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지옥'인데, 자영업자 등 떠미는 법원

동대문구와 성동구 관내 대형마트 의무휴업 위법 판결을 비판하며

등록 2014.12.23 22:14수정 2014.12.2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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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롯데쇼핑, 이마트, 홈플러스 등 6개 대형마트사가 서울 동대문구청장과 성동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제한처분 취소 항소심에서 법원은 1심을 번복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한 것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판결은 대형마트와 중소상공인 간의 상생을 위해 도입된 그간의 입법 노력을 부정했다는 비판이 거센데요. 특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마트, 홈플러스가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판단한 점이 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과연 재판부는 어떤 근거로 위법 판결을 내렸는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조수진 자문위원(변호사)이 꼼꼼히 뜯어봅니다. [편집자말]
최근 tvN 드라마 <미생>이 인기리에 종영했다. <미생>에서 오상식 차장을 찾아온 옛 회사 동료는 퇴직금으로 피자집을 차렸다가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가게가 망하고 만다. 그는 오차장에게 "회사가 전쟁터같지. 그래도 잘리기 전엔 절대 제 발로 나오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우리 동네 자영업자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어느날 기업에서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고 허겁지겁 퇴직금과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소상인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자영업을 시작하지만 동네 구석까지 대기업의 대형마트와 SSM((Super supermarket,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이마트에브리데이 등 기업형 슈퍼마켓)이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지옥'을 경험한다. 치열한 직장인들의 드라마 <미생>의 그 후는 언제 빈곤층의 나락으로 추락할지 모르는 안타까운 자영업자들인 셈이다.

영업시간 제한, 사회적으로 합의되는 분위기였는데...

a  2012년 6월 24일, 이마트 등 5개 업체가 지자체를 상대로 낸 영업제한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자 중소상인 등 관계자들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2년 6월 24일, 이마트 등 5개 업체가 지자체를 상대로 낸 영업제한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하자 중소상인 등 관계자들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우성


2014년 12월 12일 서울고등법원 제8행정부는 동대문구청장과 성동구청장이 대형마트들에게 내린 심야영업시간제한과 의무휴업 처분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하였다.

이 처분은 유통산업발전법에 기한 것이다. 국회는 무려 8년의 논의를 거쳐 2012년 제12조의 2를 만들어, 구청장이 대형마트와 SSM에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는 영업을 금지하고 아울러 매월 이틀의 의무휴업도 명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뒤 서울시의 각 구청장들은 모두 관내의 대형마트와 SSM에 대해 심야영업을 하지 말 것과 한 달에 두 번 일요일에 쉬도록 처분했다. 이에 대형마트인 원고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쇼핑, 지에스리테일 등은 '과도한 제한'이라며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래서 구청별로 취소소송에 들어갔고 대부분의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했다. 그후 대형마트 측이 항소하지 않아 처분이 적법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다만 동대문구와 성동구 관내 대형마트에 대한 처분에 대해서만은 대형마트들이 항소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울고등법원이 영업시간 제한이 위법한 처분이라며 대형마트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성동구와 동대문구에 대한 처분이 과연 고등법원의 생각처럼 위법해서 영업시간 제한이 취소될지는 이제 대법원이 최종 판단하게 되었다. 만약 그러한 결론에 이른다면 사회적 파장은 매우 클 것이다.


대형마트와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등 SSM에 대한 의무휴업제와 영업시간제한제는 시행 이후 비교적 좋은 성과를 보여왔다. 2012년 소상공인진흥원과 시장경영진흥원이 공동 조사한 결과 의무 휴업 시행 후 중소소매업체와 전통시장의 매출액과 평균 고객이 각 10% 이상 증가했으며, 소비자 78%가 의무휴업에 찬성한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 유럽에서도 대형마트의 공휴일 의무휴업제와 평일 영업시간 제한은 대형마트 규제의 보편적인 제도 중 하나다. 독일은 대형마트 진출 시 그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10% 이상이면 아예 입점 자체를 못하게 한다. 자영업자 중 중산층이 붕괴하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점원의 도움없는" 곳이어야 대형마트?

이번 판결의 해석 논리는 이러하다. 유통산업발전법에서는 대형마트란 "점원의 도움없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점포라고 정의란에 규정하고 있다. 판결은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매장 일부에 정육점이나 반찬코너가 있는데 그 곳에서는 점원이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이마트 등은 전체가 다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보았다. 또 대부분의 대형마트 안에 안경점, 화장품점 등의 임대매장이 있고 그곳에는 점원이 늘 도움을 준다. 그래서 대형마트가 아니고, 처분의 대상을 오인한 처분이므로 영업시간제한이 위법하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마트와 홈플러스가 대형마트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대형마트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되지 않는가. 이와같이 대상판결의 해석은 지나치게 도식적인 것으로, 문리해석에 벗어나고 또한 국민법감정상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석이어서 법원이 법 해석을 잘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게다가 그 정의규정에 점원의 도움여부가 들어간 연혁적 이유는, 유통산업발전법은 점포를 대형마트(대규모 점포 등), 전문점, 백화점, 쇼핑센터, 복합쇼핑몰, 기타 총 6개로 구분하여 각각에 맞는 규제를 하는데, 점원이 주도하여 도움을 주는 백화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덜 그러한 대형마트를 구별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법취지상 '점원의 도움없이'를 이렇게 엄격히 해석할 일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비슷한 법리로, 주택 일부가 상가인 경우 어떤 법을 적용하느냐에 대해 대법원은 주된 부분이 무엇이냐를 보고 판단하지 일부가 상가라고 해서 전체가 상가라고 보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되면 약간의 임대매장을 끼거나 대형마트 내에 점원 몇 명만 배치하면 어떤 대형마트이든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제한을 피해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꼼수와 편법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두 번째로 대상판결은 대형마트 안의 화장품가게 등 임대매장 운영자를 각각 다른 주체로 보고 임대매장 운영자에게도 처분을 받기 전 행정법에 따라 사전통지나 의견제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이 부분 처분의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 또한 처분의 상대방은 대형마트 운영자인 것이 분명하고, 그 내부 임대매장 운영자는 처분 대상자가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

임대매장 운영자는 다만 껍데기인 대형마트 자체가 문을 닫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영업을 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게다가 임대매장을 이렇게 따로 볼 요량이면 내부에 임대매장이 있다는 이유로 대형마트까지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본 앞의 결론과도 이야기가 맞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대상 판결은 행정처분을 할 때 침해되는 이익과 지키려는 이익을 비교해야 하는데 구청장들이 영업시간 제한 처분을 통해 지켜내려 한 이익인 '건전한 유통질서'가 무엇인지 불명확하고, 대형마트 납품업자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지, 대형마트 재직 근로자의 건강권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소비자의 선택권 침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하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재량권을 불행사하여 위법하다고 보았다.

이것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무려 7, 8년간이나 국회와 이해당사자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입법된 것이다.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국회가 오랜 시간 사회내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조율해서 제도를 만들었는데 법원이 이 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지 않고 너무나 쉽게 여긴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또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소상공인을 위해서는 심야 영업시간 연장보다는 오히려 과도한 판촉비용을 납품업체에 전가하거나, 판촉사원을 과다하게 요구하는 대형마트의 횡포, 납품단가후려치기 등의 불공정행위를 막는 일이 더 절실하다.

소상인을 살려야 나라도 산다, 왜 그걸 모를까

대형마트 영업시간제한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모범적인 상생제도로 정착되어 잘 시행되어왔다. 소비자들도 제도 취지에 공감해 슈퍼와 시장 이용을 하고 있던 참인데, 다시 이번 판결로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게다가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제는 대형마트에 대해 자정 이후에는 영업하지 말고, 한 달에 이틀을 쉬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것이 비례원칙에 반하여 심한 것인가?

이 제한으로 인한 효과를 살펴보자. 자영업자 비율이 미국은 6.8%, 독일과 일본도 각 1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무려 28%나 된다. 생활밀착형 업종의 인구 천명당 업체수도 미국의 10배 이상으로 이미 과도한 경쟁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몇몇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SSM은 큰 위협이다.

반면 대형마트가 창출하는 고용이나 창업효과는 질이 낮다. 2012년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6개 대형 유통업체의 사업보고서에서 최근 6년간 직원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 업체의 매장당 정규직 직원은 평균 100여명에 불과했다. 자체 고용보다는 납품업체 직원이나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용 창출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허울에 가까웠다.

반면 홈플러스 청주점의 경우 3년 동안 반경 5㎞ 내 슈퍼마켓 337곳 가운데 21%에 해당하는 72곳이 폐업했다. 건강미용식품 매장, 문구점, 컴퓨터매장 등 홈플러스 판매품목과 중복되는 매장까지 합하면 200여곳이 문을 닫았다. 이런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통시장과 주변 상권 파괴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감안하면 고용 측면에서 대형마트 진출은 득보다 실이 많은 편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동네 상권 자영업자들의 몰락은 곧 빈곤층의 증가를 의미하는데 세금은 줄고, 의료·실업 등 복지비용은 증가한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대기업이 동네상권 과자값까지 싹쓸이하는 것을 적절히 제한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다. 이익형량이란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사법부가 국회에서 정한 입법을 위법으로 판단한 점도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게 한다. 어떻게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고 많이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어질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재산권을 절대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자영업자의 눈물을 닦아 주고 대기업과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사이다' 같은 속 시원한 판결을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대형마트 #유통산업발전법 #의무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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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는 정부, 특정 정치세력, 기업에 정치적 재정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합니다. 2004년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특별협의지위를 부여받아 유엔의 공식적인 시민사회 파트너로 활동하는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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