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뚱뚱하고 추하게... 사연 들으니 참 슬프네

[서평] 의외의 즐거운 책 읽기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등록 2014.01.24 17:46수정 2014.01.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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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표지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표지 ⓒ 바다출판사

나는 대체적으로 자연생태나 역사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 편이다. 한마디로 잡식성이다. 이런 내게 누군가 조언을 한 적이 있다. "한 분야를 정해 읽음으로써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게 훨씬 좋지 않을까"였다.

내 잡식성 책 읽기에 나름의 의견을 말한 사람은 사실 이 사람뿐만 아니었다. "별것에 다 관심이 있다!"느니, "호기심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돌려 말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아니,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기야 그동안 읽은 책 중에는 보통 사람들이 좀 꺼리는 편인 뱀이나 바퀴벌레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도 있었고, <알기 쉬운 한국 건축 용어 사전>이나 <한국건축 답사수첩>처럼 건축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흥미있어할 책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책들도 좀 많았다. 이렇고 보니 나의 책 읽기를 좀 살펴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알기 쉬운 한국 건축 용어 사전>과 <한국건축 답사수첩>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자주 찾는 고궁과 사찰의 건축물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지금도 고궁이나 사찰에 갔다 오는 날에는, 드라마를 통해 본 건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면 이 두 권을 꺼내 필요한 것들을 읽어볼 정도로 내겐 썩 유용한 책이 됐다.

내가 특정 분야에 고정하지 않고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대상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최대한 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순간 갖게 되는 선입견이나 편견은 상대방, 즉 어떤 대상을 모르는 데서 온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인형에 담겨 있는 역사와 문화

최근 재미있게 읽은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바다출판사 펴냄)은 이런 이유 때문에 선택한 책이고, 의외의 즐거움을 맛본 책이다. 두 번째 이야기인 '베트남 여성의 아오자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며칠 후 30년 만에 만나게 되는 친구에게 주고 싶어 구매할 정도로 읽을 거리가 많은 책이다. 뭐랄까. 뜻밖의 횡재를 한 그런 느낌이랄까.


"자연을 극복하는 지혜가 시간이 흐르면서 '멋'까지 더하게 되는 사례는 그린란드 전통의상인형, 그리고 멕시코의 '솜브레로' 인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은 혹독한 추위로부터 자신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 가죽을 기워 옷으로 만드는 기술을 중요시했다.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었다. 그 기술이 오늘날 겨울이면 입는, 따뜻한 데다 멋까지 더해진 '파카'의 기원이 됐다.

그런가하면 챙 넓은 모자 '솜브레로'는 원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노동을 해야 하는 멕시코인들의 절실한 필요가 낳은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특이한 모자의 챙을 과장되게 넓히고, 화려하고 요란한 장식으로 꾸미면서 멕시코의 유쾌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저자의 말' 중에서)


사실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단순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우리의 전통한복을 입은 인형처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형에 대한 책이려니, 세계 여행을 하며 기념품으로 사올 수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인형들을 책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좋겠다' 정도였다.

물론 이 책을 통해 내 단순한 관심처럼 인형 속에 또 다른 크기의 인형들이 계속 나오는 마트료시카, 최근 드라마에 종종 나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걱정인형, 유럽 여러 국가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는 마리오네트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인형들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그 인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인형이 입고 있는 의상은 무엇이며, 어떤 내력이 숨어있는지 등 인형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풍성하게 들려준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인형에 얽힌 이야기만 들려주진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의 주인공은 세계 각지의 인형들이 아니다. 인형은 그저 길잡이일 뿐이다. 그 인형에 집약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풍습 등이 중심에 자리한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로 여행을 하게 하는 길잡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마도 인형을 좋아하거나 만들거나 수집하는, 혹은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나 유용할지도 모를 책이 아니다. 독자의 훨씬 폭이 넓어진다.

일부러 추해보이려는 옷... 왜?

a  수리남의 코토미시와 앙히사 인형(왼쪽)과 돈키호테 인형(오른쪽)

수리남의 코토미시와 앙히사 인형(왼쪽)과 돈키호테 인형(오른쪽) ⓒ 유만찬·김진경


"코토미시는 수리남의 수도인 파라마리보에서 주로 입던 옷이었다. 수리남의 여성 노예들은 17세기부터 노예제가 폐지된 19세기까지 200년 가까이 코토미시를 입어야 했다. 코토미시는 '뚱뚱하고 추하게'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다.

치마를 입기 전 속옷 차림에 좁고 긴 원통형 쿠션으로 몸을 감싸고 두른다. 그라고 여러 겹의 속치마를 겹쳐 입는다. 겉옷까지 여러 겹으로 입기도 한다. 상의는 블라우스, 그리고 소매가 없는 망토식의 겉옷인 케이프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몸이 마른 여성이라고 해도 입고나면 뚱뚱해 보이는 게 코토미시의 특징이다."(<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중에서)

동서고금을 통틀어 여자는 최대한 몸매나 옷의 맵시를 살려 아름답게 보이고자, 남자는 남성적인 매력을 최대한 과시할 수 있는 옷을 추구해왔다. 아마도 거의 모든 인류가 그랬을 것이다. 아니 이는 지금도 옷을 선택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런데 입는 사람의 몸매를 최대한 가리고 가려 최대한 뚱뚱하고 못생기고, 나아가 추하게 보이도록 옷을 만들다니. 이 이해하기 힘든 옷에는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수리남의 전통 옷 코토미시는 처음부터 이처럼 뚱뚱하게 그리고 추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지진 않았다. 원래는 누구나 그렇듯 맵시를 살려 만들어 입던 옷이었다. 이런 옷이 그와는 정반대의 옷이 된 것은 서부 아프리카나 가나·나이지리아 등지의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가면서부터다.

수리남은 한때 네덜란드 식민지였다. 당시에는 플랜테이션 농업이 성행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82년부터 수리남에 커피와 사탕수수 플렌테이션 농장을 만들기 시작, 아프리카 노예들을 데려와 노동력을 착취했다. 노예들은 상체를 드러내고 하체에 숄만 걸친 모양새로 일했다. 여성 노예들도 마찬가지였다.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남성들에 비해 여성 노예들은 성적 노리개로 쓰이다가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다른 여성에 비해 돋보이는 미모나 매력은 치욕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던 것. 이에 여성들은 스스로 최대한 추한 사람으로 보이는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만난 코토미시의 시작이다.

그냥 인형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a  태국수상시장 인형

태국수상시장 인형 ⓒ 유만찬·김진경


코토미시라는 독특한 옷까지 나왔다는 사실은 당시 수많은 흑인 여성들이 성적 노리개로 희생됐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수리남은 7월 1일을 케티 코티라고 부르는 국경일로 정했는데 '케티'는 '사슬'을, '코티'는 '끊다'라는 뜻이다. 즉 노예라는 사슬을 끊은, 노예에서 해방된 날을 뜻한다.

'노예의 사슬을 끊으면서' 끔찍한 노예시절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코토미시는 이후 사라졌을까? 아니란다. 매년 케티 코티 때가 되면 수리남의 여성들은 코토미시를 입고 거리를 즐겁게 행진한다고 한다. 코토미시를 입지 않은 여성들은 여성 노예들끼리만 통하는 방법으로 머리에 쓰면서 의사를 표현했던 머리 수건 '앙히사'를 쓰고 행진한단다.

수리남의 여성들은 잊으려 하거나 묻어버리는 것으로 치욕스러운 과거를 극복하지 않았다. 되레 그들은 흑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과거의 수난을 현재의 즐거운 기억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게 그들의 극복 방법이다. 그래서 수리남을 대표하는 인형은 코토미시를 입은, 현대에 이르러 많이 화려해진 앙히사를 머리에 쓴 흑인인형이다.

책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은 이처럼 인형이야기로만 그치지 않고 그 나라의 역사와 풍습·문화·복장 등에 얽힌 무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런지라 읽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책은 행운을 상징하는 인형 속의 인형으로 비교적 많이 알려진 러시아의 '마트료시카'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으로 ▲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말을 탄 남성을 묘사한 별난 인형인 폴란드의 '라니코닉 인형' ▲ 민족의 힘든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필리핀의 '바롱 타갈로그 인형' ▲ 전혀 예쁘지 못한, 봇짐을 지고 깡통을 들어 걸인에 가까운 차림새를 한 호주의 '스웨그맨 인형' ▲ 직사각형의 단순한 천에 힌두의 수많은 신들과 신화를 표한한 인도의 '사리인형' ▲ 시대가 바뀔 때마다 많은 논란을 낳았던 옷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의 인형  ▲ 색색의 구슬로 심중에 감춰둔 마음을 전하던 아프리카의 줄루 인형 ▲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들이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가나의 아쿠아바 인형 ▲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축제 '뱅슈 카니발'을 형상화한 벨기에의 인형 '질' ▲ 수세기 동안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 주인공 돈키호테 인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코토미시와 함께 꼭 알아야 할 사건과 인물
코토미시라는 독특한 옷이 나왔음은 당시 얼마나 많은 여성 노예들이 농장주의 성적 학대와 농장주 부인의 질투심에 희생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18세기 후반 잔혹함으로 악명 높은 농장주 부인 수잔나 뒤플레시와 그에 희생된 미스 알리다로 불리는 여성 흑인 노예의 이야기는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남편 스토커트 프레데릭과 커다란 농장을 운영한 수잔나 뒤플레시는 노예의 아이가 운다는 이유만으로 익사시킨 끔찍한 성격의 여성이었다.

알리다는 수잔나의 농장에서 일하는, 미모가 뛰어난 미혼의 노예였다. 언제부턴가 남편의 시선이 알리다에 머무는 것을 느낀 수잔나는 알리다의 한쪽 젖가슴을 도려내 뚜껑이 달린 접시에 담아 마치 요리처럼 남편의 식탁에 놓았다. 이때 피를 많이 흘린 알리다는 결국 죽고 만다. 이후 알리다는 '미스 알리다'로 불리며 흑인 노예들에게 저항의 상징이 된다.

노예들 중 일부는 농장을 탈출해 밀림으로 들어가 자유를 누리며 자신들의 고향 전통방식으로 살았다. 이들을 '마룬'이라 부르는데, 미스 알리다의 일화가 알려지면서 농장을 탈출하는 노예들이 급격하게 늘게 된다. 마룬은 식만지 시절 수리남 전체인구의 15%를 차지할 정도까지 된다.

수리남에서는 1991년부터 매년 케티 코티 전날이면 '미스 알리다'를 선출한다. 흑인 여자 아이들의 자부심을 높일 목적으로 '미스 알리다'란 에니메이션도 만들어졌다. 알리다의 처참한 이야기는 소설과 희곡 등과 같은 많은 문학작품으로 만들어져 당시 잔혹한 농장주들과 농장주 부인 수잔나를 고발하는 동시에 알리다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수리남 와 헤닝언 마을에는 미스 알리다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미스 알리다는 노예제도의 끔찍한 희생자인 동시에 마룬의 영웅이 된 것이다.(책에서 정리)

덧붙이는 글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유만찬·김진경 (지은이) | 바다출판사 | 2013-12-20 |19,800원

갖고 싶은 세계의 인형

유만찬 & 김진경 지음,
바다출판사, 2013


#전통인형 #코토미시 #앙히사 #폴레폴레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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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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