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에 대한 단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모를 모시고 나들이 떠났던 그날, 10월 2일이 노인의 날인거 아시나요

등록 2014.10.15 16:56수정 2014.10.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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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노인의 날이 찾아왔다. 노인의 날은 매년 10월 2일이다.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있으니 노인의 날도 있겠거니 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 갈 수 있다. 스승의 날도 있고 국군의 날도 있다. 노인의 날도 그런 여러 기념일들 중의 하나이다. 노인들을 위해 하루 날을 잡아 챙겨 준 것이 어언 18년이라니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노인의 날은 다른 기념일과 달리 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지자체 '노인의 날' 행사 없는 경우 많고, 있어도 날짜 제각각

중앙부처 차원의 행사는 있으되 지방단위, 가정단위의 행사는 없다는 것이 다른 날들과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다.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 어린이날이면 어느 집이건 부산하게 카네이션이다, 공원 나들이다 하며 손에 손을 잡는다.

노인의 날이라고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꽃 한 송이 달아 드리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외식 나들이 일행도 보기 쉽지 않다. 기껏해야 노인요양원 점심에 특식이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그나마도 드물다. 자식들이 챙기지 않으니 시설에서 신경 쓰기 어렵다.

두 번째 특징은 제 날짜에 맞춰서 기념식이나 행사를 하지 않고 편의에 따라 아무 날짜나 골라잡는다는 점이다. 노인의 날을 따로 정한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그러다보니 매년 노인의 날 행사일이 달라진다. 노인의 날이 언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시·군 단위에서 10월 2일 제 날짜에 행사를 하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 듯하다.


어머니를 모시고 행사장을 가 보려고 전라북도 장수군 홈페이지를 뒤져도 없었다. 노인복지 담당직원을 찾아 전화를 해 봤다. 대한노인회 장수군 지부에 위탁해서 본잉는 모른단다. 형식적인 기념식도 없었다.

인접해 있는 다른 군청에 전화 했더니 역시나였다. 담당 공무원은 10월 7일, 무슨 공원에서 행사를 한다고 설명해줬다. 공연도 하고 선물도 주고 점심 대접도 한단다. 2일이 노인의 날인데 왜 7일에 하냐고 물었더니 "2일은 군수님 일정이 너무 바빠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바쁜 가을철에 굳이 날짜를 맞출 이유가 없나보다. 행사를 진행하는 측의 편의에 따라 10월 초에서 10월 중순까지 적당한 하루를 정한다. 서커스나 품바타령, 가수 몇 명 부르고 냉동식품을 싣고 온 외식업체에 맡겨서 점심 한 끼 대접하면 끝이다.

그래도 기념사와 축사는 어떤 경우에도 한다. 양복 입은 정치인이나 행정가 십 수 명이 연단에 올라 그 말이 그 말인 비슷한 말들을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한다. 노인들이 잘 못 알아 들을까봐 배려하는 조치인걸까.

아침 일찍 연세가 아흔 셋인 어머니 가슴에 꽃을 달아 드렸다. 몇 번 얘기해도 노인의 날이 뭔지 모르는 어머니는 꽃을 뜯어버리신다. 방금 드셨는데 또 밥을 달라고 조르신다. 하루 일정이 내 계획대로 잘 진행될지는 하나님도 모를 일이다. 점심 먹고 공원에 가서 기념사진도 찍고 저녁은 어머니 좋아하는 팥죽으로 외식을 할 계획이었다.

엊그제 보도에 따르면 노인 자살율이 아주 높았다. 80대 이상 남성 노인들의 자살율은 우리나라 평균자살율의 6배라고 한다. 우리나라 자살율이 세계 최고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져 있다. 그 평균자살율의 6배나 된다면 수치가 얼마나 될까? 인구 10만 명 당 17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 정도면 국가적인 대재난이다. 언론은 이런 통계수치가 발표된 날 하루 반짝하고는 끝이다. 다들 너무 바쁜 게다. 자식 키우기에 바쁘고, 업무를 위한 식사자리와 술자리도 줄지어 기다린다.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여든이 넘은 노인들이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마음속으로 품었어야 했던 고독감과 외로움을 말이다. 배척감을 넘어 배신감이 들 테다. 좌절과 분노가 가득할 테다.

노인들의 만성 질병과 빈곤은 더 심각하다. 지난 2013년 한 해, 노인 1인당 평균 진료비가 322만 원이라고 한다. 2006년의 180만 원에 비해 두 배나 늘어난 액수다. 해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다보니 1인당 진료비가 아닌 전체 진료비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구름이 걷혔다. 햇살이 환하다. 서둘러 나섰다. 공원으로, 팥죽집으로 향했다. 어머니와 함께 노인의 날을 자축했다. 준비해 간 음료와 과일을 호수를 가로지르는 산책 다리 위에서 먹었다. 어디에도 노인의 날 흔적은 없다. 새하얀 구름만이 하늘과 호수에서 대칭을 이루며 기념사진의 멋진 배경을 만들어주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불교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인의날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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