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그림에 나타난 저항의식과 여유

[고서화 이야기①] 해강 김규진, 독립자강 의지 대나무 그림에 담아

등록 2015.04.26 17:03수정 2015.04.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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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대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사대부들이 즐겨 그리던 소재였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며 곧게 자라는 대나무는 강인한 기상과 굳은 절개를 상징하며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비들은 대나무를 보며 '죽보평안(竹報平安)'이라 했습니다. '대나무 통에 담겨 온 평안함을 알리는 소식'이라는 뜻인데, 이 말은 인편으로 소식을 전하던 시절,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대나무 통에 넣어 전했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림을 넣는 원통형의 화구통을 옛날에는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속에 편지를 넣어 전달했을 거라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온 편지를 읽고 또 읽듯이 대나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사람 마음이 편해진다 해서 '죽보평안'이라 했다 합니다.


인터넷이나 유무선 통신이 발달한 요즘이야 소식을 전함에 있어서 고향이나 타향이나 물리적 공간은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공간보다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함께 그리워하는 공간이야말로 옛날의 고향과 비슷한 정감을 갖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나무가 주는 정감은 여전히 '죽보평안'을 말하던 시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럼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근대 서예가 해강 김규진(1868~1933)의 작품을 보며 평안을 누려 볼까요.

금간 대나무 분재와 배달민족이 닮은 이유

a 해강 김규진 대나무 분재 묵죽도 (132x33 cm, 신찬호 소장품) 수석, 화분, 대나무 3단 구조에 시를 적고 있다.

해강 김규진 대나무 분재 묵죽도 (132x33 cm, 신찬호 소장품) 수석, 화분, 대나무 3단 구조에 시를 적고 있다. ⓒ 고기복


해강 김규진은 평안남도 중화에서 태어나 18세 되던 1885년(고종 22년)에 중국에 건너가 8년간 수학하였습니다. 귀국 후 관직을 얻은 그는 궁내부 시종에 임명되었고, 1901년에는 영친왕에게 서법을 가르쳤습니다. 1906년에는 일본에 건너가 사진기 조작법을 배우고 돌아와 조선 최초 사진관 천연당을 개설해 어진 사진사로도 활약했습니다.

오랜 중국·일본 유학으로 견문을 넓힌 해강은 예서·행서·해서·초서 등 각 서체와 그림에 뛰어났습니다. 당대에 묵죽(墨竹)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고 대나무를 잘 그려 '죽사'(竹士)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해강이 장삼 한 벌로 평생을 살았다는 고려 승려 무기옹(無己翁) '해강(海岡)'이라고 호를 쓴 것으로 보아 원숙한 예술세계를 보였던 말년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도와 소재에 있어서 특이하고, 분명한 작품 의도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해강은 1단 수석, 2단 기명, 3단 대나무 구조로 먹의 농담을 통해 대나무가 갖고 있는 질감과 부피, 거리를 표현해서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작품 속 잘린 왕대 밑둥에서 새로 나온 대는 줄기라기보다 가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가는 가지들은 진한 묵으로 표현하여 힘이 있어 보입니다. 조릿대처럼 작은 가지들에 붙어 있는 잎들은 위를 향하고 있어 대나무의 푸르고 강한 성질을 드러내며 검은 대나무 줄기에서 푸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왕대를 즐겨 그렸던 해강이 굳이 대나무 분재를 그린 데는 어떤 복선을 깔고 있을 거란 걸 말해줍니다. 짧게 대가 잘린 줄기는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지만, 작품의 중심을 잡을 만큼 여전히 힘이 넘칩니다. 조릿대처럼 가늘지만 풍성한 잎을 자랑하는 세죽(細竹)은 단아하면서도 활발한 기운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 복선이 깔렸다고 보는 이유는 '줄기 잘린 왕대'와 '금간 화분' 때문에 그렇습니다.


줄기 잘린 왕대는 국운이 다한 조선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대 줄기는 모질게 잘렸지만 뿌리까지 잘린 게 아니었습니다. 비록 세죽이긴 하지만 그 자리에 풍성한 잎을 자랑하며 다시 자라고, 뿌리는 화분 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음을 y자 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호랑이가 발톱을 숨기고 도약을 준비하는 것처럼 뿌리는 내일을 기약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이 비록 나라를 빼앗겼으나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을 표현하는 듯합니다.

분재에 금이 간 곳은 굵거나 짙은 먹으로 그리지 않았는데도 자꾸 눈이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돌팔매질로 깨진 독이나 긴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금이 간 김칫독,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깨진 독이나 항아리를 원래 형태대로 잘 맞춘 뒤 철사로 꿰매 소금 항아리나 막 항아리로 쓰기도 하고, 질흙으로 덧댈 수 있으면 원래 용도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금이 가고 오래된 화분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멋이 있습니다.

해강의 작품에서 금간 부분에 눈이 가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멋이 숨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심은 화분에 금이 간 것은 어딘지 격에 맞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눈이 갑니다. 격이 맞지 않아서 눈이 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보기 때문에 눈이 갑니다.

대나무는 한 번 뿌리내리면 금세 그곳을 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화분에 심었다고 하나, 그 성질이 어디 가는 게 아닙니다. 결국 화분의 금은 뿌리가 뚫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조선의 국운이 다했다고 하지만, 한민족은 대나무처럼 강인하게 새로운 가지를 내고 힘 있게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항변하는 것 같습니다. 은근과 끈기를 지닌 배달민족은 일제의 어떠한 억압과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암울한 시대에 여유 강조한 이유

줄기 잘긴 왕대와 금간 화분을 통해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드러낸 해강은 글로써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貧不賣書留子讀 빈불매서유자독
집이 아무리 가난해도 자손이 읽을 책을 팔아서는 안 되고
老猶栽竹與人看 노유재죽여인간
늙을수록 오히려 대나무를 심어 남이 볼 수 있게 해주는 여유를 가져라

나라를 빼앗긴 백성은 가난합니다. 그러나 그 백성이 책을 읽는다면 나라를 되찾을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점은 독립자강의 방법으로 교육을 강조했던 독립운동 실력양성론과 닿아 있습니다.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늙은이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죽보평안을 전하는 여유와 배려가 있다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해강은 지금 조선이 가난하고 힘이 없지만, 책을 읽으며 멀리 내다보고 실력을 갖추어 독립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유는 그저 생기지 않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해강은 조선 독립을 기약 없는 먼 장래나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선 민중이 갖고 있는 힘, 잠재력을 믿었습니다.

대나무 뿌리의 견고함과 대의, 곧은 성질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다고 보았기에 해강은 조선의 독립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이 없을 때일수록 내일을 위해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삶의 여유를 가지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해강의 이런 태도를 계급적 한계를 드러낸 한가한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와 강한 바람에도 곧음과 푸른빛을 잃지 않아 지조와 절개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았던 대나무의 상징성과 의미를 떠올린다면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해강의 대나무 분재 그림에서 대쪽 같은 군자의 기개를 되짚어야 할 것입니다. 오랜만에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의 오우가(五友歌) 중 죽(竹) 부분을 떠올리며 여유를 가져보기를 권합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중략)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였는다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덧붙이는 글 평택시민신문에도 게재합니다
#대나무 #해강 김규진 #고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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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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