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일본과 세월호 참사 한국, 닮아도 너무 닮았다

[서평] 후쿠시마 원전사고 다룬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등록 2014.09.28 16:40수정 2014.09.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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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이 서린 아픔과 절규에도 나 몰라라 외면하는 일본의 태도는 그 자체가 그때보다 더한 만행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아픔을 현재의 분노로 만드는 괴력을 지닌 일본과 일본의 극우 아류들. 정작 아픈 사람들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데도 그들은 끝났다고 말한다. 그게 더 괘씸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일본의 모습을 꼭 빼닮은 한국정부와 그 아류가 있다면 믿겠는가. 아마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무너질 대로 무너져 내린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이젠 끝났으니 제발 그만하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에 발목이 묶여 한국호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나. 보수단체들이 '폭식투쟁'과 '맞불단식'에 이어 '아듀 세월호' 깃발 화형식까지 하면서 그만하라고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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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표지 ⓒ 고려대학교출판부

<미디어워치>는 지난 24일자 인터넷판에서 "활빈단, 세월호에 발목 잡힌 식물국회 해산 촉구운동 돌입"이란 기사를 내보냈다. <부산일보>도 26일자 사설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발목이 잡혀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책상서랍에서 잠을 자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에도 여러 매체들이 앞 다투어 "세월호에 발목 잡힌 한국경제" "세월호법에 발목이 잡힌 식물국회"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가로막혀 국회에서 하세월" 등 비슷한 논조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는 9월 15일자<국민일보>에 "이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나라를 위해 결단해 주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이미 그는 지난 7월 30일에도 <동아일보>에 "돌을 던지면 맞겠습니다"라는 광고를 싣고, "세월호 가족들이 진도 체육관에서, 팽목항에서, 광화문에서 이제 그만 나오라"며, 특별법은 국회에, 진상 조사는 정부에, 책임자 처벌은 사법부에 맡기고 "이제 그만하라"고 말했다.

'이제 덮고 그만 하자'는 말이 얼마나 닮았는가. 일본이 위안부에 대한 반성은 이미 다했으니 그만하고 내일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대한민국이 모든 것은 정부와 국회에 맡기고 세월호 참사는 이제 잊자고 한다.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토록 한 서린 절규를 하겠는가.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을 것이라면 왜 세월호 가족들이 장기 단식이나 집회를 통하여 아픔을 토로하겠는가.


사람은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했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미워하면서 너무나도 일본을 꼭 닮아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내가 읽은 책을 통해 정말 판박이라는 생각을 굳혔다. 마쓰오카 슌지의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고려대학교출판부 펴냄)이 그것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해 방사능이 심각하게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4월 15일, 세월호는 승객 447명, 승무원 27명, 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하여 제주로 향하다, 다음날 오전 8시 52분경 진도 앞 해상에서 기울어 11시 18분에 선수 일부만 남기고 침몰하였다. 304명이 희생되었다.

두 사건 다 사고는 끝났지만 사고 마무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공범>(2013, 국동석)에서 김갑수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이 두 사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눈물 짖는 당사자들이 아픔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끝난 게 아니다. 그들이 끝났다고 해야 끝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세월호 참사, 너무 닮았다

'무능한 상사와 우수한 현장'이 있었다는 점이 닮았다. 책은 <닛케이비즈니스온라인> 2011년 8월 23일자를 인용하여 이렇게 증언해 준다.

"이번 원전사고에서 분명히 알게 된 것은 정부든, 경제산업성이든, 원자력안전위원회든, 도쿄전력이든 톱 매니지먼트(최고경영관리조직)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는 점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자위대, 도쿄소방청, 원자력발전소 등 현장에는 우수하고 용감하며 사명감에 타오르는 인재들이 많이 있었다는 점입니다."(22쪽)

세월호 참사는 어떤가. 엄밀하게 말하면 우수한 현장도 없었다. 다만 우수한 시민만 있었을 뿐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배에서 학생들을 구조하다 유명을 달리한 고(故) 남윤철 교사를 비롯하여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남을 구하려 달려온 어민들과 잠수사들, 그리고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며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이 있었다.

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의 해경은 구조 골든타임을 승객출입구가 아니라 선원출입구로 가 선원구조에 할애하고 선체진입을 시도하지 않음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자초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과 선주, 정부, 안행부, 해양수산부, 중앙재난대책본부, 더 나아가 청와대, 어느 한 구석 제대로 대처한 곳이 없다.

심지어는 "전원 구조" 발표는 '무능 정부'의 진면목을 확인시켜줬다. 후쿠시마에서는 사고가 나자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도쿄전력이 "전원 철수"를 고려했다고 하는데 정작 도쿄전력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전원 구조"와 "전원 철수" 얼마나 닮았는지 모른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도 닮았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임하려 했지만 결국 새 총리를 임명하지 못하고 다시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은 인천시장으로 당선되고,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국회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의 일본도 이와 같다. 역시 자리 옮긴 게 고작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일본 정부는 "소관 관청인 경제산업성의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진 사람이 없었다. (중략) 모두가 순조로이 출세를 하고 꽤 높은 퇴직금을 받고 당연하다는 듯 낙하산 임명을 받는다."(51쪽)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 후 파격적인(?) 대책을 들고 나왔다.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인데,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국가안전처에서 하게 한다"는 것이다. 안전행정부의 핵심기능인 "안전과 인사·조직 기능을 분리해서 안전 업무는 국가안전처"로 넘기고, "인사·조직 기능도 신설되는 총리 소속의 행정혁신처로 이관하겠다"고 했다. 또, "해수부의 해양교통 관제센터(VTS)는 국가안전처로 넘겨 통합한다"고도 했다.

일본도 원전사고 후 경제산업성이 맡고 있던 원자력안전·보안원을 분리하여 환경성으로 이관하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한국과 일본이 부서를 없애거나 만들고, 아니면 다른 부서로 옮기는 것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다. 얼마나 닮을 꼴인가. 해경 해체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고 다른 조처들도 비전문가(행정관료)로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하게 만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4월 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는 말이 왜 그렇게 씁쓸하게 귓전에 남는지 모르겠다. 눈물을 흘리며 발표했던 세월호 대책, 지금은 세월호 가족들의 요구를 들을 수 없다는 강경함으로 바뀌었다. 우리 정부에서 위안부 문제나 원전사고에서 보여준 일본의 아우라를 보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덧붙이는 글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마쓰오카 슌지 지음 / 김영근 옮김 / 고려대학교 출판부 펴냄 / 130쪽 / 8000원)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 후쿠시마 원전사고 대응과정의 검증과 안전규제에 대한 제언

마쓰오카 슌지 지음, 김영근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부, 2013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마쓰오카 슌지 #김영근 #세월호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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