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의 두 원로 사학자. 서명훈(왼쪽) 선생과 김우종 선생(2009. 10. 촬영)
박도
그 해(2000년) 여름, 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소 장세윤 박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허형식 장군을 국내 신문에 최초로 보도한 대한 매일의 정운현 기자를 만나볼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분의 저서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를 읽은 바가 있기에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했다. 곧 우리 세 사람은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장 박사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날의 만남은 마치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난 '도원결의'처럼 이후 내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그날 만남에서 얻은 허형식 자료인 1999년 8월 14일자의 대한매일신문의 기사 "만주 항일영웅 허극(허형식의 이명)은 한국인"과 연변의 소설가 유순호의 "만주 항일파르티잔의 제일가는 별", 그리고 조선족혁명열사전의 <허형식>은 내게는 '위편삼절(韋編三絶)과 같은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었다.
나는 그런 자료를 보면 볼수록 더욱 목이 말랐다. 그래서 허형식 장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자, 또한 그분 순국지에 찾아가 묵념을 드리는 것이 동향 출신 한 문사로서 최소한 예의요, 그동안 부끄러움을 면하는 일일 것 같아 마침내 헤이룽장 성 희생지를 답사키로 했다.
애초에는 그곳 지리에 밝은 김중생 선생님과 동행하려 했으나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았고, 여비도 만만치 않아 혼자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나의 답사 여행 체험에 따르면 혼자 미지의 곳으로 떠나면 지리나 언어를 몰라 방황도 하지만, 그 대신 자유로움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지난해 하얼빈에서 서명훈 선생과 안면은 텄고, 그분의 명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또 장세윤 박사를 통해 중국 공산당흑룡강성 당사연구소장이며 작가인 김우종 선생의 주소를 알아 두 분에게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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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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