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용팝 아저씨 팬, 예술 속으로 들어가다

[리뷰]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서 열리는 정연두 개인전

등록 2014.03.16 13:16수정 2014.03.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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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연두의 개인전이 열리는 삼성 플라토 미술관 입구.

정연두의 개인전이 열리는 삼성 플라토 미술관 입구. ⓒ 염하연

'팝저씨'란 2013년 대중가요계를 뜨겁게 달군 '크레용팝'의 '아저씨 팬덤'을 줄여서 부르는 신조어다. 크레용팝의 '빠빠빠'는 2013년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로, 대책 없이 가볍고 유머러스한 가사와 중독성 강한 춤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무리 대중가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한 번은 이 노래를 들어 본 기억이 있을 정도이다. '빠빠빠'는 크레용팝을 명실상부 최고 인기 아이돌의 대열에 오르게 했다. 그런데 지금껏 공개 방송에서만 목격할 수 있었던 크레용팝의 팬덤, 팝저씨들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3일, 정연두씨는 팝저씨들의 응원과 함성을 담은 영상물과 화려한 무대로 이루어진 <크레용팝 스페셜(CrayonPop Special)>(2014)을 삼성 플라토 미술관 내부 전시장에 설치해 오픈식을 했다.

이 작품은 크레용팝의 아저씨 팬들과 작가가 공동으로 기획한 퍼포먼스 영상 작업과 크레용팝만을 위한 공연 무대로 이루어져 있다. 화려한 조명과 음악으로 장식된 무대는 크레용팝의 등장을 간절히 기다리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팝저씨들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팬이라기보다는 크레용팝이 길거리를 전전하며 공연하던 무명 시절부터 그들을 응원해 온 충성스러운 팬들이자 부성애로 무장한 공동체에 가깝다. 이들은 스스로 안무를 짜서 크래용팝을 응원하고, 수많은 의상과 소품을 제작하기도 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한다.

a <크레용팝 스페셜 2014> '팝저씨'의 응원 영상을 담은 비디오와 크레용팝을 위한 무대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이다.

<크레용팝 스페셜 2014> '팝저씨'의 응원 영상을 담은 비디오와 크레용팝을 위한 무대로 이루어진 설치작품이다. ⓒ 플라토 photo by 염하연


a  무대 좌측에 크레용팝의 팬들이 직접 제작한 응원 의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무대 좌측에 크레용팝의 팬들이 직접 제작한 응원 의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 플라토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는 40대의 중년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크레용팝을 지지하고 이끌어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현상은, 그 현상의 주체가 '중년 남성'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아이돌 팬덤 현상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0대 청소년도 아니고 이미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풍파를 겪었을 중년 남성이 아이돌을 응원하는 이유에는 크레용팝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는 어떤 큰 동기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무명 시절부터 크레용팝을 지지하고, 직접 응원 소품까지 만들어가며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하는 그들은 단순히 여자 아이돌에 열광하는 '삼촌팬'들과는 다르다. 정연두씨는 그 열정의 동기를 '성공의 열망에 대한 충족, 혹은 대리만족'이라고 말한다.

정연두씨의 지난 작업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사진에 담아 실현하거나, 아이들의 상상으로 그린 드로잉들을 현실로 표현하는 등 서민들의 희망을 긍정하고 재현하는 작업들이었다. 이 점을 상기할 때 <크레용팝 스페셜> 역시 '평범한 이들이 갖는 희망'의 연장 선상으로 읽힌다. 이 작업은 '자기 자신을 위한' 중년 남성들의 응원곡이자, 자신의 성공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는 희망의 변주곡이다.


평범한 삶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다

a <상록타워> 2001 정연두의 초기작으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각양각색의 가족들을 촬영한 사진 연작이다.

<상록타워> 2001 정연두의 초기작으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각양각색의 가족들을 촬영한 사진 연작이다. ⓒ 플라토


평범한 이들의 행복한 삶을 염원하는 정연두씨의 희망은 초기 작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록타워(EvergreenTower)>(2001)는 서울 동부에 위치한 임대아파트 상록타워 주민 32가구의 화목한 모습을 담은 가족사진 연작이다. 아파트라는 주거 환경 상 주민들은 모두 똑같은 구조에서 삶을 영위하지만 다양한 가족 형태를 꾸려가며 각양각색의 삶을 살아간다. 아파트의 이름처럼 '항상 푸른' 삶을 꿈꾸는 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정연두씨는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았다.

a <도쿄 브랜드 시티>2002 정연두의 초기작으로, 도쿄 긴자의 명품 브랜드샵의 점원들을 촬영한 사진 연작이다.

<도쿄 브랜드 시티>2002 정연두의 초기작으로, 도쿄 긴자의 명품 브랜드샵의 점원들을 촬영한 사진 연작이다. ⓒ 플라토

일본 도쿄의 번화가 긴자의 명품 브랜드숍 점원들을 촬영한 10점의 사진 연작 <도쿄 브랜드 시티(Tokyo Brand City)>(2002) 도 주목할 만하다. 사진 속 점원들은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에 맞는 복장을 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나 카메라의 앵글은 점원이라는 역할을 벗은 한 인간의 표정에 주목한다.

상품이 주인공인 브랜드 매장이라는 공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상품 이미지를 대표하기 위해 갖춰 입은 의상의 독특함이 개개인의 특징을 살려주는 요소가 되었다. 이처럼 작가는 인물들의 다양한 옷차림과 표정을 포착하여 점원으로서의 역할과 한 평범한 개인의 삶 사이의 간극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정연두가 크레용팝이라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작업 소재로 삼은 점은 매우 실험적인 시도였다.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는 무너진 지 오래지만, 대중가요의 얄팍함과 일회성이 그 어느 때보다 비판받는 상황에서 크레용팝이라는 아이돌 그룹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 것은 많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크레용팝의 아저씨팬들의 끈끈한 애정과 힘찬 응원을 관객에게 가감 없이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평범한 인간의 삶의 방식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선사한다.

평범한 중년 남성이 인생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희망을 노래하는 삶, 아파트 주민들과 브랜드 매장 점원의 평범한 일상에서 포착한 행복. 이 모든 희망을 카메라에 담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힘든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즐거운 휴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본 전시는 6월 8일까지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서 열린다.

a <크레용팝 스페셜>2014 크레용팝의 팬들, '팝저씨'들이 크레용팝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제작한 응원 소품들이다.

<크레용팝 스페셜>2014 크레용팝의 팬들, '팝저씨'들이 크레용팝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제작한 응원 소품들이다. ⓒ 플라토


a  베르길리우스의 통로, 2014, (Virgil's Path) 3D media installation using Oculus Rift

베르길리우스의 통로, 2014, (Virgil's Path) 3D media installation using Oculus Rift ⓒ 플라토


이 사진은 정연두 작가의 '베르길리우스의 통로'라는 작품으로 2014년 작입니다. 로댕의 지옥의 문에 3D 영상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관객이 안경을 쓰고 지옥의 문을 바라보면 영상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플라토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면에 설치된 <지옥의 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연두씨는 <지옥의 문>에 3D 영상물을 입혀 3D글라스를 이용해 관람객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영상 설치 작업의 제목인 <베르길리우스의 통로(Virgil's Path)>(2014) 는 로댕의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실제 모델로 재현한 가상의 조각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3D 영상의 가상 현실 속에서 '현대의 지옥의 문'을 3D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정연두씨는 일본 체류 중 맹인 안마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이 작업에 착수하였다. 작가는 가상의 영상을 통해 '보는' 행위에 자체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은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눈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지옥문 영상을 통해 실존하는 이미지와 가상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움과 신선한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연두 약력
서울대학교에서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컬리지에서 수학한 정연두(1969년생)는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연소'올해의 작가', 2008년문화체육관광부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 2012년 미국아트앤옥션 (Art+Auction) 선정 '가장 소장가치 있는 50인의 작가'등 국내외 미술계가 가장 주목하는 한국 작가이다.

특유의 온기와 유머, 감동과 재미가 있는 작품을 전개해 온 작가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베니스비엔날레, 상하이 비엔날레 등 국제무대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연두 #플라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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