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온 바닷가, 그 안에 품은 생명을 보다

[포토에세이] 속초바다

등록 2014.08.12 18:30수정 2014.08.1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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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미시령 옛길 휴게소에서 바라본 속초 시내, 휴게소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 김민수


미시령 옛길, 정상에 섰다. 빨라진 만큼 많은 것을 놓치고 스쳐 지나가게 되니, 빠른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조금 더디 가더라도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길을 가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나는 미시령과 관련된 추억들을 떠올리며 구불구불한 미시령을 천천히 돌아간다.

어차피,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나에게 주어진 시간만큼만 사는 것이므로 천천히 가는 길을 택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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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태풍이 와서 파도가 제법 높은 바다에서 ⓒ 김민수


하루는 설악산 자락에 있는 숙소에서 종일 작업을 했다. 쉬러 오기도 했지만, 진득하니 세밀하게 작업할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는데, 바다도 보지 않고 돌아간다는 것은 바다에 대한 실례일 것 같다. 낙산사로 향했다. 화재로 전소된 뒤 복원된 낙산사가 예전 모습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 바다는 그대로겠구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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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폭풍이 와서 바다는 새 생명을 얻는다 ⓒ 김민수


금강송과 바다와 파도와 하늘... 그 모든 것들은 그다지 많이 변하지 않았다. 아주 조금씩 변하기에 감지하지 못할 뿐이겠지만, 너무 쉽게 변하는 사람살이와 견주어 보면 자연의 느릿느릿한 변화야말로 진정한 변화가 아니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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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파도와 금강송이 어우러진 바다 ⓒ 김민수


예전엔 이렇게 멋진 바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함께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즐거웠던 탓이겠다. 이젠, 천천히 관조하는 여행을 하게 된다. 나를 돌아보고, 주위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여행을 하게 된다.

태풍이 온 덕분에 파도가 높다. 파도가 높은만큼 저 깊은 바닷속도 뒤집어지면서 새 생명을 품을 것을 생각하니 괜시리 기분이 좋다. 내 삶으로 다가오는 태풍, 그것도 이렇게 맞이해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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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바다와 파도와 금강송과 그 모든 것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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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거친 파도가 오히려 아름다운 바다 ⓒ 김민수


그저 둘러보고 발도장을 찍고 인증샷을 찍고 돌아섰던 그곳에서 오랫동안 한 자리에 서서 반복되는 파도의 움직임을 보았다.

단 한 번도 같은 바다는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변함없는 그 바다라고 한다. 자연의 변화는 느리기에 감지할 수 없을 뿐이지, 지금 내가 보는 그 순간은 단 한 번,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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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금지 태풍으로 수영금지가 내려진 해수욕장 ⓒ 김민수


해수욕장은 어떨까 싶어 발길을 돌렸다. 파도가 높아 수영금지 푯말이 붙었고, 해수욕장은 예년과 다르게 적막하다. 지역 상인들이나 피서객들에겐 미안한 마음이지만, 나는 여름 휴가철 바다에서 행운처럼 조용한 바다를 만끽하는 중이다.

이기적인 나의 마음을 용서해 주시라.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자연이 아니니, 우리는 그저 그 자연의 흐름에 순응할 뿐이니, 좋은 날이건 궂은 날이건 감사한 날로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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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아쉬워하면서도 추억을 담는 피서객들 ⓒ 김민수


아쉽지만 이것도 추억이려니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강남터미널에서 속초행 고속버스를 타고 속초로 여행을 왔다. 태어난 후, 홀로 가장 먼 곳으로 온 여행길이었다.

낙산사, 울산바위, 속초바다, 송지호, 대포항... 추억들은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그 바다가 이 바다였던 것이다. 이렇게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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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몽돌 파도가 자글거리며 몽돌을 간지럽힌다 ⓒ 김민수


파도가 높은 바다를 보며, 나는 그 안에 품은 생명을 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항해하기 힘들 정도로 거센 풍랑이 일고 있다. 그러나 그 풍랑이 있음으로 꿈틀거리는 생명의 기운, 그 생명의 기운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바다를 보면 지긋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마 파도가 잔잔한 평온한 바다였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풍랑이 이는 바다, 그 바다라서 차라리 위안이 된다.

속초해수욕장의 해송과 해송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어느 멋진 날'이라는 까페에서 글을 쓴다. 그 이름처럼, 어느 멋진 날로 기억하고 싶은 오늘이다. 그런데 문득, 미안하다. 아파하는 모든 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그것도 지나가리라 위로해 주고 싶다. 바다는 잔잔한 날도 풍랑이 있는 날도 있어 바다이므로,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겠는가?

#속초 #해수욕장 #미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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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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