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만난 유모차, 피하지 마세요

[지하철 출퇴근 속으로 6화]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사람들

등록 2014.10.29 14:30수정 2014.10.2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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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 3개 노선을 1시간 동안 갈아타는 20대 후반의 직장녀입니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특별한 일이 있을까 했는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마주하니 지하철에서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되었습니다. - 기자 말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길, 가끔 마주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정장을 입은 채 3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탄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 남자가 지하철에 타면 시선이 쏠린다.

그렇다고 계속 보는 건 아니고 고개를 쓱 돌렸다가 이내 자기 할 일을 한다. 이 남자는 계속 아이에게 시선이 향해 있다. 사람들의 집중된 시선이 불편한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사람 많은 출근 길, 나 혼자 탑승할 자리도 없어서 꾸역꾸역 밀고 타는데 아이까지 같이 타니 좁은 자리가 더 비좁아졌다. 아이는 순한 편인지 시끄럽고 공기도 안 좋은 지하철 안에서 약간 칭얼대기는 하지만 크게 울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자주 있어서 적응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옆 사람에게는 불편할 터. 이내 한 사람씩 이어폰을 귀에 꽂는 게 눈에 보였다. 난 평소 노래를 잘 안 듣는 편이기도 하지만 나 또한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내 가방을 앞으로 메서 자리를 좀 더 확보해 주는 것이었다.

처음 그를 마주하였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니 편견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아이가 아파서 아침 출근 길에 병원을 데리고 갔다가 진료가 끝나면 아이 엄마가 데리고 가는 건가? 출근이 아니라 쉬는 날이기에 어디 놀러라도 가는 건가? 부부가 맞벌이여서 근처 친척집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건가? 아님 직장 내 보육시설이라도 이용하는 건가.


최근 기사를 보면,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하는 10개 과학기술연구기관 중, 직장 안에 어린이집을 설치한 기관은 2개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최민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미래부는 '여성과학기술인력 채용·승직 목표제 추진실적 및 계획'에서 직장보육시설 운영률이 70.3%에 달한다고 보고하고 있으나, 이는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으로 실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직장 내 보육시설은 부모가 일하는 중간에라도 아이를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어 아이 정서에 좋고 부모도 안심이 되어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보통 이런 사람들은 자차를 이용해서 오는 사람이 많은데, 이 사람처럼 아이를 안고 지하철로 출근하는 건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4호선에서 내려 7호선을 타면 이번에는 유모차를 끌고 탑승하는 여자가 있다. 엄마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 있다. 친정 엄마에게 전화해서 몇 시까지 회사 앞으로 와서 아이를 데려가라고 한다. 아이가 외관상 어디가 많이 아파보이지는 않았는데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하는 거 같았다. 1주일에 1~2번 정도는 마주친다.

아이가 약간 보채기만 해도 엄마는 아이에게 계속 조용히 하라고 계속 말하며 진땀을 뺀다. 다행인 건 그나마 사람들이 많이 빠져 나가고 타는 사람이 적은 역에서 타기에 유모차를 놔둘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 그러나 사람들은 여유가 있는데도 유모차를 발견하면 이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처음에 그녀를 봤을 때 나도 살짝 고민했었다. 출근길 몸도 지치는데 조금 더 편한 곳으로 갈까? 그러나 아이의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나니 미안해서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아이가 칭얼대다가 다리를 차서 내 바지에 발자국이 남게 된 것이다.

아이 엄마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고 아이에게는 잘못했다고 사과하라는데 내 얼굴이 붉어졌다.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여기서 자리를 피하면 내가 기분이 나빠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도 난 유모차를 끌고 오는 그녀를 보아도 피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분이 나를 피하는 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아직 미혼이지만 주변에서는 한두 명씩 결혼을 하고 빠른 친구는 아이도 낳았다. 아이를 낳자마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친구도 보았고. 내게 직장을 그만둔다는 의미는 나의 직업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 바쁜 아침에 유모차를 끌고 병원에 들렀다가 출근하는 엄마를 보니,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남자나 출근길을 헤치고 아이와 병원에 들른 뒤 출근하는 여자나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 여기에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이 더해지길 바란다.
#지하철 #아이 #유모차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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