람이라도 같이 가겠습니다. 혼자라도 갑니다. 갔다 오면 또 글과 영상을 올리겠습니다. 운동이나 활동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한 사람의 눈으로, 그러나 주권을 가진 한 사람의 국민의 눈으로 이 시간을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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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제작공동체 푸른영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 여성, 가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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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얄미운' 경찰, 여기서 만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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