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발언 보도8월 26일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에너지 낭비 말자’고 주장했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8월 27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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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추기경님의 이런 견해에 다양한 비판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반론들 가운데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는 너무 대조된 염 추기경님의 본질과 성향, 한계에 대한 연민과 우려도 있었습니다. 반쪽 진리를 전체화하는 추기경님의 오류를 신학적으로 규명하는 글도 나왔고, 염 추기경님은 중립을 지킨 것이 아니라 중립을 표방하는 척하면서 가해자 쪽을 두둔하고 엄했다는 것을 입증하며 공박하는 글도 나왔습니다.
저 역시 염 추기경님에게서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진 사람을 피해 가는 레위인과 사제의 모습'을 봤습니다. 길에 쓰러진 사람을 구조하는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추기경님의 굴절된 시각, 어떤 한계 안에 갇힌 말씀들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전해 들으신다면 많이 섭섭하실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염 추기경님의 여러 가지 말씀 중에서도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에 특히 주목합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인지, 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적시가 없어서 모호한 말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염 추기경님께서 추기경 서임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바티칸에 가셨던 지난 2월 바티칸 교황청이 발행하는 일간지 <로세르바또레 로마노>와 가진 인터뷰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을 가리켜 "비이성적이다"라고 한 말과 연관해 보면 이번에도 정의구현사제단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염수정 추기경, 언행일치와 솔선수범 보여야 할 때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씀입니다. '연대'하라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이 있기 전부터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유족들과 뜨겁게 연대하고 있습니다. 무덥고 딱딱한 광화문 앞 돌 바닥 위에 앉아 비지땀을 흘리며 단식기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향한 거짓과 불의에 맞서며 진실과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온몸으로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을 구현하고 확장하기 위해 사제단은 유족들의 아픔을 다른 의미로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연대와 공유는 얼마든지 상호 이용 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겠는지요?
이쯤에서 사제단과 연대해 광화문 미사에 적극 참여하는 신자로서(또한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공동대표로서) 염 추기경님께 광화문 미사에 한 번 오시도록 초대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광화문이 아니더라도 거리 미사의 주례를 한 번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광화문 미사를 거행하는 임시 제대에는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미사 지향이 새겨져 있습니다. 세월호의 슬픔과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채 방한 일정을 마치시고 바티칸으로 돌아가시는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전세기 안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이 말은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 표지가 되었습니다. 광화문 미사에 참례하는 모든 사제와 수도자와 신자들은 오늘도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라고 물으시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고 하신 교종의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평화를 갈구합니다.
저는 크고 화려한 성전 안에 편안히 앉아 미사를 지낼 때보다 바람 부는 길거리에 서서 미사를 지낼 때 더욱 하느님의 현존을 느낍니다. 엄동설한 어두운 밤에 두 손 호호 불어가며 미사를 지낸 적도 있고, 폭우 속에서 우산을 쓰고 미사를 지낸 적도 있습니다. 그 은총의 세계로 추기경님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처럼 낮은 데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가운데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면서 거리 미사 한 번 주례해 보시기를 충심으로 청원 드립니다.
끝으로, 추기경님께 '언행일치'의 모습을 보여주실 것을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지난해 11월 29일 명동성당에서 봉헌하신 안드레아 영명 축일 축하 미사 때의 그 강론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바로 그 확실한 모습일 것입니다.
염수정 추기경님, 거리미사로 나오세요추기경님은 사제들에게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용감하게 변화시키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 소외받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 밖의 불쌍하고 힘없는 이웃을 위해 행동하고 보살펴야 하며, 사랑과 나눔을 구호나 이론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염수정 추기경님 자신의 말씀이기도 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말씀만 하시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말에는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언행일치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덕목이며, 성직자에게는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입니다. 염수정 추기경님, 다시 한 번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진정한 중립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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