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박정희 대통령에 감격
결정했다, 한국을 떠나기로

[재미동포 아줌마, 남한에 가다③]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하다

등록 2015.04.03 15:37수정 2015.04.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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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통일 토크콘서트로 정부·언론 '종북몰이'의 중심에 서게 돼 강제출국당한 재미동포 아줌마 신은미 시민기자가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겪은 일을 정리해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나에 대한 허위·왜곡 보도가 밤낮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내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종북 마녀'의 얘기를 그저 남의 얘기인 것처럼 넋을 잃고 바라본다. 곧 정정보도를 내보낼 것이라는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오랫동안 외국에 살면서 나는 내가 태어난 한국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여러 나라에서 환영받는 한류 때문도 아니요, 경이적으로 이룩한 경제발전 때문도 아니었다. 세상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더 높은 나라들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그런 나라들을 모두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내가 나의 모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한국이 이룩한 민주주의의 발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유롭고,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하는 언론이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한국의 언론이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됐다.

2014년 11월 22일. 오늘은 시조카 첫 손주의 돌잔치가 있는 날이다. 친정조카의 결혼식과 함께 서울에서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다. 그러나 갈 수가 없다. 우리 부부를 '악성 바이러스 감염자'처럼 모두들 멀리한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탈북자들과 함께 드린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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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3일 한 탈북자 교회에서의 간증 모습. ⓒ 신은미


2014년 11월 23일, 주일이다. 한 교회로부터 예배시간에 신앙간증을 부탁받았다. 상처받은 마음을 교회에 가서 치유받길 간절히 원하며 예배에 참석했다. 이 교회의 목사님은 북한에서 고위직에 있다가 남으로 온 탈북자였다. 교회 성도 중 70~80%가 탈북자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나의 신앙간증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남과 북이 화평함으로 하나되는 그날을 소망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고 힘이 솟는다.

간증 내용은 평소 내가 강연 때 말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일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는 종교적 편향성을 피하기 위해 신앙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교회에서 드리는 신앙 간증 예배이기 때문에 지난날 부끄럽게 살아온 내 삶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신앙 고백을 했음이 다를 뿐이다.


나는 '로마서' 12장과 '누가복음' 10장에 있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내 신앙체험을 성도들과 나눈다. '서로 화목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이웃이 되라'는 말씀들을 되뇌면서 내 이웃 속에 북녘 동포들은 제외돼 있던 지난날을 회개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털어놓는다.

북을 여행하면서 비로소 북녘 동포들이야말로 내가 보듬어 안고 사랑해야 할 내 이웃이요, 내 형제요, 내 민족임을 고백하는 귀중한 시간이 됐다.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보인다. 아마도 두고 온 가족들과 고향이 생각나서 그랬으리라.

'종북 프레임'에 갇힌 한국사회

나에 대한 허위·왜곡 보도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간다. 나를 '간첩'으로 만드는 모양새다. 내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했다'는 보도에서 시작해 한층 더 나아가 내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있으며 북한의 3대 세습을 찬양했다'는 데 이른다. 심지어는 구체적인 액수를 거론하며 "공작금을 받았을 것"이라는 발언까지 나온다(현재 나는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상태다).

도대체 이들의 '아니면 말고' 식의 무분별한 보도는 어떻게 나오는 걸까, 소위 언론인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잠이나 제대로 청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되레 그들이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14년 11월 24일. 오늘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초청으로 강연이 예정돼 있다. 토크콘서트가 아닌, 나 혼자 하는 강연이다. 강연장에 가보니 방송국 카메라들이 설치돼 있다. 내 강연장에 언론사 카메라가 녹화하고 강연 전후 기자회견을 하는 건 처음이다. 공중파 방송국 한 곳과 종편 등 언론사들이 강연을 취재한단다. 나는 내가 평소에 하던 그대로 가감 없이 강연을 마쳤다.

강연이 끝나고 늦은 시각까지 내가 쓴 북한 기행문의 독자분들과 식사를 겸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모국에 와서 모처럼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남한에서 깨달은 '종북'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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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미 시민기자와 관련한 보도를 내보내고 있는 TV조선 ⓒ TV조선 갈무리


아침.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보니 '신은미 주체사상을 옹호하다'라는 내용의 뉴스가 나온다. 종편을 비롯한 몇몇 언론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뉴스로 만들어내는 '비상한 재주'를 타고났나 보다. 이 뉴스를 만든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주체사상이 뭔지 내게 알려줄 수 있는지 말이다. 뭘 알아야 옹호도 하고 찬양도 할 게 아닌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종북몰이'인가. '종북'이라는 말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한마디로 '빨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쓰임도 있다. 공산주의자(또는 빨갱이)가 아닌 사람이 북에 호의적으로 비칠 수 있는 (또는 사실대로) 말을 할 경우, 다른 사람이 그 발언을 한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빨갱이'라는 말 대신에 '종북'이라는 편리한 말을 쓴다.

이런 종북몰이의 배경에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종북'의 특성 중 하나는 점점 범위가 넓어진다는 데 있다. 심지어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슬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종북'의 범위에 속한다.

나는 깨달았다. 한국 사회가 '종북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것을. 문제가 된 조계사 통일콘서트에 출연한 국회의원은 텔레비전에 나와 "조계사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우연히 들렀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이 말이 종북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나서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참석해 격려를 해주는 게 보기 좋은 일 아니었을까. '통일의 꽃'이라 불리는 그 국회의원에게 '통일'은 그의 정치적 자산(political capital)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훌륭한 자산을 훌훌 털어 버리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누구도 "너 종북이지?"라는 질문에 "그래, 나 종북이다"라고 반박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자신은 종북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지만 오히려 종북의 올가미에 더 깊게 걸려들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검열을 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조차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두고 "나는 그 당에 절대 반대하지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나서야 "정당해산 심판은 잘못됐다"라고 첨언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나는 내가 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러니 종북몰이를 하는 이들에게 나보다 더 좋은 먹잇감은 없었을지 모른다.

종북으로 모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종북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다. '내가 본' 북한과 북녘동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모국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협력 나아가 통일을, 그것도 평범한 민간인이 원하고 이야기하면 '종북'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종북'이야말로 멋진 별명 아닌가.

"그래, 난 통일을 염원하고 북녘동포들을 사랑하는 '종북'이다!"

조국에 있지만 갈 곳이 없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2014년 11월 26일 서울을 떠나 중국 심양을 거쳐 평양으로 가게 돼 있었다. 그러나 에볼라로 인한 북한의 외국인관광객 입국금지 조치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나는 비행기 예약을 취소하고 겨울 북한 여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의 다음 일정은 12월 6일부터인데 그 사이 무엇을 한단 말인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남편과 나는 타이완과 말레이시아에 있는 친구들을 찾아 여행이라도 하고 돌아올까 생각해봤으나 지금은 여행을 할 기분이 전혀 아니다.

대신 우리는 기분 전환을 위해 숙소를 바꾸기로 했다. 호텔에서 나와 한 대학 안에 있는 외국인 교수 전용 숙소로 거처를 옮겼다. 남편이 다니던 대학이다. 돌아가신 시아버님도 이 대학 교수셨다.

방이 세 개 있고 부엌이 있는 아파트 같은 곳. 가정집 분위기가 나서 호텔보다 훨씬 좋다. 게다가 이곳은, 남편이 미국에 오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이 있던 곳으로부터 몇십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남편의 옛집은 현재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나도 이 대학 근처에 있는 대학을 다녀서인지 친근감이 배가 된다. 남편과 나는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한동안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정했다...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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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미 시민기자가 지난해 12월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토크콘서트 종북 몰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통일 토크콘서트에 대한 허위·왜곡보도가 그 수위를 높이고 있던 중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국회의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2014년 12월 4일, 국회서 통일 토크쇼를 열자는 제안이다. 그 토크쇼에는 여러 국회의원들도 함께한다고 했다.

나와 가톨릭 신부님 한 분 그리고 우리를 초청한 국회의원, 이렇게 세 사람이 토크쇼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초청한 국회의원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득이 토크쇼 장소를 국회에서 서울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 도서관'으로 변경한다는 것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종편을 비롯한 여러 방송국은 '정부가 신은미씨의 재입국을 금지할 것'이라는 내용의 뉴스를 연일 내보냈다. 이 뉴스는 나로 하여금 내 어린시절을 회상케 했다. 그리고 출국을 결정토록 만든 계기가 됐다.

나는 민간외교 사절단인 리틀엔젤스의 단원으로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해외에서 보냈다. 공연 때문이었다.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공연에 나가면 몇 개월씩이나 해외에 머물러야 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코리아! 코리아!"를 연발하는 청중들의 함성을 들을 때면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그간의 피로를 잊곤 했다.

우리는 정규 공연 외에도 그 나라의 왕궁이나 대통령궁에 가서 단 몇 사람만을 위한 공연을 수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아마 리틀엔젤스 단원들만큼 수많은 세계 지도자들과 만나 악수를 하고, 만찬을 함께한 이들도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장개석 총통, 엘리자베스 여왕, 닉슨 대통령, 인디라 간디 수상,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과 그의 부인 이멜다,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었던 태국의 왕 등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나 어린 내가 가장 기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만찬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베풀어주시는 귀국 후 청와대 만찬'이었다. 이 모든 것이 '국위선양을, 조국을 위해 하는 일'이었으므로,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외국의 왕이나 대통령과 하는 만찬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께서 베풀어주시는 만찬이 제일 감격스러운 초청이자 만남이었다.

이렇듯 사랑한 나의 조국이 나의 재입국을 불허할 것이라는 뉴스를 듣고 나는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를 원하지 않는 곳에 계속 머무른다는 것은 사랑하는 조국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조국을 생각한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김대중 도서관에서의 토크쇼를 마지막으로 출국하겠다는 결정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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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미 시민기자가 2014년 11월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조국을 생각한다'. ⓒ 페이스북 갈무리


(* 다음 기사에 이어집니다.)
#신은미 #종북몰이 #종편 #통일 #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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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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