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구를 연 그는 먼저 탈출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무장 고 양대홍씨에 대한 증언] 발견된 그의 손에 무전기가 있었다

등록 2014.05.19 17:27수정 2014.05.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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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살신성인 승무원 양대홍 씨  '아이들 구하러 가야 된다'는 마지막 말을 아내에게 남기고 침몰하는 배 안에 들어갔다가 숨진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45)씨의 시신이 사고 한 달만인 지난 15일 사고 해역에서 수습됐다. 양 사무장의 시신은 16일 진도에서 인천으로 옮겨져 길병원에 안치됐다.

살신성인 승무원 양대홍 씨 '아이들 구하러 가야 된다'는 마지막 말을 아내에게 남기고 침몰하는 배 안에 들어갔다가 숨진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45)씨의 시신이 사고 한 달만인 지난 15일 사고 해역에서 수습됐다. 양 사무장의 시신은 16일 진도에서 인천으로 옮겨져 길병원에 안치됐다. ⓒ 연합뉴스


사고 한달만인 5월 15일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45)씨의 시신이 인양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취재팀은 직감적으로 생존자 송지철(20)씨의 증언을 떠올렸다. 송씨의 증언에는 그가 '사무장'이라고 부른 사람이 등장했다. 사고 당시 3층 사원식당에서 송씨가 살아서 탈출할 수 있었던 데는 양 사무장이 안에서 열어놓은 환기구 구멍이 결정적이었다. (관련기사 : 그는 환기구 구멍으로 탈출했다)

그렇다면, 정작 환기구 핀을 뽑아 뚜껑을 열어젖힌 주인공은 살아서 탈출했을까?

송씨의 증언을 기록한 우리는 그 사무장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송씨의 증언은 제한적이었다. 아비규환 상황에서 극적으로 탈출했기에 그는 그 사무장이 환기구를 연 후 먼저 나갔는지 여부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나온 이후 더 이상 그 구멍으로 빠져나온 사람은 없었다는 것까지만 기억했다. 세월호에서 사무장이라는 직책은 한명 뿐이었지만, 아르바이트 신분이었던 송씨는 자신이 부른 '사무장님'이라는 호칭이 정확한 직책이었는지, 아니면 내부적인 호칭이었는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도 몰랐다.

양씨의 시신이 인양된 장소는 송씨가 탈출했던 바로 그 사원식당 부근이었다. 취재팀은 송씨와 다시 연락했다. 유족이 제공한 양씨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람이 맞냐고. 사진을 보자 그의 기억은 좀 더 진전되는 듯 보였다.

"이 분이 맞다. 배가 기울고 사원식당에 있을 때 복도에서 사무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야된다고 소리치시더니, 내 쪽으로 와서 환기구를 열어줬다."

결국, 탈출구를 연 주인공은 그 곳으로 먼저 빠져나가지 않았다.

"세월호 사무장 고 양대홍은 끝까지 비겁하지 않았다"


5월 16일 인천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양씨의 빈소 영정 뒤 벽에는 "세월호 사무장 고 양대홍은 끝까지 비겁하지 않았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양씨의 둘째형 양석환(49)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본인 성격대로 갔다. 절대로 피할 성격이 아니다. 어릴 때도 누가 자기 형제를 괴롭히고 있으면 쫓아가서 가만두지 않았다. 친구들 중 언제나 대장이었다. 활동적이고 인기도 좋았다. 동생이 아들 둘이 있는데, 단원고 애들 또래다. 고등학고 3학년, 중학교 2학년. 자식 같은 애들 두고 나올 애가 아니다. 나올 수 있었는데 다시 들어간 건 애들 구하러 간 것 같다."


유족들은 양씨가 사원식당 환기구를 열어 탈출구를 확보한 후 다시 주방쪽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5월 16일 현재까지 주방 조리 아르바이트 업무를 하던 사람 세 명이 아직 실종 상태다. 형 석환씨는 "배식 아르바이트인 송씨의 탈출을 도운 후 다시 이들을 구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씨의 증언과 세월호의 내부 구조, 양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등을 종합할 때 충분히 합리적인 추측이다.

양씨는 4월 16일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직후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수협 통장에 돈이 좀 있으니 큰 아들 학비를 내라"며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에 의하면 인양될 당시 양씨는 손에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석환씨는 "선장 새끼를 기다린 것"이라며 "끝까지... 그걸 붙잡고..."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마지막 유품이라고 생각하고 그 무전기를 인천까지 가져왔으나, 검찰과 해경이 수사상 필요하다며 다시 가져갔다고 한다.

유족들이 모여있던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양씨 유족들은 죄인이었다. 세월호 승무원이었고, 또 사무장이라는 꽤 비중 있는 직책 아니던가. 그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믿었다. 남편은 달랐을 것이라고. 동생은 끝까지 비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믿음은 생존자의 증언에 의해 확인됐다.

a  양대홍 사무장이 생전 배에서 일하던 모습

양대홍 사무장이 생전 배에서 일하던 모습 ⓒ 유족 제공


a  양대홍 씨의 둘째형 양석환씨는 "동생이 세월호를 사올때부터 잡일을 맡아서 하고 배에 애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양대홍 씨의 둘째형 양석환씨는 "동생이 세월호를 사올때부터 잡일을 맡아서 하고 배에 애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 유족 제공


a  생전 배안에서 일하던 양대홍 사무장의 모습

생전 배안에서 일하던 양대홍 사무장의 모습 ⓒ 유족 제공


a  양대홍씨의 둘째형 양석환씨는 "동생이 세월호를 많이 아꼈다"고 증언했다.  양대홍씨는 오하마나호 부사무장에서 세월호 사무장으로 진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대홍씨의 둘째형 양석환씨는 "동생이 세월호를 많이 아꼈다"고 증언했다. 양대홍씨는 오하마나호 부사무장에서 세월호 사무장으로 진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유족 제공


#양대홍 사무장 #세월호 침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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