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초등학교 에꼴 세인트 메리 흐나흐(Ecole saint merri renard)의 외관.
목수정
목 : 혹시 자식은 없나.
토마 : 아들이 둘이나 있다. 그 중 큰 놈은 약간 괴물이다. 그놈은 세계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다(그의 이름은 유디카엘 페화(Judicael Perroy). 과연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위키피디아에 기타 신동이었던 과거와 오늘의 화려한 기타리스트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아홉 살 때 첫 연주회를 가졌고, 지금은 음악원 교수다. 일 년에 절반 이상은 해외 공연을 다닌다. 그 놈은 내 아들이 아닌 것 같다.
둘째는 스시센터에서 전화 주문을 받는 일을 한다. 그놈도 형처럼 똑똑했다. 그러나 언제나 반항기가 많았고, 그래서 반항만 하다가 10대를 다 보냈다. 지금은 형처럼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난 두 놈을 똑같이 사랑으로 키웠다. 내가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당연히 내 아이들이니까 극진하게 돌봤다. 그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내가 이 직업을 택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난 수위 일을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만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늘 다른 사람이 내 배턴을 이어받았다. 많은 오후 시간을 내 아이들을 돌보는 데 썼다. 그리고 난 자유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매일 수영을 했고, 피아노를 쳤다.
목 : 피아노?
토마 : 큰 아들과 달리 나는 음악적 재능이 없어서, 난 정말 오랜 시간을 연습해야 제대로 한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은퇴하면 나는 피아노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연주를 잘하고 싶다. 그리고 현대무용을 배울 생각이었다. 오래 전부터 은퇴 뒤에 현대 무용을 배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동네에 임대주택을 얻게 되는 경우에 이 모든 것을 실현하리라는 것으로 전제가 바뀌었다.
목 : 기타리스트 큰 아들은 여유 있는 삶을 살지 않나? 아들이 아빠를 도울 수 있는 것 아닌가?
토마 : 물론. 도대체 얼마나 버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돈을 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기댈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그 아이들을 키울 때, 나이 들어서 덕 보려고 키운 것은 아니니까. 내가 정말 힘들어지면 아이들이 나를 도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을 미리 염두에 두진 않는다. 나의 신념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싸워볼 생각이다.
목 : 아들은 아버지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나?
토마 : 알고 있다. 그러나 잘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목 : 우리 아이를 데리고 이 학교에 왔을 때 처음 만났던 사람이 당신이다. 우린 당신의 친절하고 상세한 학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당신이 이 학교 교장인 줄 알았다.
토마 : 기억난다. 여름방학 말미에 당신 가족이 학교를 찾아왔던 것.
목 : 그리고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난 종종 우리가 교장한테 뭔가를 물어보면, 교장은 습관처럼 당신을 불러서 일을 해결하게 했다. 마치 당신이 교장의 오른팔처럼 보였다.
토마 : 우리는 20년 전, 같은 날 이 학교에 왔다. 우리는 서로 많이 의지했고 신뢰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교장이 나에게 많은 일을 나눠주었다. 원래 수위가 할 일들이 아니었지만, 난 그를 돕는 게 즐거웠고, 내가 학교를 더 잘 돌아가게 하는 데 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날 더 보람 있게 만들었다(그 교장은 지난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그 교장은 동성애자결혼법이 통과되자마자 그의 오랜 친구와 결혼을 했다. 그때 난 이 학교 동료로서 유일하게 초대받은 사람이었다. 둘은 아주 행복해 보였다.
"수위로 일하며 아이 목숨 두번 살렸다"목 : 얼마 전 한 교사가 일 주일간 결근했을 때, 당신이 결근한 선생님을 대신하는 소위 대타 선생님이 없다고, 정말 큰 문제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럼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나?
토마 : 예전에는 교사가 결근을 하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만 전담하는 교사들이 넉넉히 있었다. 교사가 길게 결근을 하는 경우, 그런 교사들로 채워지곤 했다. 그런데 5~6년 정도 전부터는 그게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학부모가 더 이상 학교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게 지금 학교가 당면한 가장 큰 고민거리다. 물론 그것이 우리학교만의 문제는 아니긴 한다. 하지만 이 학교에는, 여전히 학교가 자랑하는 진주 같은 고학년 담당 교사들이 있다. 저학년 때 좀 부실하게 공부했던 아이들도 고학년 때는 모두 완벽하게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이 학교를 떠나게 된다.
목 : 어떻게 그렇게 잘 아나?
토마 :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진 않지만 자주 교실에 올라가곤 한다. 늦게 오는 아이들을 교실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학부모에게서 급한 연락이 오면 알려주기도 하고. 그때마다 교실 분위기를 본다. 6학년, 5학년 반에 가면 아이들의 눈과 귀가 모두 선생님을 향해 완벽하게 집중해 있고,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이 선생님 앞에서 빛나는 것을 본다.
그걸 보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지적인 열정으로 고양되어 있는지, 선생님과 한마음이 되어 배우는 것에 집중해 있는지 알게 된다. 교사들은 그 어떤 아이도 자포자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들이 자발적인 동기를 갖도록 해준다. 그런 경우를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그리고 이 학교의 아이들은 이 반에서 저 반으로 자유롭게 거닐면서 닫힌 세상이 아니라
열린 세상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지를 배운다.목 : 아, 벽이 없는 교실 구조를 말하는 것인가?
토마 : 그렇다. 벽이 없으니까 아이들은 오직 자기 반, 자기 학년의 아이들만 아는 게 아니라 다른 반, 다른 학년의 아이들과도 쉽게 친구가 되고, 가르침과 배움에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학교에 큰 도서관이 있지 않나. 열정적인 전문 사서도 있고. 그 사서도 오래 일한 사람이다. 그녀는 아이들의 관심사와 수준 등을 꿰고 있다. 열심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독서지도를 해준다. 이 학교의 도서관은 아이들이 흔히 누릴 수 없는 보석이다.
목 : 아이가 종종 그 사서 선생님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이 책을 예약하기도 하고, 자기가 집에서 보았던 좋은 책을 추천하기도 하면서 사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밀접하게 소통하고, 도서관이 매우 활기차게 돌아간다고 느꼈다.
토마 : 그렇다. 아이들한테 도서관은 샘물 같은 역할을 한다. 거기 모여서 물을 마시는 참새들처럼.
목 : 수위로 일한 동안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들이 있나?
토마 : 아이들의 목숨을 구한 일이 두 번 있었다.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한 아이의 목이 놀이기구에 끼고 발은 들려 있었다. 무심코 그 뒤를 지나가다가 범상치 않은 상황인 것 같아 돌아가 보니, 아이는 목이 졸려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 아이를 안아서 내려주었고, 그렇게 그 아이는 살아났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난 그 녀석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한다. 마치 내가 새 생명을 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녀석이기에….
순수한 좌파 수위 아저씨의 소박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